로고

[놀뫼 어린이 동화마을] 정재근 원장의 『풍덩말에서 온 작은 영웅, 을문이』 3

놀뫼신문 | 기사입력 2026/04/07 [19:21]

[놀뫼 어린이 동화마을] 정재근 원장의 『풍덩말에서 온 작은 영웅, 을문이』 3

놀뫼신문 | 입력 : 2026/04/07 [19:21]

 

을문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방금 들었지?”

“누구 목소리지? 물 밖에서 온 것 같은데… 하늘에서 들린것 같기도 해….”

“‘효자에게 몸을 주라’고 했어. 무슨 뜻이지?”

잠시 후, 을문이 무리 가운데 나이가 많고 몸집이 큰 을문이 한 마리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등에 굵게 긁힌 상처 자국이 여러 개 있는 그는 ‘묵등이’라 불리는, 오래도록 을문이들 사이에 서 존경받아온 지도자였습니다.

“얘들아, 모두 조용히 하자. 이건 그냥 목소리가 아니야. 지금은 우리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것을 결정해야 할 운명의 시간이야.”

 

작은 을문이 한 마리가 물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스스로 누군가에게 잡혀가야 하는 거예요? 그건 너무 무서운 일이에요….”

묵등이는 저쪽 얼음 위에 희미하게 비치는 강응정의 모습을 가리켰습니다.

“저기, 저 사람 보여? 우리가 매일 살아남기 위해 벌벌 떨며 도망치는 이 냇물에서…, 누군가는 자기보다 더 아픈 누군가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잖니. 그 눈물은,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겁에 질려 흘리던 그 눈물과는 달라.”

다른 한 마리가 겁먹은 얼굴로 말했습니다.

“하, 하지만… 잡아먹히면… 우린…. 끝나는 거 아니에요?”

묵등이는 잔잔히 미소 지으며, 그러나 확신에 찬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그래, 나 역시 죽음이 두렵단다. 그렇지만 용기를 내야 해. 용기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도 올바른 일을 선택하는 것이야.”

묵등이는 말을 이었습니다.

“쫓기다 억지로 먹히는 삶과,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삶은 다르단다. 그 훌륭한 선택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용기로 ‘기억’이 될 거다. 그리고 ‘전설’이 되어…우리 종족을 영원히 살게 해 줄 거야.”

을문이들은 물결 속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두려웠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따스해졌습니다.

“우리… 가요.”

“그래요. 그 효자에게 가요.”

“엄마를 살릴 수 있게 도와줘요!”

마침내, 묵등이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우린 오늘, 먹히러 가는 게 아니다. 우린 오늘, 누군가를 살리러 가는 거다. 죽지만 영원히 사는 거다.”

물 위에 햇살이 스며들었습니다. 을문이들의 눈망울이 그 햇살을 받아 반짝였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겁에 질려 두리번거리는 눈망울이 아니었습니다.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과 행복으로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이었습니다.  

 

  

이제 을문이들은 냇물을 따라 응정이 주저앉아 있는 곳으로 하나둘 헤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마리, 두 마리… 응정의 발치로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울고 있던 응정의 눈에 올챙이처럼 까만 물고기 떼가 보였습니다. 도망가지도 않고 마치 잡아달라는 듯이 그의 발밑, 얼음이 깨진 부근으로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처음 응정은 쏟아진 고깃국 대신 이 물고기를 잡아 끓여 드릴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곧 작은 물고기들이 불쌍하다는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자신이 잘못해 일을 망쳐놓고 죄 없는 생명을 희생시키는 건 마음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양촌장으로 다시 돌아가 고깃국을 구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선비의 수중에 더이상 돈이 없었고, 해는 뉘엿뉘엿 기울어 장터로 돌아가도 깜깜한 밤이라 국밥을 살 수 없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무엇보다 응정을 기다리며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이때 응정의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효자야, 걱정하지 말고 그 물고기를 가져가거라. 어머니의 몸속에서 이들은 영원한 삶을 찾을 것이니라. 이들은 이제부터 사람들의 몸에 들어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것이니라. 이들을 먹는 이도, 주는 이도 사랑을 느낄 것이니라.”

“그래서 응정은 쏟아진 고깃국 대신 그 물고기들을 끓여 어머니께 드렸지. 그리고 어머니의 병은 놀랍게도 점점 나아졌단다.”

“진짜…요…?”

범이의 눈가가 붉어졌습니다. 신령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임금님은 감동하여 응정에게 ‘효자 증서’를 내렸고,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물고기를 ‘효자고기’라 부르기 시작했지. 바로… 네가 오늘 낮에 버린 그 작은 고기, 을문이 말이다.”

 

#5 눈물로 맺은 약속

 

신령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범이야, 너는 이토록 고귀한 한 생명을 아무 생각 없이 땅에 내던진 거란다.”

범이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죄송해요…. 몰랐어요. 을문이가 그런 고기인 줄도 모르고, 그냥… 못생겼다고 생각했어요.”

신령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고기는 스스로 희생을 택했단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며, 영원한 삶과 행복을 얻은 거야. 그 작은 물고기의 용기 덕분에, 사람들은 희생을 통해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배웠단다.”

범이의 눈에서 후회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저… 앞으로는 을문이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게요. 을문이를 먹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도, 먹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행복해진다는 것도요. 죽어서도 영원히 살아 있는 물고기라는 걸 꼭 전할게요.”

“그래, 그 약속…, 절대 잊지 말거라.”

신령님은 이 말을 남기고 바람처럼 스르르 사라졌습니다. 그 순간 범이는 흐느끼며 눈을 떴습니다.

 

#6 다시 찾은 논산천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아침, 범이는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헐떡이며 달려간 논산천은 고요했습니다. 그곳, 어제 고기 잡던 돌 옆에는 바짝 마른 작은 을문이 한 마리가 조용히 누워 있었습니다.

범이는 조심스레 그 물고기를 두 손에 담아 들었습니다. 작고 가벼운 몸, 까맣게 말라버린 꼬리. 하지만 이제는 볼품없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안엔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를 내어준 ‘용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을문아… 미안해. 네가 얼마나 용기 있는 아이였는지, 이제야 알았어.”

범이는 손으로 흙을 파고, 그 안에 조심조심 을문이를 눕혔습니다. 그리고 흙을 덮으며 조용히 되뇌었습니다.

“을문아, 너는 비록 죽었지만, 영원히 살 거야. 너의 희생과 용기, 사랑 이야기를 꼭 전할게. 모두가 너를 알고, 너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할게.”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대둔산 저 멀리 한 줄기 햇살이 논산천 위로 살포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바람 사이로 아주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

“고마워… 범이야….”

범이는 살며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이 ‘괜찮아, 범이야….’라고 속삭이듯 손짓하고 있었습니다.

*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고담 정재근 

  • 현)한국유교문화진흥원장
  • 전)행정안전부차관, 충청남도 기획조정실장
  • ideatnak100@gmail.com
  • 유튜브 “정재근TV”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