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품에서 독특하며 상반된 캐릭터를 꼽으라면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Don Quixote)'와 셰익스피어의 '햄릿(Hamlet)'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상을 좇아 풍차를 적으로 착각하며 달려드는 몽상적인 돈 키호테와 끊임없이 고뇌하는 지고지순한 햄릿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복잡하면서도 상징적인 캐릭터다.
최근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우리 정치의 현실을 보면 이 두 인물이 모두 떠오른다. 특히 돈 키호테식 몽상과 허세, 그리고 때로는 현실 감각을 상실한 행정이 그대로 투영된 듯한 사례들이 적지 않게 보여지고 있다.
이런 숨 가쁜 상황 속에서 2026년 지방선거가 9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내년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확실한 것은 '밥 먹고, 악수하고, 폴더 인사한다'고 덕치를 펼치는 위정자가 될 것이라고 믿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것이다.
"돈 키호테가 데자뷰되는 몽상적 행정"
지난 8월 7일, 제10회 MBC국제오픈태권도대회가 계룡시에서 개막되었다. 30여 개국에서 온 2천여 명의 태권도 유망주들이 계룡시민체육관에서 기량을 겨루는, 중부권을 넘어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국제대회다. 그런데 계룡시(시장 이응우)는 이런 성대한 대회를 조용하게 치루는 남다른 재주가 있는 듯하다. 개최지인 계룡시의 분위기가 조용하다 못해 무심해 보인다.
작년 대회가 열렸던 태안군은 개막 전부터 전지훈련 선수단과 임원들이 읍내와 관광지를 북적이게 만들었다. 숙박·식당·관광업계 모두 활기를 띠었고, 지자체도 이를 활용해 홍보와 부대행사를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러나 올해 계룡시는 규모가 더 커졌음에도 체험 부스, 관광 안내, 국방수도 홍보 등 참가자와 시민이 함께할 수 있는 행사나 참여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지역경제 활성화나 도시 이미지 제고를 위한 전략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 이응우 계룡시장은 ‘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 재개최를 위한 '기본계획 수립 및 타당성 조사 용역 착수보고회'를 지난 8일 열었다. 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를 또다시 개최한다고 해서 잃어버린 정치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정치인에게 신뢰 즉 믿음이란, 인적·물적 자산과 함께 가장 중요한 ‘제3의 자산’이기에, 사라지면 되찾기 어려운 자본인 것이다.
변죽만 울린 3년의 허성세월…본질은 비껴간 시정
계룡시청 앞에는 ‘공약이행 및 정보공개 평가 3년 연속 최우수 등급(충남 유일)’이라는 대형 현수막이 게첩되어 있다. 그러나 시민들이 체감하는 시정은 이 평가와 온도차가 크다. 이는 이응우 시장의 지난 3년은 본질을 외면한 변죽만 울린 허성세월이었기 때문이다.
당선인 시절부터 호언장담했던 이케아 부지는 공매 중이고, 군사박물관 건립과 국방부 유치 등은 흐지부지 공염불이 되고 있다. 하늘소리길과 태조백리길은 투자 대비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계룡대로에 12억 원을 투입한 국방부 마크 경관 조명사업은 ‘허울뿐인 과잉 투자’의 대표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계룡시의 장기적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엄사리 화요장’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못하며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논쟁이 많았던 노인경로식당은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고, 엄사초등학교 생존수영장 건립은 본질을 파악못해 사실상 물 건너갔다. 체육회 및 공무원에 대한 충남도 감사 요청, 오페라 용역 허위 실적증명서 제출업체 경찰 고발 등의 잡음은 그 기저에 ‘본질을 직시하지 못한 행정’이라는 공통점이 내포되어 있다.
이 모든 장면은, 허상의 풍차를 보고 죽기 살기로 돌진하는 돈 키호테의 모습과 겹쳐진다. 최근 이응우 시장은 사회단체장은 물론 많은 지역 인사들과 잦은 식사 모임을 갖으며 소통 행보를 넓히고 있다. 이는 재선을 향한 계산된 전략적 제스처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로 지역사회에서는 이미 그 의도를 읽고 있다. ‘계산된 소통’이 진정성을 대체할 수 있을까.
권한은 곧 책임…융통성 없는 정치의 말로
시장이나 시의원 같은 선출직 정치인은 혁신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한순간에 영향력을 잃는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보다, 세상이 정치인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다.
정치인이 세상을 지배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생각대로 현실을 바꿀 힘을 갖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현실에 맞춰 생각을 유연하게 바꾸는 것이다. 즉 독재를 하거나 선거를 잘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독재가 불가능한 시대이니 남는 길은 결국 ‘현실에 맞춘 유능한 정치’뿐이다.
유권자가 선출직을 선택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좋아해서’, ‘필요해서’, ‘상대가 싫어서’인데, 현 이응우 시장이 펼치는 시정은 이 세 가지 기준 모두에서 압도적이지 못하다. 중앙정치의 격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과 이재명 정부의 탄생이라는 재앙에 더해 3년 동안 오만해진 권력의 기능부전이 모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치워야 할 때
자신의 원칙이나 기준을 절대화해 남의 생각과 상황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태도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비유된다. 침대에 맞추기 위해 사람의 팔다리를 자르거나 늘이듯, 융통성 없이 자기식에 맞추는 행정은 결국 불신과 반발을 낳는다.
정치는 민심을 이길 수 없고, 경제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재선을 원한다면 먼저 이 침대부터 치워야 한다. 시민과 지역의 요구에 맞춘 유연한 정책, 본질에 충실한 시정, 실질적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행정이 필요하다.
이응우 계룡시장이 국제대회 개최와 같은 기회를 ‘이벤트’가 아닌 ‘발전의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돈 키호테식 몽상가의 이미지를 벗고 실력 있는 행정가로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출발은, 고집과 형식이 아닌 본질로 돌아오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