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 충청메시지 조성우 기자는 ‘강남빌딩에 경로식당을 설치하면 특혜인가?’라는 제하의 기자수첩에서 “지역의 어른으로 존경받고 모범이 되어야 할 어르신들이 영화에서 보았던 건달 또는 양아치들의 추태와 비슷한 방법으로 (사)대한노인회계룡시지회가 계룡시를 상대로 집단민원을 기획하여 노인일자리 전담기관의 노인일자리사업 일부를 쟁취하는 부끄러운 선례를 남겼다”고 기술했다.
이 기사로 인해 계룡시 노인회장을 비롯한 경로당 회장들이 발끈하고 일어섰다. 심지어 거리 곳곳에 조성우 기자를 규탄하는 현수막을 게첩했다.
조성우 기자도 5월 26일 ‘계룡시가 왜 시끄러울까?’라는 기자수첩에 이어 6월 17일에는 ‘김정수 회장, 현수막의 자충수’라는 기자수첩을 연달아 게재하며 공세의 고삐를 더욱 조이고 있다.
도대체 충청메시지와 계룡시노인회는 왜 다투고 있는가?
지역 언론매체와 계룡시노인회가 갈등이나 분쟁이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데 애초부터 견원지간처럼 상극이 되어 서로를 용납하지 않고 있다.
충청메시지의 기사가 미디어라는 사적 기구를 통해 생산되기는 하지만 기사와 뉴스는 그 자체로 공공재(公共財)의 성격을 띤다. 특히 기자수첩과 같은 무거운 의견기사는 일반 스트레이트 기사와 달리 논리적 근거로 주장을 뒷받침하는 로고스의 원리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반면 조선시대 언관의 간쟁에서는 글의 논리적 근거보다 명분과 도덕성을 강조하며, 교언영색(巧言令色)보다는 군자의 말은 진솔하고 투박해야 한다는 군자어눌(君子語訥)의 진실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조성우 기자는 강남빌딩에 경로식당과 공유주방을 설치하는 예산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어떠한 논리적 근거도, 어떠한 명분과 도덕성도 없이 인과관계도 없는 3년 전 이야기를 들춰냈다.
그래서 계룡시가 시끄럽다.
기자로서의 정의감과 사명감도 중요하다. 하지만 양반적 우월의식에 갇혀 겉으로 보이는 사실만 나열했다고 그것이 진실은 아닌 것이다.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사실을 말했다고 곧 진실이 드러나는 건 아니다. 이따금 진실은 오히려 말하지 않은 사실에 담겨 있다.
“늙음은 언젠가 찾아오게 돼 있다. 늙는다는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 인간은 늙어서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다음 세대에게 존경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이것이 말하지 않은 오늘의 진실이다.
미국의 철학자 에이브러햄 캐플런은 “어린아이에게 망치를 주면 두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다닐 것이다”라는 망치의 법칙을 제시하며, “누구나 망치를 쥐면 본능적으로 두드릴 대상부터 찾는다”고 언급했다.
문제는 어떠한 권력이든 망치질의 유혹에 빠지게 되면 인지 편향의 망치증후군으로 시야가 좁아지고 심지어는 자기 손을 찧거나 주변을 엉망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망치를 들고 모든 것을 못으로 보는 이분법적 사고보다는 망치와 핀셋을 더불어 함께 사용하는 슬기롭고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이 작금 우리가 찾아야 할 진실의 퍼즐 조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