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 먹고 물 마시고’ 나서도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대광실 높은 집에 살면서도 남의 얇은 주머니를 넘실거리는 사람이 있다. 남의 재물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은 도둑이 아니면 거지이고, 없어도 만족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아낸 사람이다.
내가 아는 선배님은 직장에서 고위직에 오르지 않았고, 퇴임 후에는 열심히 운동을 즐기면서 농사를 짓고 있다. 내가 보기에 돈은 이웃에 꾸러 가지 않을 만큼 있고, 건강은 80이 넘은 지금도 테니스를 칠 만큼 힘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허황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선배님을 생각할 때마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흔히 말하는 대로, 행복은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손 안에 있는 것. 내가 찾으면 행복하고 그렇지 못하면 불행하다.
■ 행복을 자신에게서 찾은 사람
엊그제 만났던 초등학교 친구도 부러운 사람이다. 그녀는 얼마 전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어느 할머니 한 분을 보살핀다고 한다. 밤새 안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찾아간다. 아침밥을 짓고 맛깔나게 반찬을 만든다. 그리고 할머니한테 마실 오는 동네 할머니들을 위해 간식을 장만한다. 그녀는 신이 나서 하루하루 어떻게 할머니를 모시는지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잠시 이야기에서 벗어나 다른 생각을 하다가 말을 놓쳤다.
뭐라고? 주한테 하듯이 한다고? 내가 들은 말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고 나는 다잡아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의외로 담담했다. “응. 주께 하듯 한다고.” ‘뭐라고. 주께 하듯 한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묻고 싶었다. 나의 심중을 헤아린 듯이 그녀는 재차 말했다.
“나는 내 몸이 누리는 건강을 보람 있게 쓰고 싶었어. 그래서 누군가를 위해서 일하고 싶어 요양보호사가 되었지. 그런데 혼자서 외롭게 지내는 그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어. 그래서 나는 그 할머니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지. 내가 만일 주님을 만날 수 있다면 그때 내가 어떻게 하겠어. 내가 할 수 있는, 정성을 다하겠지. 그런 심정으로 정성을 다 기울이지. 그래서 나는 그 할머니에게 갈 때마다 주님을 섬기러 가는 것 같아.”
나는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일에 단단히 마음을 먹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남들 앞에서 말로 하는 것은 더 어렵다. 그 생각하고 말한 대로 행동에 옮기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다부진 각오와 끊이지 않는 결연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나에게 이로운 일이 아니라 남을 위한 일이면 더욱 어렵다. 평소의 그녀 성향으로 보아 그렇게 잘 실천할 것이라 믿는다.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종전에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라 성자같이 거룩해 보였다.
■ 무임승차는 정말 행복한가
뒤이어 ‘나는 어떠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역의 번영회에 초청받아 가서, 자원봉사자들의 봉사 사례 발표대회에 가서 무슨 말을 하여야 할 때 내가 처음 꺼낸 말이 <무임승차>라는 말이었다. 그간 나는 어떤 상황에서 내가 남들의 노력과 헌신의 덕분으로 큰 혜택을 받고 있음을 깨달은 적이 있다. 그때 내 뇌리를 스치는 몇몇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언제나 봉사의 현장에 있었다. 수해 입은 농장에서 두껍게 싸인 진흙을 거두어 내고, 길거리에서 밥을 하여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당당했다. 부러운 일이다.
우리는 여러 형태로 봉사에 참여할 수 있다. 나의 경우는 몸을 써서 하는 봉사가 가장 어렵고, 다음이 두뇌를 써서 하는 봉사이고, 다음이 적당한 금전으로 하는 봉사였다. 그래서 나는 몸을 바쳐 현장에서 봉사하는 분들에 대하여 감탄하고 감사한다.
무임승차는 행복하지 않다. 그것은 차비가 없는, 정말 극도의 빈곤자만이 하는 짓이다. 나는 무임승차를 하고 싶지 않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봉사를 찾아 실천하고 싶다. 거기에서 수준 높은 행복을 찾아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