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기술에는 기준과 규격이 있다. 마찬가지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전문가들에게는 엄격한 자격과 조건이 필요하다. 자격 기준을 무너뜨리는 행위는 전문가들의 전문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 언어재활사 국가고시 응시 자격과 관련된 논란은 이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대법원의 판결과 국회의원의 법안 발의]
지난해 12월 6일, 대구 주호영 국회의원 지역사무실 앞에서 전국언어치료학과학생총연합회와 (사)한국언어재활사협회 및 언어치료사 800여 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그들의 요구는 명확했다.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고, 원격대학 졸업자에게 언어재활사 국가고시 응시 자격을 부여하려는 법안을 철회하라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이미 10월 31일, 원격대학 졸업자는 언어재활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이 없음을 최종 판결했다. 이는 언어재활사의 전문성과 자격 기준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은 대법원의 판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원격대학 졸업생도 응시 자격을 갖도록 하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는 사법부의 결정을 무시하며 법치주의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문성과 공정성 훼손' 우려]
이 법안이 초래할 문제는 명확하다. 먼저, 대법원의 권위가 무력화될 위험이 있다. 3,500여 명의 언어재활사가 참여한 소송을 통해 내려진 대법원의 판결은 언어재활사 자격 시험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사법적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 결정을 뒤엎는 개정안이 발의되면, 정규 과정을 이수한 졸업생들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고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크다.
또한, 원격대학 졸업생들의 실습 및 임상 경험 부족 문제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언어재활사가 되기 위해서는 대면수업과 현장실습을 통해 전문성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원격대학은 이러한 필수적인 교육 과정을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실제 장애인 대상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정한 기준]
이번 논란은 단순히 자격 시험의 응시 자격 여부를 넘어선다. 이는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기대고 있는 언어재활 서비스의 질과 직결되는 문제다. 한국장애인부모회 고선순 회장은 “자격과 전문성은 장애 자녀와 가족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좌우한다”며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정당한 자격을 보장받기 위해 노력한 이들의 공정성을 지키는 것은 사회 정의의 기본이다. (사)한국언어재활사협회 이은경 회장은 “공정한 자격 제도는 형평성의 기반”이라며 법안의 즉각적인 철회를 요구했고, 한국언어청각임상협회 박현주 회장과 한국언어치료학회 황하정 회장은 공동 입장문을 통해 "교육의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는 법안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하며,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 달라"고 호소했다.
[공정성과 법치주의의 중요성]
보건복지부의 책임 또한 무겁다. 특정 단체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 언어재활사의 전문성과 질적 향상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공정하고 신뢰받는 자격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단순히 언어재활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장애인 복지의 질적 향상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하고 사법질서를 확립하는 일은 사회 안정과 신뢰를 위한 필수 요소다. 자격 제도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법안이 시행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과 가족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자격 제도는 단순히 문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이 믿을 수 있는 전문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공정성과 전문성을 저해하는 법안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