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세월이지만 살다 보니 평상시 덕을 쌓으면서 살아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별것도 아니면서 자랑하고 싶고, 뽐내고 싶고, 드러내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을 봐 왔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살아 보니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않는 것이며, 성공했다고 지나친 기쁨에 도취 되지 않는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오는 손(손님) 부끄럽게 하지 말고, 가는 발길 욕되게 하지 말라.’ 내가 좌우명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저녁노을이 질 때면 내 방 유리창은 장미 꽃잎으로 도배된다.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그럴까를 생각해 본다. 터널은 어두운 곳이지만 가고자 하는 곳에 이르게 하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몸소 일깨워 준다. ‘멀리 있다 해서 잊어버리지 말고, 가까이 있다 해서 소홀하지 말라. 악(惡)을 보거든 뱀을 본 듯 피하고, 선(善)을 보거든 꽃을 본 듯 반겨라.’ 어떤 스님의 말씀인데 어떤 분인지 생각이 안 난다. 기억력이 많이 쇠퇴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여기에 이런 말을 덧붙이면 어떨까? ‘누구든지 연습만 하면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 나이도 상관없고, 체력도 상관이 없다.’고 말이다.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복이 굴러 들어온다. 밭일 나가는 엄마가 차려놓고 간 밥상 위의 쭈그러진 냄비와 빨간 총각김치가 생각난다. 그 시절이 그립다. 은혜를 베풀거든 보답을 바라지 말고, 은혜를 받았거든 작게라도 보답하라시던 어머니가 오늘따라 그립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던 어머니다.
내 친구 중에는 사소한 일로 해서 원수 맺지 않고, 이미 맺은 업보는 자신이 먼저 푼다. 그렇다. 열 사람의 친구보다 한 사람의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친구는 허리를 숙여 꽃밭 같은 마음으로 나를 따뜻하게 안아 주는데 나는 왜 안 되는가? 그러다 보면 두부를 먹다가도 이빨 빠지고, 뒤로 자빠져도 코 부러진다.
공짜는 주지도 받지도 말고, 노력 없는 대가는 바라지 말라는 정신으로 살아온 나에게 칭찬의 박수를 보낸다. 봉사는 말 그대로 돌아올 것을 바라지 않고 하는 행동이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이 끼어 있다면 그건 참 봉사가 아닌 위선 봉사다. 그러면 정적만 쌓이던 방 안에 찰랑찰랑 생기가 돈다.
받는 기쁨은 짧고, 주는 기쁨은 길다. 늘 기쁘게 사는 사람은 주는 기쁨을 향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다. 주는 것을 낙으로 삼되, 반드시 되돌아오기를 기다리지 말자. 내가 남한테 주는 것은 언젠가 내게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내가 남한테 던지는 것은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나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용서하고, 나를 다독이는 마음으로 상대를 다독여라. 그게 현자가 취할 행동이다. 그러면 뻥 뚫린 다라이 아래에도 시원한 바람이 분다. 심 봉사 눈 뜨는 소리로 연꽃이 활짝 열리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것이다.
비뚤어진 마음을 바로잡는 이는 똑똑한 사람이고, 비뚤어진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걸 깨달으면 버스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내가 좋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텔레비전 옆에 놓여 있는 못난이 삼 형제들도 나를 보고 웃으며 춤을 춘다.
동네 누님들과 함께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며 가재를 잡던 고향의 물 맑은 산하가 그립다. 동무들과 함께 올라가 밤을 털던 산도 그립고, 머리에 밤송이를 맞고 울며 밤 가시를 빼달라던 친구도 그립다. 인생도 태양의 계절이 지나간 것처럼 뜨겁게 젊음의 계절을 보내고, 나이를 먹으면 뭉클하고 그리운 것들이 많아진다.
운이 좋으면(?) 소나기 한줄기 지나간 뒤 무지개 선물을 받는다. 그 선물은 아이처럼 환한 웃음을 머금게 한다. 살아있음을 절절히 느끼는 순간이다. 머릿속은 텅 빈 충만으로 가득하고, 눈은 맑은 초록으로 가득 찬다. 생활에 쌓이는 먼지, 마음에까지 쌓이게 하면 될까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