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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정리반바퀴] 아, 버리고 버려서(棄棄) 논산땅 다 적신 안천리·신풍리
기사입력  2021/10/12 [20:08]   놀뫼신문

|탑정리반바퀴|

아, 버리고 버려서(棄棄) 논산땅 다 적신 안천리·신풍리

 

 

탑정호는, 일제에서 해방되기 한해 전인 1944년 완공이 되었다. 동양최장을 자랑하는 탑정호 출렁다리는 올 여름에 개장이 되었다. 77년 만의 큰 변화다. 수문과 출렁다리는, 남북을 가로지르면서 크고 작은 변화의 바람을 몰고왔다. 탑정호 드라이브 하면, 논산 사람들 대부분은 남쪽으로 편향한다. 거기는 가야곡면이고, 서울로 말하면 강남(江南)이다. 북쪽으로는 부적면이다. 그래서 탑정호 북쪽 저수지길 이름이 ‘부적로’이다. 


 

부적로는, 그러나 부적면 전체를 관통하는 주도로가 아니다. 부적면사무소 앞에 있는 부적우체국 건너편에서 시작하여 신풍리 수변생태공원에 이르는 소로 2차선 길이다. 부적면 길들은 신풍리는 신풍로, 충곡리는 충곡로, 탑정로, 마구평로 식으로 대개는 그 동네 이름을 따랐지만, 탑정호 데크길과 가까웠다 멀어졌다 하면서 동행하는 수변길은 그냥 부적로이다. 

이 길은 행정구역상 ‘신풍리’이다. 신풍로라 하면 될 것도 같지만, 신풍로는 신풍매운탕 있는 쪽으로만 치우쳐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고, 과연 이대로 좋은가?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찾아볼 겸, 탑정호 수몰 이전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30년 역사로 사라지는 ‘안천’매운탕

 

탑정저수지 하류쪽에서 북반구, 즉 대명산 아래쪽 마을 이름은 안천리다. 여기에 130여 가구가 살았다. 그러다 이 일대가 수몰지구가 되면서 안천리는 안개처럼 사라졌다. 안천리가 사람들 뇌리에서 잊혀져 갔지만 그나마 한가닥 끈은 있었다. 30년 전, 대여섯 가구만 남은 이 동네에 식당이 하나 생겼다. #안천매운탕! 탑정호 하면 매운탕, 매운탕 하면 안천매운탕과 신풍매운탕일 정도였다. 그 후 저수지 분위기에 걸맞게 민물매운탕집이 생겨나 예닐곱 곳이 되었다. 

그런데 현재는 그 절반만 영업중이다. 나머지는 휴·폐업중인데, 좀 이상하다. 출렁다리 개장으로 활황기에 접어들 거 같은데 이런 때 문을 닫다니? 식당들 대신에 몇몇 카페가 들어섰다. 군사박물관쪽에서 오면 신풍리 대전추어탕 옆에 카페 루스가 나란하고 머잖은 곳에 농부장터카페도 있다. 안천매운탕 옆집은 ‘사랑방’이라는 편의점 겸 카페로 변신하였다. 좀더 내려가면 ‘자연밥상’인데 그 옆에 황토카페 ‘민들레’가 오픈했고, 그 맞은편은 24시편의점이다. 

한편 강남쪽 종연리와 조정리쪽으로는 카페 밀집지역이다. 매장도 넓고 모던한 딜럭스풍이다. 이에 비해 강북쪽은 부적로 따라서 뜨문뜨문이고, 아담사이즈에 주인 개성이 돋보인다. 이런 흐름에서 10월말 오픈을 목표로 한창 공사중인 곳이 하나 있다. 안천매운탕이 있던 집에 식당 간판은 온다간데 없어지고 Cafe Mignon이라는 프랑스 간판이 새로 걸려 있다. ‘미뇽’은 ‘귀여운, 사랑스러운, 예쁜(아이)’다. 2층처럼 보이는 실내 50여 평에 옥상까지 단장하면 전망 좋은, 탁 트인 카페로 변신할 거 같다. 

