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주위에 초등학교가 있다. 차량 통행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사방이 도로와 인접해 있어 위험이 상존하는 곳이다.
언제부턴가 그 초등학교 주변 도로에 어린 초등학생이 가방을 멘 자세로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는 운전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어른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거나 개의치 않고 항상 그 자리에서 부동자세로 교통지도 봉사를 하고 있다. 아주 예쁘고 귀엽게 생긴 얼굴이다. 나는 지날 때마다 수고에 대한 답으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꽃이 피는 계절에는 얼굴이 더욱 화사하다. 열매 맺는 계절에는 얼굴에 홍조를 띤다. 비가 오는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얼굴은 늘 화사하다. 항상 웃고 있다. 조그만 체구의 그 소녀가 그런 자세로 24시간 봉사를 하니 얼마나 어렵겠는가? 안쓰러운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별들도 그의 수고에 고마움을 느끼는지 한밤중에 내려와 격려의 대화 나누고 있다.
모든 차량은 소위 ‘스쿨존’이라는 이름의 어린이 교통안전지역에서는 시속 30km 이하로 달리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그게 잘 지켜지지 않는다. 누구나 면허를 취득할 때 규정 속도 준수 등 교통법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손바닥에 옹이 박히듯 학습한 내용인데 그걸 잘 지키지 않는다. 그러다가 사고가 발생한 후에야 후회한다. 나도 그런 부류에 속할 것이다.
해마다 스쿨존 내에서의 교통사고가 상상을 초월해 발생하고 있다는 보도다. 건설자재를 가득 실은 트럭들이 달리기 시합을 한다. 승용차들도 예외는 아니다. 시속 30km를 알리는 표지판도 무용지물이다. 해맑은 표정으로 손을 들고 건너가는 아이들이 있어도 그 속도는 크게 줄지 않는다. 급정거하면서 내는 굉음이 듣는 이의 가슴을 얼음장으로 만든다. 육칠십 나이에 졸업장을 받아도 서운한 일인데 십대 초반에 졸업장을 받게 해서야 되겠는가? 너무 일찍 졸업장을 받고 즐거워 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런 일 때문에 그 초등학생이 전면에 나선 것이다. 그 어린이의 교통지도 봉사로 이 지역에서는 교통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부모가 자식의 등하교에 늘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해도 언제까지 자식을 마마보이나 마마걸로 만들 것인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 꿈을 펼쳐가는 아이들이다. 집에 돌아가면 가족사진을 펼쳐 보면서 끈끈한 가족애를 실천하는 아이들이다. 조국의 미래를 두 어깨에 메고 나갈 동량들이다.
사랑 잃고, 믿음 잃고, 국보 잃고 슬픈 삶을 살아야 하는 부모들의 가슴은 까맣게 탄다. 까치집처럼 열려있는 부모의 빈 가슴에 여남은 살 귀여운 자식을 묻게 할 수는 없다.
영국의 계관 시인 워즈워드는 말했다. “하늘에는 무지개가 있고, 땅에는 우리들의 꿈이요, 영원한 미래인 어린이가 있다.”고 말이다. 어린이는 우리들의 희망이요, 꿈이다.
가장과 부가장, 그리고 함께 자라는 자식들은 큰 화분에 자라는 꽃이다. 그 꽃들이 맘껏 미를 자랑하고 향을 발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어른들의 몫이다. 자주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는 일도 그렇다. 삶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맘껏 도와줄 일이다.
이제 세상 구경하기 위해 고개 내민 꽃대를 어른들이 꺾는대서야 될 말인가? 일단 개화하면 사오십 년은 족히 아름다움을 자랑할 몸인데 피기도 전에 꺾는대서야 어디 될 말인가?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호수에 불 밝히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사랑하는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의 심정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땅심 먹고 살아가는 선량한 부모들에게 초점 잃은 젖은 시선을 선물하지 말 일이다.
초등학생의 선행에 박수를 보낸다.
▲ 문희봉 (文熙鳳. 시인·전 강경상고 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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