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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집] 추위 속에서 꽃을 생각한다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기사입력  2025/01/21 [18:54]   놀뫼신문
 
춥다. 날마다 춥다. 겨울이니까 추운 게 당연하다.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라는 말은 몸은 늙어도 마음은 안 늙는다는 말이다. 그처럼 몸은 추워도 마음은 춥지 않아야 하는데…. 몸도 춥고, 마음도 춥다. 몸이 추운 것보다 마음이 추운 게 문제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 몸에 병이 들었어도 마음이 건강하면 병을 이길 수 있고, 처지가 빈한하더라도 마음이 여유를 잃지 않으면 남에게 궁기(窮氣)를 드러내지 않는다. 어떤 처지에 놓일지라도 늘 마음이 문제다. 그런데 요즘은 몸이 춥고, 마음은 더 춥다.
 
■ 추운 겨울날들
 
다행히 요즘 들어 해가 길어졌다. 동지가 지나면 해가 하루에 노루 꼬리만큼 길어진다더니 낮이 길어졌다. 소한과 대한도 지났다. 아직도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옷깃을 단단히 여미게 하지만, 곧 추위가 물러갈 것을 생각한다. 몸은 차가워도 마음이 훈훈해진다. 
겨울은 이미 힘을 잃었다. 한때는 겨울이 우리를 뼛속까지 얼릴 것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자연의 이치는 그렇게 오래 겨울을 역성들지 않는다. 어떤 때 세상은 내 편에 서 있지 않고, 나를 핍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묵묵히 내 갈 길을 걷다 보면 세상은 어느덧 나와 동행하고 있다. 세상이 아니라 언제나 내가 문제다. 많은 사람이 문제의 해결점을 상대에게서 찾으려 한다. 상대에게 문제가 있고, 세상이 문제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런 사람과 어울려 살고,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면 답이 명백하다. 내가 문제다. 원인을 나에게서 찾아야 엉킨 실타래가 풀린다. 상대에게서, 세상에서 해결점을 찾으려 하면 끝내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입춘이다. 저 멀리서 봄이 오고 있다. 지금 땅속에서는 수선이며 튤립 같은 구근류는 뿌리를 쭉쭉 뻗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뿌리를 열어 영양을 빨아들이고 있다. 겨울이 길면 길수록 더 많은 영양을 축적하여 줄기는 힘차게 솟아올라 더욱 크고 고운 꽃을 피울 것이다.
나는 이따금 자연의 오묘함에 찬탄한다. 언젠가 텃밭에 나가 보았더니 겨울인데도 새싹이 돋고 있었다. 저절로 나고 크는 식물은 알아서 싹이 트지만, 사람이 씨를 뿌려 가꾸는 채소는 철을 잘 맞추어야 한다. 제때 씨를 뿌려야 줄기와 잎새가 제대로 자라 실한 열매를 맺는다. 식물마다 자라서 열매 맺는 제철이 각기 다르다. 좀 쌀쌀한 시절에 잘 자라는 것이 있고, 따뜻해야 잘 자라는 것이 있다. 나는 해마다 텃밭에 완두콩 농사를 짓는데 자주 농사를 망친다. 때를 맞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의 밭에는 완두콩이 한 뼘이나 자랐을 때 부랴부랴 씨를 심는다. 그러니 열매가 제대로 달릴 리 없다.
언젠가 오래오래 냉이의 씨앗을 들여다본 적이 있다. 그 씨는 아주 가볍고 얇았다. 씨앗이라는 걸 알고 보아서 씨앗이지 마치 공중에 떠도는 먼지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작은 씨앗에서 싹이 트고 줄기와 잎이 자랐다. 그리고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꽃을 피웠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작은 것이 때를 맞추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줄 알다니. 
모든 일은 세상을 탓하지 말고, 시간을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 봄은 오고 꽃이 피기 마련
 
두려워하면 더 무서워진다. 독립군은 체계적인 군사 훈련을 받지 않았어도, 충분한 무기를 갖추지 못했어도 일본군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웠다. 맞서 싸우겠다고 생각을 바꾸면, 힘이 충분하지 않아도 두려움이 사라진다. 싸우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면 공포는 더 커지고 마침내 굴복하게 된다. 적에게 항복하지 않으려면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
햇볕을 따라 밖으로 나온다. 또 때를 놓쳤다. 지난가을에 심어야 했던 튤립을 언 땅을 헤집고 심는다. 미안한 마음에 구근을 살며시 쥐어 본다. 구근은 나의 게으름을 탓하지 않고 언 땅을 녹여 뿌리를 뻗을 것이다. 그리고 봄이 되면 싹을 틔워 꽃을 피울 것이다. 지금은 무슨 색깔인지 알 수 없지만, 저마다 깊이 간직하고 있던 물감 단지를 꺼내 꽃을 피울 것이다. 분명한 것은, 꽃이 피면 심어 가꾼 나뿐만 아니라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 모두의 마음을 환하게 열어 줄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추워도 머잖아 봄은 오고, 봄이 오면 또 꽃이 피기 마련이다. 나는 그걸 믿는다.
 

▲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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