안천매운탕은, 화산식당의 붕어매운탕이 원조다. 안천매운탕 김준호 대표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화산중학교 이사장이 안천리 김대표 집에 와서 탑정호 내려다 보더니만 “여기에 붕어매운탕집 내면 대박” 날 거라 조언해 주었다. 살림집을 식당으로 개조하고 매운탕집 장사는 승승장구하였다. 그러나 호황은 수 년 전까지였고, 이제는 붕어공급 등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 되면서 올해는 드디어 전업을 결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영화 “인간시장”도 제작한 영화인에다가 현재 한국힙합문화협회중앙회 수석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번 개막식 행사에도 몇몇 걸그룹, 브레이커즈 들이 출연했는데, 앞으로 카페 미뇽에는 다채로운 문화가 스며들 거 같다. 

 

▲ 휴정서원 내부     ©

 

▲ 김상연 선생 9대장손 김용준(휴정서원장)     ©

 

▲ 김상연 선생 10대종손 김준호(안천매운탕 )     ©

 

 

‘사계집’을 요약 정리한 기기재 선생 

 

김준호 씨는 기기재 김상연 선생의 10대 종손이다. 최근 그는 휴정서원 김용준 원장과 함께 광산김씨 숙원사업 하나를 이루었다. 지난 9월 30일, 기기재 김상연(金尙埏) 선생의 유허비를 건립하는 행사를 치뤘다. 안천매운탕으로 한가닥 유지되던 지명 안천리가 전업으로 영영 사라지는 듯했지만 “안천정사”에 살던 김상연 선생의 유허비 건립으로 안천리라는이름이 명맥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대명산 밑자락인 안천매운탕 일대는, 산쪽으로 여유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널럴한 주차장이 만들어졌다. 산쪽으로는 대나무숲인데, 그쪽을 손 보면 대나무숲길이 조성되면서 산등성 등산로와도 접선이 될 전망이다. 

안천리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기기재 유허비’는 도로변 주차장 초입에 육중한 크기로 세워졌다. 안천리는 1600년대 광산김씨 120여 호가 살던 조요한 동네였다. 여기서 기기재(棄棄齋) 김상연 선생은 1689~1774년 살았다. 유허비 뒷면에는 김희 선생이 쓴 기기재기가 원문과 한글 번역이 나란하게 실려 있다. “나이 90세가 돼서는 행실이 더욱 높았으니 ‘기기’라고 스스로 호를 지은 것은 지금의 군평(君平)이라고 해도 괜찮다” 기기(棄棄)란 ‘포기하고 또 포기한다’는 뜻이다. 의롭지 않고 바르지 못한 것은 절대 취하지 않고 ‘버린다’는 강직한 의지의 표현이라 하겠다. 

제막식에서 김정수 광산김씨도유사는 기기재 선생의 행장 강독을 대신한 말씀에서 “선생은 노론의 중심 학통을 이었으면서도 명리를 버리고 오로지 학문을 탐구했다”며 선생의 올곧은 생애를 소개했다. 사계 김장생 선생(1548~1631)이 쓴 사계집은 방대하다. 그것을 요약한 후손이 바로 기기재 김상연 선생(1689~1774)이다. 

 

안천(安川)이 顔川으로 바뀐 이후

 

그는 안천정사에서 살았다. 당시 안천리 앞에는 거사리천이 흘렀다. 그가 쓴 안천기에 보면 왜 이곳을 안천리라고 했는지 지명변천사가 나온다. 시내의 옛 이름은 안천(安川)이었는데 중간에 안(顔)으로 바뀌었다. 우암 송시열이 ‘물의 성질은 계속 움직이는 것이어서 안安이라고 할 수 없다. 예부터 사람의 집 앞은 顔 혹은 액(額)이라 했다. 시내가 바로 한 동네 앞으로 오니 顔(얼굴顔面의 안)으로 바꿔야 한다’고 한 것이다. 과연 안천리 시냇물은 거센 물결이 되고 산을 덮을 정도의 거대한 형세로 바뀌었다. 이런 흐름에 따른다면, 하늘과 산 이미지인 ‘탑정호’보다 ‘안천호’가 저수지 물 이미지와 걸맞지 않을까 싶다.  

