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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몰군경미망인회 논산시지회 이외선 지회장과 이정희 前 지회장
기사입력  2023/11/27 [23:00]   놀뫼신문

[인터뷰] 전몰군경미망인회 논산시지회 이외선 지회장과 이정희 前 지회장

 

남편을 조국에 바친 전몰군경미망인의 시련과 절망을 넘어서

이제는 서로 아픔을 함께한 희망과 행복 그리고 밝은 미래를 위해

 

마지막 달력이 한 장 남은 지난 1122(), 본지는 등화동에 위치한 신바람노인주간보호센터를 방문했다. 전몰군경미망인회 논산시지회 이외선 지회장과 이정희 前 지회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 어려웠던 시절 사랑하는 남편을 조국에 바치고 홀몸으로 자식을 돌보며 온갖 시련과 고통 속에서 절망을 넘어 이제는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행복한 내일을 만들어 가고 있는 두 분을 만나기 위해서다.

대한민국 전몰군경미망인회는 회원 간 서로 상부상조하고 자활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보훈부 소속 사단법인이다. 전몰군경미망인회 논산시지회는 이외선 지회장을 비롯해 170여 명의 회원이 있으나 실질적인 활동은 30여 명에 그치고 있다

 

▲ 이정희(좌) 어르신과 이외선 전몰군경미망인회 논산시지회장     ©

 

 

22살에 결혼, 24살에 호국영령의 미망인이 되어

 

 

 

▲ 이정희 어르신과 신바람노인주간보호센터장     ©

 

경기도 연천이 고향이신 이정희(90) 할머니는 22살 꽃다운 나이에 논산 광석으로 시집을 왔다. 지금은 강원도 원주에 사는 이정희 할머니의 친구가 논산 성동으로 시집오면서 할머니를 중매했다.

할머니는 아직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러니까 19571126일이야. 포병 장교 중위였는데, 연천부대에서 3명이 사고로 죽었지. 그때 첫돌 지난 큰 아이랑, 뱃속에 7개월된 둘째를 놔두고 애들 아버지가 너무 허망하게 먼저 가버린거지

이정희 할머니는 하늘 같았던 남편을 홀연히 떠나보낸 그날 이후, “남편의 빈자리에서 오는 상실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12남매의 맏며느리로서 기댈 곳 하나 없는 허허벌판 속에서 온갖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이정희 할머니는 내가 살아나야, 아이들도 살아난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되새기며 모질고 험한 질곡의 삶을 숨차게 살아왔다.

이정희 할머니는 12남매의 맏며느리이다.

첫 번째 시어머니가 6명의 자식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그리고 두 번째 시어머니가 새로 들어오면서 한명은 데리고 오고 5명의 자식을 낳았다. 지금은 엄두가 나지 않는 대가족이다. 첫 번째 시어머니의 6번째 아들, 다시 말해서 6번째 시동생을 27살에 장가보낼 때까지 이정희 할머니가 키웠다.

형수 없으면 나 죽어! 형수 갈 때 나 꼭 데리고 나가!’라던 시동생의 애절했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는 이정희 할머니는 그때 그 시동생이 지금은 돌아가셨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이정희 할머니는 광석 오강리 뒷동산에는 소나무가 많았는데, 밤마다 부엉이가 몹시 울었다, “부엉이 우는 소리가 하도 무서워서 밤에는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밤마다 울어대는 부엉이 울음소리가 무서운 것도 있었겠지만, 이보다 할머니 혼자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서모와 시동생의 시집살이로 인한 트라우마의 일종이라고 생각된다.

할머니는 시집오기 전에는 농사일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연천에서 시집이 있는 광석으로 내려오자, 시아버지께서 논 12마지기를 주셨다. 서모는 그 논 12마지기를 탐냈다. 그런 연유로 서모는 이정희 할머니에게 친정에 가서 살라는 권유를 계속했다. 그뿐만 아니라 농사일에서 서모와 시동생의 억지를 부리는 심술 덕분에 배우면서 해도 만만치 않은 농사일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한다.

소를 처음 키워보는데, 소가 새끼를 가져 송아지를 낳는 날이었어요. 송아지가 나올 때 송아지를 잡아서 빼내야 되는데, 시동생이 가만히 서 있으니까, 아무도 송아지를 빼내지 않았죠. 그래서 송아지가 죽고 말았어요. 그런 후에 수의사가 와서 왜 송아지를 빼주지 않았냐고 묻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송아지를 빼내야 된다는 것을... 그 다음부터는 제가 직접 했어요.” 이정희 할머니의 이야기다.

