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은 예로부터 천하의 '길지'라 불렸다. 신라는 이를 서악으로 삼아 제사를 지냈고, 조선 태조 이성계는 신도안에 도읍을 정하려 했다.
특히 계룡산은 산줄기와 물줄기가 태극 형상으로 휘감아 흐르는 명산으로 동서남북에 사찰을 두어 영험한 계룡산의 의미를 더하였다.
선사시대부터 수천 년을 거쳐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온 땅, 그곳에 3군본부가 들어서고 계룡시가 세워지면서 군과 시민이 공존하는 새로운 도시의 꿈을 키워왔다.
그러나 지금 계룡시는 이 길지의 가치와 시민의 꿈을 외면한 채, ‘애국가 정원’이라는 어설픈 발상으로 시민의 분노를 자초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애국가 정원'인가?
당초 '6억 원으로 시작하겠다'던 사업은 부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10억 원으로 불어났다. 애국가 정원은 계룡문 인근 사면에서, 금암동 고속버스터미널 사면을 거쳐, 금암동 사거리 새터산 기슭으로 옮겨졌다.
여기에 '조형물을 세운다'며 지난 1차추경에 9억 5천만 원을 요구했다가 삭감되자, 이번 2차추경에 다시 비슷한 규모의 예산을 슬그머니 끼워 넣고 있다.
예산은 줄줄 새고, 명분은 자꾸 흔들린다. 결국 ‘애국가 정원’은 시민들이 비꼬아 말하듯 ‘세금 정원’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그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시민이 주인으로 존중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공청회도, 설명회도, 여론 수렴도 없었다. 시장과 일부 지지층의 목소리만 커졌고, 합리적 토론은 뒷전으로 밀렸다. ‘시민과 함께하는 행정’이라는 간판은 내려놓은 지 오래, 이제는 ‘시민 없는 행정’이 노골화되고 있다.
입지 또한 문제투성이다. 계룡시 교통량이 가장 많은 금암동 사거리에 옹벽을 세우고 거대한 조형물을 설치한다는 발상은 위험천만하다. 교통 흐름을 해치고, 도시 미관을 망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시민이 체감할 실익이 없다.
세계적인 정원을 만든다며 호언장담하지만, 정작 세계 어디에도 ‘사거리 옹벽에 애국가 조형물’을 랜드마크라 부르는 사례는 없다. 이는 애국심 고취가 아니라, 국제적 조롱거리가 될 공산이 크다.
애국가는 국민의 마음속에 울려 퍼질 때 빛나는 노래이지, 억지로 세운 조형물 앞에서 사진 찍으며 감상하는 대상이 아니다. 애국심을 상징한다는 미명 아래, 졸속 행정과 예산 낭비를 덮으려는 발상은 시민들을 더욱 모욕할 뿐이다.
계룡시민들은 이제 분노를 넘어 경고를 보내고 있다. 시정을 파탄으로 몰아가는 길을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애국가 정원’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지켜내는 정책이다.
아이들의 교육, 노인 돌봄, 청년 일자리, 교통 불편 해소 등 풀어야 할 숙제는 산더미인데, 시장은 오직 자신의 업적을 남길 기념비에만 매달려 있다.
이응우 시장은 기억해야 한다. 권한은 시장에게 있으나, 책임은 시민이 진다. 업적을 남기려 애쓰다가는 ‘애국가 정원’이 아니라 ‘세금 정원’, 아니 ‘시민 분노의 정원’만 남을 것이다.
'천하의 길지'를 지켜온 계룡의 역사가 오늘의 무능한 행정으로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시장이 귀를 열고 시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