탑정호라는 지명은 굳어졌다손 치더라도, 부적로는 안천길, 안천로가 어울려 보인다. 안천리는 비록 수장되었지만 ‘안천정사’에 살던 김상현 선생은 유허비로 살아났다. 선생은 휴정서원과 충곡서원의 원장이 되어 백록당의 강규로 훈도하였다. 지금 휴정서원에는 기기재 선생 공적비는 물론, 단비(壇碑)도 세워져 있다. 신풍리 휴정서원도 물난리를 겪었다. 

 

 

 

 

 

▲ 휴정서원에 울려퍼지는 우리가락     ©

 

▲ 휴정서원에 울려퍼지는 풀피리소리     ©

 

놀며 쉬는 계곡 휴계(休溪) 휴정서원

 

휴정서원(休亭書院)은 1700년 창건, 휴계(休溪) 유무(柳懋) 선생을 주향으로 봉향하였다. 유무는 광산김씨인 김장생과 김집의 문인으로 병자호란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연산에 칩거한 학자이다. 1881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 후 1919년 중건하였으나 1944년 탑정저수지 완공으로 수몰될 처지에 몰려 현재의 위치에 단소를 설치하고 제를 지내왔다. 1984년 사우(祠宇)를 복설하였으며 1985년 3월 20일 송익필을 주향으로 하여 기기재 등 총 8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해마다 음력 3월 20일과 9월 20일에 제사를 지낸다. 휴정서원정사실비(休亭書院庭事實碑) 비석이 세워진 시기는 1992년이다. 

탑정호 북쪽은 세 개의 산이 탑정호의 엄청난 수압을 버텨주고 있다. 대명산(181m) 수락산(167m) 고정산(146m) 이 세 봉우리를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형 한복판이, 탑정호 수변생태공원이다. 수몰 후 안천리는 대여섯가구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신풍리로 흡수되고 말았다. 수변생태공원에서 물길 따라 양촌쪽으로 남하하면 그 끝이 신풍매운탕이다. 신풍로 해변길에는 로컬푸드 매장이 있고, 곧바로 제1주차장이다. 대전 양촌에서 오는 자가용이 주차하기에 드넓기만 한 흙주차장이다. 출렁다리 개장에 발맞춘 탑정호 순환버스는, 주말 9~18시에 5~10분 간격으로 꼬리를 잇는다. 그 종점이 제1주차장이다. 신풍로 가로수길 감나무의 홍시가 탐스럽다. 신풍리 부녀회 수입원이라는데, 그 감나무길은 신풍매운탕집 마당까지만이다.

탑정호를 한 바퀴 돌 때 아직도 뚫리지 못한 길이 신풍리 여기다. 고정산 물자락인 신풍매운탕에서 거사리들(양촌면 반곡2리회관 앞 논) 막다른 길 사이는 여전히 불통이라서, 탑정호 전체 라운딩을 원한다면 고정리 고정터널을 넘나들어야 한다. 

