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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집] 인연을 잘 지어야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기사입력  2025/08/27 [14:06]   놀뫼신문

 

사람은 자기 몫을 하고자 하는 의식이 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 안에서, 직장에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려고 한다.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 어려운 일을 스스로 맡아 처리하고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기도 한다. 사극을 보면 전장에서 앞장을 서서 적을 공격하도록 허락해 줄 것을 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선봉에 서면 위험은 그만큼 더 커진다. 그럼에도 그리하는 것은 공을 세워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 보이고자 함이다. 이것을 부질없는 허영이라고 폄훼할 수 없다. 그래서 일이 성공하고 세상은 더욱 윤택해진다.

땅 역시 품 안에서 좋은 식물을 키우고자 할 것이다. 그래서 열매를 맺어 종()을 보전하고, 사람의 생명을 지켜 준다. 그런 땅을 오래 묵혀 두는 것은 땅에 대한 대접이 아니다. 봄에 완두콩을 심었던 자리를 오래 쉬게 했다. 완두콩을 때에 맞춰 심기는 하였으나 농업 기술이 부족하여 겨우 씨를 거두는 정도의 수확이었다. 농부가 된 지 십 년이 넘었건만 농사 기술은 늘지 않고 힘은 자꾸 줄어든다.

 

인연은 지은 대로 되돌아온다

 

한 작물을 심어 가꾸어서 거두고 나면 다음 작물을 심어야 한다. 그때는 그다음 작물을 심기 전에 수확할 수 있는 작물을 심어야 한다. 그래야 밭을 놀리지 않고 제대로의 역할을 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완두콩을 거두고 나서 마땅한 작물이 없어 오래 밭을 비워 뒀었다. 그게 늘 마음을 편치 못하게 했다. 곡식을 심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하다는 말이 맞다. 밭이 비어 있는 사이에 잡초가 번갈아 나서 때마침 내린 장맛비에 무성하게 자랐다. 베어내면 자라고, 베어내면 또 자랐다. ‘호랑이 새끼 치겠다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마당을 다니던 차림새로 밭에 나갔다. 잠깐, 풀이 얼마나 우거졌는가만 보고 돌아오려는 생각이었다. 작은 일도 계획대로 되는 경우는 드물다. 잠깐이라고 했는데, 눈에 띄는 것이 많다. 그러면 저절로 손이 먼저 간다. 꼴사나운 풀을 몇 포기 뽑고, 늘어진 고추 가지를 매어 주고 하다가 몇 분이 흘렀다. 아뿔싸, 이참을 영악한 물것들이 놓칠 리 없다. 복숭아뼈 언저리가 근질근질하다. 서둘러 돌아와 해독제를 발랐다. 그래도 발갛게 독이 번진 살갗은 진정되지 않는다. 가려움이 점점 심해지니 후회막심이다. 밭에 나갈 때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해충 기피제도 뿌려야 했다. 그런데 바로 들어올 생각으로 그런 일을 귀찮게 여겼으니 벌레에 물리고 가려움에 시달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인과응보(因果應報)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치이다. 응보가 두려우면 인연을 잘 지어야 한다. 그래서 세상살이가 두렵고 힘들다.

 

후회할까 말까, 내게 달렸다

 

참 많은 인연을 맺었다. 그냥 비껴갔더라면 그도 나도 좋았으련만 어쩌다 만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은 사람의 뜻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니 야속한 일이다. 그 잠깐을 견디지 못하여 뜻을 갈려 목소리를 높이고 돌아서서는 미움을 지우지 못했다. 그 미움이 크면 클수록 오래 지워지지 않고 내 마음도 깊이 후볐다. 그가 미워서 일부러 더 심하게 성을 내기도 하고, 목소리를 높여 앙갚음을 하기도 했다. 지나서 보면, 참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때 그게 뭐라고 그리했던가. 그냥 좀 모자라는 대로 받아 주고, 눈에 설어도 그냥 지나쳤더라면 좋았을 것을.

나중에 내가 아무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의식만 말짱할 때, 과거를 돌아보며 많이 후회하리라. 그것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여, 그것이 정의라는 생각으로, 뒷날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서 했던 일들이 딱히 옳기만 했는가. 옳은 것을 추구하면서도 좀 더 부드럽게 하고, 억지로 하게 하지 말고 그 사람을 아껴주어 제 스스로 하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백전백승하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더욱 좋다는 장자의 말씀을 늘 잊지 않으려 하면서.

오늘도 여름은 무성하여 바깥에 나가기가 두려울 만큼 덥다. 이 더위도 여름을 따라갈 날이 멀지 않다. 가을을 지나 겨울이 와서 날씨가 차가워지고 눈보라 치면 이 여름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지나간 것은 때때로 우리에게 그리움으로 되돌아온다.

 

▲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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