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대구 노곡동에 쏟아진 집중호우는 단순한 기상이변을 넘어 총체적인 인재(人災)로 기억됐다. 빗물에 잠긴 마을,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하는 주민들, 그리고 막혀버린 배수시설. 직관로 수문은 고장으로 겨우 3%만 열려 있었고, 제진기는 쓰레기에 막혀 기능을 상실했다. 여기에 복잡한 행정 구조까지 겹치면서 골든타임은 무용지물이 됐다.
이처럼 자연재해 앞에서 시설과 조직의 준비 상태는 곧 시민의 생명과 직결된다. 그렇다면, 금강 하류의 배수 요충지인 논산시는 어떠할까?
이번 [표지초대석]에서는 시민의 일상을 무사히 지켜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밤낮없이 뛰고 있는 논산시 배수조명TF팀(이하 TF팀)을 찾았다.
■ 시민 생명을 지키는 논산의 숨은 허리, 배수조명TF팀
논산시 건설과 소속 TF팀은 박철규 팀장을 필두로 총 10명의 직원들이 근무 중이다. 이들은 도심의 혈관과도 같은 7개의 배수펌프장(낭청, 서창, 동흥, 방축, 등화, 대교, 지산)과 53개 배수통문을 24시간 감시·운영하며, 동시에 가로등·보안등의 설치 및 유지관리, 하천·소하천의 불법행위 단속까지 전방위적 업무를 수행한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점은, 지난 1월 1일부터 배수펌프장 운영을 민간 용역업체가 아닌 TF팀이 직접 맡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현장 대응의 신속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박철규 팀장은 “과거에는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용역업체를 통해 전달하고 조치를 기다리는 사이 중요한 시간이 흘러버렸다”며, “이제는 우리 팀이 직접 모든 상황을 판단하고 실시간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집중호우의 밤, “우리는 한 번도 물러선 적이 없다”
집중호우가 시작되면 TF팀은 자동적으로 ‘전시체제’로 돌입한다. 기상특보 발령과 동시에 펌프장에는 비상근무 인력이 24시간 투입되고, 팀원들은 침낭과 도시락으로 무장한 채 사흘 이상을 펌프장에서 먹고 자며 근무하게 된다.
“비상근무가 끝났다고 해도, 하천 수위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매뉴얼상 ‘안전’이란,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확인했을 때 비로소 성립하는 개념이거든요.”
이처럼 TF팀의 하루는 평상시에도 바쁘다. 각종 설비의 점검과 교체, 유수지 준설, 가로등 교체, 전선 정비, 보안등 위치 조정 등 관리할 대상이 24시간 끊임없이 쏟아진다.
이환희 주무관은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이라며, “비가 내리기 전, 전조 증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수시로 유량 측정, 펌프 가동 점검, 전기계통 확인을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 물을 빼내는 일, 그것은 결국 사람을 지키는 일
“폭우가 쏟아지면 우리부터 달립니다. 펌프장이 침수되지 않도록 수문을 먼저 열고, 쓰레기를 치우고, 모터 이상을 점검하죠. 비에 옷이 젖는 건 걱정도 안 해요. 기계가 멈추는 게 더 무섭죠.”
전우철 주무관의 말은 담담했지만, 그 안엔 깊은 책임감이 배어 있었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하태정, 박경준, 유경식, 이희수, 황재구, 김경일 주무관 역시 같은 생각을 전했다.
“시민들의 일상은 저희 손끝에 달려 있다는 생각으로 일합니다. 배수가 늦어지면 도로가 침수되고, 차량과 보행자 안전에 큰 위험이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철저히, 꼼꼼히 일할 수밖에 없어요.”
또 다른 팀원은 “한여름 밤에도, 한겨울 새벽에도, 시민이 느끼지 못하는 곳에서 도시는 돌아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톱니바퀴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게 우리 몫입니다”라며 웃어 보였다.
■ 도시의 밤을 밝히는 또 다른 손길, ‘조명’ 업무
배수 못지않게 중요한 TF팀의 또 다른 축은 ‘조명 관리’다. 논산 시내 곳곳 20,000여 개의 가로등과 보안등은 모두 이들의 손길을 거친다.
고장이 접수되면 바로 현장을 방문해 전선을 점검하고, 기둥을 오르며 등을 교체한다. 야간 보행자 안전 확보, 범죄 예방, 교통사고 방지를 위해서라도 즉각적인 대응이 필수다.
박철규 팀장은 “배수는 비를 막고, 조명은 어둠을 밝힙니다. 서로 다른 일이지만 결국 지향하는 건 시민의 안전입니다”라며, “이 두 가지를 함께 담당하는 TF팀은 도시 안전의 허리를 지탱하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 눈에 띄지 않아도 가장 중요한 자리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대신,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 우리가 잘했다는 증거니까요.”
이 말은 TF팀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문장이 아닐까.
기록적인 폭우가 자주 찾아오는 요즘, TF팀의 존재는 더욱 절실하다. 기후 위기의 시대, 공공안전은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화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노고는 종종 ‘당연한 일’로 취급되기 일쑤다. 시민의 생명과 도시의 기능을 지키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냉담한 무관심이 아니라, 뜨거운 격려와 실질적인 지원이다.
■ “시민의 평온한 하루가 우리의 자부심입니다”
논산시 배수조명TF팀은 단순한 기술 부서가 아니다. 그들은 도시를 지키는 최전방의 조용한 방패이자, 우리가 비바람 속에서도 편안하게 하루를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이 말없이 막아낸 물길 하나, 밝힌 가로등 하나가 시민의 생명과 안전, 일상의 평온함을 지켜주고 있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자.
박철규, 김경일, 박경준, 유경식, 이환희, 이희수, 전우철, 하태정, 황재구, 김동현.
낮은 곳에서 조용히 도시를 떠받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있는 한, 논산의 밤은 안전합니다.”
이 한마디가, 그들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 준다.
- 전영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