휴정서원은 신풍매운탕 인근, 위쪽으로 있다. 노출이 쉬 되지 않은 한적한 산 아래다. ‘휴식하는 계곡’을 의미하는 휴계(休溪) 선생의 휴(休) 이미지에서인지 힐링이 저절로일 거 같은 막바지 공간이다. 대부분의 서원이나 향교는 문이 닫혀 있는 편이지만 휴정서원은 그래도 열려 있는 편이다. 주말에는 꼭 열려 있다. 국악협회 논산지부 회원들을 포함한 국악인 예닐곱 명이 도현각(道賢閣) 앞뜰에서 연습을 하기 때문이다. 10월 25일(음09-20)에 열리는 추향제(봉행)에서 그들의 ‘정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기자가 김용준 원장과 함께 서원으로 들어가자 엿가위 장단소리가 들려왔다. 연습중이던 조성수 국악인은 우리에게 엿장수 소리와 풀피리 연주를 선보였다. 우리 나라에도 풀피리협회가 10여 년 전 결성되었는데, 풀잎을 따서 입술로 불어 소리 내고 연주도 하는 자연음악이다. 호띠기와는 달리 풀잎을 뜯어서 부는데 “초등생들은 10분 후면 대부분 불기 시작한다”고 들려준다. 

서원 바로 옆은 2층 카페 Finial(피니얼)인데, 현재는 휴업중이란다. 이토록 외진 곳에 이리도 큰 공간이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특히 이쪽에서 바라보는 탑정호 석양은 죽여준다고들 하는데, 고객 입장에서는 전망 외에 또다른 무엇도 찾나보다..... 

 

▲ 솔바람길에서 만나는 신풍리 마애석불     ©

 

▲ 영사정 고택의 바라지문(부엌문)     ©

 

 

 

 

 

논산의 비경 마애석불과 김자빈, 신현구

 

휴정서원은 솔바람길의 종점으로서 반환점이다. 혹은 군사박물관이나 충곡서원쪽으로 해서 다시 수락산~돈암서원으로 회귀하는 변곡점이다. 기자는 솔바람길을, 하산한 사람들과 마주보며 올라갔다. 솔바람 오르막길은 대나무숲길, 실로 고즈넉한 길이다. 이윽고 나오는 영사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29호로 적혀 있다. 세조때 좌의정 김국광과 좌참찬 김경광 형제가 시묘살이 3년을 했다는 집이다. 문은 굳게 잠겨 있지만 집옆의 약수터, 돌계단으로 해서 올라가면 커다란 암벽 위에 새겨진 마애석불이 반긴다. 논산에 4개의 마애불이 있다는데, 논산에 이처럼 유서 깊은 곳, 이런 비경이 있나 싶을 정도로 감탄이 터져나오는 일대이다. 광산김씨의 허씨 할머니가 치성을 드린 곳이라는데, 절이 있던 자리라고도 한다. 거기서 좀더 오르면 고정산 사계 김장생 선생 종택과 묘역이 있는 고정리다. 

고정산 솔바람길 밑 신풍리, 대명산밑 안천리는 광산김씨의 독무대다시피하다. 이 일대 서원만 해도 돈암서원, 충곡서원, 휴정서원 세 곳이나 된다. 이 중 충곡서원은 계백장군과 사육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므로 초창기에는 ‘육신서원’이라 하였다. 11명이 추가되어 17현인데, 추가배향 인물 중에 김자빈(金自殯)이 포함되어 있다. 사계 김장생 문하에서 수학한 그는 경서와 병략에 통달하였다. 병자호란때 금천(용인)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칼이 부러져 사로잡혔다.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는 청군에게 가래침을 뱉어 능지처참되었고 한때 그의 가묘가 계백장군 밑에 씌여졌다고, 정려는 안천리에 세워졌다고 한다. 

이야기는 다시 안천리로 돌아온다. 2018년 대전보훈청은 1월 우리지역 독립운동가로 신현구 선생을 선정하였다. 신현구 선생은 1882년 부적면 안천리에서 태어나 고향인 논산에서 개척교회를 세우며 전도 사업을 벌였고 1919년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적극 참여했다. 이후 대한독립애국단 결성과 제2의 3·1독립운동 만세시위 등을 추진하다가 체포, 모진 고문 여독으로 1930년 순국한 애국지사다. 아, 안천리. 그 안천리를 되살리는 작은 방법 중의 하나가 ‘안천로’의 부활이이요 시대정신의 부활이지 않을까 생각키우는 안천리다. 

 

- 이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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