할머니 손에는 아직도 낫 상처 자국이 선명하다. 다리에도 몇 군데 상처 자국이 있는데 보여주기가 그렇다며 멋쩍게 웃는다. 우리가 지금 그 상처의 가치를 꼭 기억해야 되는 이유는 잔잔하면서도 때로는 격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이정희 어르신의 가치 있는 삶에 의한 풍요 때문만은 아니다.

어르신 한분 한분은 이 시대의 박물관이다. 얼핏 그 어려웠던 시절 다 그렇고 그런 삶 같지만, 우리 어르신들의 삶 속에는 온몸으로 살아온 위대한 어머니 아버지의 철학과 이 시대의 역사가 용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정희 할머니는 채 2년도 안되는 신혼의 단꿈은 누려보지도 못하고 66년간 호국영령의 미망인으로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살아왔기에 누구보다도 미망인들의 삶의 어려움을 잘 알고있다. 그래서 이정희 할머니는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전몰군경미망인회 논산지회장을 맡아 미망인들의 자활 능력을 배양하고 회원들의 상부상조에 앞장서 왔다.

이정희 할머니는 임성규 논산시장 시절 전몰군경미망인회 논산지회에서 충렬탑 관리를 하고 있었다, “당시 임성규 시장에게 위폐실 신축을 건의해 지금의 10평 정도의 위폐실이 그때 지어진 것이라고 전해준다.

이정희 할머니는 지금 큰아들과 함께 광석면 오강리에 산다. 둘째 아들은 논산 시내에서 화원을 운영하고 있다. 손자 손녀가 여섯 명이나 되는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 (왼쪽부터) 신바람노인주간보호센터장, 이정희 어르신, 이외선 지회장, 명상필 논산시 복지정책과 주무관     ©

 

 

  

■ 펜팔로 맺어진 인연, 대구에서 강경으로 시집와 

 

이외선 전몰군경미망인회 논산지회장의 고향은 대구이다. 이 회장의 나이는 호적에는 1949년 소띠로 되어 있는데, 본 나이는 3살이 더 많다.

1960년대 당시에는 편지를 통해 친분을 유지하는 펜팔이 유행하였다. 이외선 지회장도 강경 총각과 열심히 편지를 주고받으며 펜팔로 사랑을 속삭이다가 1969년 서로 간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외선 회장의 남편은 월남전 참전용사이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여파로 고엽제 후유증 등으로 병마에 시달리다, 200111일 운명을 달리 했다.

이외선 지회장은 강경으로 시집와서 사람은 좋은데 생활력이 약했던 남편 덕분에 아들 셋을 키우면서 남다른 고생을 많이 했다. 농사 현장, 노동 현장은 물론 섬유 공장 등에 다니면서 가정과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러던 중 이정희 할머니의 권유로 전몰군경미망인회 논산시지회장을 맡게 되었다. 그때가 20185월이었다.

이외선 지회장은 2달에 한 번씩 내포에 있는 도지부로 출장을 간다. 부여로 가서 부여군 지회장과 버스를 타고 내포 도지부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도지부 행사가 있을 때는 3~5명이 함께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외선 지회장은 논산시에 거주하는 미망인은 170여 명이 되는데, 실질적으로 전몰군경미망인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인원은 30여 명 정도라며, “이는 전몰군경미망인회 활동을 해봐야 실질적인 혜택이 없으니까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지회장은 현재 미망인으로 등록되어있는 분들은 거의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하다, “미망인들의 집집마다 화장실 및 거실, 주방 등에 미끄럼방지나 손잡이 등의 안전장치를 설치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건의를 한다.

이어 충남도지부에서 한 달에 205,000원씩 활동 운영비가 지급되고 있는데, 전몰군경미망인회를 운영하기에는 비용이 부족한 입장이다라며, “사회 각계각층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전몰군경미망인회를 위한 물질적 금전적 후원을 바란다고 호소한다.

한편, 논산시 보훈복지팀에 따르면 국가보훈대상자 예우를 위하여 전몰군경미망인회 단체 운영비로 1,700여만 원, 국내외 전적지순례지원비로 890여만 원을 매년 논산시에서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전몰군경미망인회 등 9개 보훈단체의 운영비와 국내외 전적비순례지원비로 3억여 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국가에 공헌하고 헌신하신 참전유공자 등에 대한 수당 등도 매년 50여억 원씩 지원하고 있다.

전몰군경미망인들은 시대의 아픔 속에서 시련과 절망을 넘어서며 희망의 세상을 우리들에게 건네주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이다.

 

- 전영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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