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있나!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고, 가고 싶은 데 가고, 보고 싶은 사람 보며 사는 것, 그게 인생이지….” 얼마 전 친구가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인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돈은 기본이고, 건강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취미도 있어야 한다. 사람 사이에 좋은 관계는 필수다.
조금만 욕심을 덜어내자. 그러면 가볍게 산책하듯이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먹는 것이야 식성 문제이고, 발품 부지런히 팔면 새로운 곳을 여행할 수도 있다. 함께 있으면 마음 편해지는 친구가 있고, 당신의 아픔보다, 내 건강을 더 걱정 가족도 있으니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인생을 꿈꾸어도 될 듯하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연구소’에서는 75년간(1938년부터) 724명의 인생을 종단 연구한 적이 있다. 10대 때부터 매년, 대상자들의 가정생활, 일, 건강에 대한 설문과 인터뷰 등을 통하여 상세히 기록하고 분석하였다. 그 결과 얻은 교훈은 사람의 행복과 건강이 부나 명예, 혹은 열심히 노력하는 데 있지 않았다. 연구에서 얻은 결론은, 사람과 좋은 관계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만들게 한다는 메시지였다. 이들 연구 대상들도 젊은 시절에는 부와 명성, 높은 성취를 추구해야만 좋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진심으로 믿었었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삶을 산 사람들의 공통점은 의지할 가족과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공동체가 있는 사람들이었다(Robert Waldinger,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소장, TED강연).
나이듦의 미학
나이 듦의 미학 -욕망을 덜어낸 평온함, 고요하고 평화로운 일상, 죽음 앞에 선 존재의 가벼움 등, 석양의 노을 같은 아름답게 물든 노년. 나이 듦만큼의 여유와 지혜- 편협하고 옹졸하게 자기의 주장만 옳다고 고집하지 않기, 곰삭은 세월이 알려준 넉넉한 이해심과 배려심, 겸손함으로 꼰대스러움은 졸업이다.
좋은 관계는 좋은 대화를 필요로 한다. 매사 부정적인 말투, 남의 험담, 가시 돋친 말은 어른답지 못하다. 삶에 부정적인 태도는 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언제 뛰쳐나올지 모른다. 감사할 줄도, 존경할 줄도 모르는 태도로 상대방의 흠집만 잡는 사람과의 대화는 삶의 에너지를 깎아 먹는다.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단다. 입이 하나, 귀가 둘인 까닭이다. 인간관계론의 학자들은 ‘상대방의 좋은 점을 찾아 칭찬하라’고 강조한다. 좋은 관계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욕망을 덜어내듯이 서재에 쌓인 먼지도 털어내고 수십 년간 묵은 책들도 정리한다. 한 뭉치의 노끈을 다 쓰고도, 아직 버려야 할 낡은 책들과 추억으로 가득하다. 서재 한 귀퉁이상자에는 지난날의 사진도 수북하다. 씁쓸한 장면도 나오고 웃음이 터지는 추억도 묻혀 있다. 내게는 소중해도 아이들에게는 쓸모없는 쓰레기일 뿐이다. 어디 사진이나 책들뿐이랴, 내가 살아온 흔적들도 정리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짐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수 삼 년 전부터 유행하던 신조어들이 있다. 몸도 마음도 풍요롭게 잘 먹고 잘사는 웰빙(Well being; 참살이), ‘9988234’ 무슨 암호 같지만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틀 앓고 3일째 죽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라는 웰다잉(Well-Dying)도 있다. 정말 잘 죽는 방법은 정말 잘 살다가 죽는 것이다.
웰빙과 웰다잉은 동의어
아름다운 노년의 멋스러움은 Well being의 연장선이다. 고희(古稀)를 넘어 팔순 청년인 지인 한 분은, 자신의 특기가 도전이란다. 얼마 전부터 성악을 공부하더니 유튜브를 배워서 운영한다.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 쉴 사이 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고립되고 싶지 않으려면 늘 다가가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시대와 소통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겨야 한다. 헐뜯고 비난하지 말고, 때로는 손해 볼 때도 있고, 이익을 볼 때도 있지만, 그런 것은 따지지 말기, 상대편 말 들어주기, 공감대 만들어가기..... 자기주장이 강할수록 친구는 멀어져간다.
호기(豪氣)로 자기 건강에 해로운 짓을 한다고 해서 일찍 죽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만성질병으로 고통받을 수도 있다. 본인도 힘들지만 정작 고통받는 것은 가족들이다. 병은 말을 타고 들어와서, 거북이를 타고 나간다. 남겨줄 유산이 없으면, 내 건강이라도 챙겨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접촉하고, 관계를 맺는 것은 행복의 필수 조건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상과의 접촉하는 지평이 줄어들고,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럴수록 중요한 건 인연을 맺으며 살아야 하고, 맺은 인연을 잘 관리하여야 한다. 다행히 은퇴자들을 위한 사회기반시설은 다양하다. 마음만 먹으면 이러한 평생교육시설 등의 모임에 참가하여 관계의 지평을 넓히고 유지할 수 있다. 배움은 하나의 덤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하나의 과정이다. 삶의 끝자락에 서야, 비로소 인생이 짧다는 사실을 몸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 서 있다. 나이와 싸우지 마라. 나이듦은 걷기와 비슷하다. 서로를 의지하며 천천히 즐기면서 걷자.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어려운 것이 어른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