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농장이야기-10]
바깥으로 떠미는 봄, 봄봄
세상사가 아무리 뒤숭숭하고 심란하여도 어김없이 봄은 제자리에 와 있습니다. 황량했던 겨울을 지나고 복수초를 필두로 하여 수선화, 명자나무의 검붉은 꽃이 피네요. 3월 말 밭에는 백목련, 5m 높이의 자목련 꽃과 미선나무가 뒤를 잇더니 4월 초 조팝나무, 튤립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진한 벽돌색의 작약 순도 제법 올라왔고 백합, 금낭화, 앵초, 옥잠화도 싹을 올리고 있습니다. 담의 경계선에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던 복숭아꽃도 올해는 절정의 미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때쯤 꼭 맛보는 머위꽃 튀김도 별미이고, 아기 손바닥만하게 올라온 머위 잎과 부지깽이나물도 좋은 찬거리가 됩니다.
작년에 대형 참사가 두 건이나 있었습니다. 넘어져 오른쪽 무릎 슬개골이 조각나 수술을 하고 3주간 입원 후 퇴원을 했습니다. 웬만한 전지는 스스로 했으나, 거동이 불편하여 이웃의 소개를 받아 전지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전지 날짜를 알려주면 입회하겠다고 했는데 어느 날 일요일 아침 임의대로 도착하여 출입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기에 믿고 알려준 것이 실수였습니다.
다음 날 확인차 가보니 우리 밭인가 싶을 정도로 휑하니 낯선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베어진 나무들이 쌓여 있었고, 17년간 키워온 세월의 흔적이 사라졌습니다. 수형이 예쁘다 칭찬을 받아온 모과나무는 볼품없이 잘렸고 우리 밭의 자랑거리였든 화이트핑크셀릭스도 지표면과 일직선으로 밑둥채 싹둑 잘려나갔습니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연구소에서 조경을 담당했다는 이웃의 말과 본인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일을 맡긴 제 잘못이었겠지요. 아마도 그분의 전공은 전지가 아니라 벌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수고비는 다 챙겨주었습니다. ‘세상 어느 곳에서나 실력 없는 사람이 연장을 들고 설치면 예측 불가인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구나’ 절실히 느꼈습니다. 또한,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먼저 후한 선입견을 갖지 말자고 다짐했지요.
봄이 되니 나들이 겸 모임을 하고자 하는 장소지원 요청이 들어옵니다. 4월만 해도 세 팀이 잡혀있습니다. 다들 안면이 있는 분들이라서 제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간단하게 김밥과 컵라면을 준비해 갈 터이니 끓는 물만 준비해 달라고 합니다만, 내 집에 오는 손님 접대가 어디 그런가요? 자연을 좋아하고 나의 정원에 큰 의미를 부여해주는 사람들은 제게는 무조건 귀인입니다. 봄은 가슴을 뛰게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동기부여를 해줍니다.
지난주 토요일도 손님맞이 점검차 들어가서 일박하고 돌아왔습니다. 밭일은 끝이 없습니다. 완벽하게 식물의 자리를 잡아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곳이 더 적합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남편은 계획성 없는 탓이라 생각하지만 “나 이런 일하러 밭에 오는 건데?”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작업 방석을 깔고 앉아 두 다리를 쭉 펴고 잡초를 뽑다 보면 무념무상의 경지에 다다릅니다. 바람이 불면 벚꽃이 날리어 사방에 꽃비가 내리고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형형색색의 튤립 봉오리들이 피어날 순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꽃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조물주의 축복이요 선물인 것 같습니다.
이제 무릎의 철심도 제거했고 실밥도 뽑아서 그런대로 다니지만, 무리하면 다리가 뻣뻣해지고 걸음걸이에 지장이 있습니다. ‘절대로 무리 하지 말라’는 의사의 당부가 봄의 정원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경계선이 한없이 모호해집니다. 어쨌든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각양각색의 모양과 색깔의 나무와 꽃이 있는 정원에서 나는 완벽히 행복합니다.
▲ - 전명순(피아니스트, 신양리주말농장 주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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