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3일, 한국유교문화진흥원(한유진)의 잔디광장에서 ‘동토길(童土길)’의 열림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한유진 임직원들은 새롭게 조성된 길을 함께 걸으며, 조선 후기 선비 윤순거(尹舜擧) 선생의 철학과 삶이 담긴 이 길의 깊은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흙길 위를 걷는 발걸음 하나하나는 윤순거 선생의 가르침을 체험하는 여정이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도리를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동토길의 준비 과정은 2023년 12월, 행정안전부로부터 유교문화 향유 사색의 길 조성사업으로 4억 원의 특별교부세를 지원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듬해 1월 실시설계를 발주하고, 2월에는 임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길의 구체적인 모습을 설계하는 데 반영했습니다. 2024년 6월, 문화재현상변경 심의를 거쳐 설계는 더욱 정교해졌으며, 7월 최종 설계가 완료되었습니다. 8월부터 일부 길 구간의 연결 공사와 조성을 시작해, 2024년 12월 11일 마침내 완공되었습니다.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흙길과 쉼터, 확장된 잔디광장, 황토시멘트로 포장된 길, 세족장, 차량 차단기까지 조성된 동토길은 단순한 산책로를 넘어 선비정신과 인문학적 가치를 품은 길로 자리 잡았습니다. 총 길이 약 900m(종학당 사색길과 기존 산책로를 포함하면 약 2.4㎞)에 이르는 동토길은, “국가 위기 속에서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을 실천했던 윤순거 선생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유진은 이 길을 방문객과 교육생들에게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쉼터이자 윤순거 선생의 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설계했습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풍경과 이야기를 통해 선비정신과 삶의 도리를 되새기며, 걷는 이들의 마음속에 참된 가치와 철학을 새겨넣는 공간으로 기능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동토길에 담긴 윤순거 선생의 삶과 가르침
윤순거 선생(1596~1668)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혼란의 시대 속에서도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철학을 몸소 실천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문중 자제와 지역 인재를 키우기 위해 종학당을 설립하고, 학문과 인성을 아우르는 선비정신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의창(義倉)’을 설립하며, 그의 철학이 단순한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를 위한 책임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동토길은 그의 철학과 삶을 오롯이 담아내며, 걷는 이들에게 윤순거 선생의 정신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길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선비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오늘날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배움의 장입니다. 길 위에서 우리는 그의 철학을 느끼며, 자기 성찰과 공동체를 위한 책임의 가치를 되새기게 됩니다.
동토길을 걷다 보면, 호암산 자락에 자리한 종학당이 눈에 들어옵니다. 윤순거 선생이 설립한 이 교육기관은 그의 철학과 선비정신이 깃든 상징적인 공간으로, 길을 걷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종학당의 자태를 마주하며 걷는 동안, 그의 가르침이 단순한 글자 속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흙길의 촉감이 발끝을 통해 전해지고,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흙냄새가 우리의 감각을 깨웁니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감각적 자극을 넘어 걷는 이들에게 깊은 사색의 시간을 제공합니다. 흙길을 따라 이어지는 길 위에서 우리는 자연이 주는 위안과 철학적 깨달음을 얻습니다.
길의 끝자락에서 마주하는 병사저수지의 물결과 하늘이 맞닿는 장면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일깨워주며,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야 할 도리를 가르칩니다. 호암산을 배경으로 종학당을 지나 병사저수지에 이르기까지, 길 위에서 마주하는 감동은 단순한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에 대한 성찰로 이어집니다.
동토길과 충효예길, 길 위에서 만나는 인문학적 가치
동토길은 한유진이 개발 중인 충효예길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충효예길은 논산 지역의 유교문화유산을 잇는 프로젝트로, 충(忠), 효(孝), 예(禮)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길로 기획되었습니다.
충효예길은 백제의 계백 장군과 조선의 사육신을 기리는 충곡서원(忠), 효자 강응정의 이야기가 담긴 효암서원(孝), 그리고 예학의 종장 김장생 선생을 기리는 UNESCO 세계유산 돈암서원(禮)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장소는 독창적인 역사와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걷는 이들에게 사색과 배움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지난해 5월, 250여명과 함께한 충효예길의 시범 걷기 대회를 시작으로 11월에는 개척단을 구성하여 1박 2일 동안 프로그램을 운영하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각 코스를 연결하여 약 24km에 이르는 가칭 ‘황산유람길’의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참여자들은 길을 걷는 과정을 통해 유교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체감하며, 그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재근 한유진 원장은 충효예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길의 인문화는 단순히 과거를 기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에서 배우고 느낀 가치를 현대인의 삶에 녹여내는 작업입니다. 길을 함께 걸으며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길의 본질을 알리고자 합니다.”
길의 인문화를 통해 걷는 행위는 단순한 이동을 넘어, 걷는 이들에게 깊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충효예길은 사람들을 연결하고, 함께 걷는 도반(道伴)을 모으는 프로그램과 결합하여 길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는 공간으로 확장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걷는 사람들로 하여금 길 위에서의 만남과 배움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합니다.
길의 품격은 그 위에서 펼쳐진 삶과 정신에서 비롯됩니다. 한유진은 동토길과 충효예길과 같은 인문학적 길을 통해 논산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적 도시로 거듭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동토길은 조선 후기 선비 윤순거 선생의 철학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며, 충효예길은 유교문화의 핵심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길입니다. 이 두 길은 각각의 독창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으면서도, 인간과 자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길들은 우리의 발걸음을 통해 과거의 가치를 현재로 이어가고, 더 나아가 미래를 열어가는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길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걷는 이들에 의해 새롭게 창조됩니다. 동토길과 충효예길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우리의 삶과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배움과 치유의 장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길들을 걸으며 깨닫는 것은, 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가 결국 우리의 삶을 가꾸는 힘이 된다는 점입니다.
오늘도 동토길을 걷습니다. 흙길 위에 새겨지는 발걸음 하나하나는 윤순거 선생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열어갑니다. 이 길 위에서 우리는 ‘도리(道理)’를 깨닫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갑니다. 동토길과 충효예길에서의 사색과 만남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길 기대하며, 이 길들이 우리의 여정에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되길 희망합니다.
- 한국유교문화진흥원 기획조정·축전추진단 책임연구원 최소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