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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인생박물관] 홍세희 대동황토방아파트 노인회장 "사진으로 대한민국 공군을 기록해온 멋쟁이 노신사"
기사입력  2021/04/06 [22:23]   놀뫼신문

[계룡인생박물관] 홍세희 대동황토방아파트 노인회장

사진으로 대한민국 공군을 기록해온 멋쟁이 노신사

 

홍세희(洪世憙, 78세) 노인회장을 대동 황토방아파트 노인정에서 만났다. 까만 머리에 다부진 체격, 그리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멋쟁이 노신사이다. 이런 외모에서 그를 70대 후반의 노인이라 볼 사람은 거의 없을 성싶다. 화통하고 거침없는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없던 힘마저 불끈 솟아날 거 같다. 


▲ 통일전망대(북한쪽)     ©

 

무작정 상경, 일류사진사가 되다

 

그의 고향은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소재지인 석정리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적벽으로 유명한 물 맑고 산 좋은 곳이라 한다. 이는, 달리 말하면 첩첩 두메산골이란 소리다. 그는 그곳에서 해방 직전인 1944년도에 소작농 집안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배고픔의 기억이 전부라고 한다. 해방 직후 그리고 6·25 한국전쟁 등으로 그의 집안 역시 가난을 벗삼아 살던 시절이었다. 그는 그런 고향에서 20년을 생활하였다.

어느날, 이렇게 지내다가는 나쁜 길로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무작정 집을 나왔다.  굶더라도 큰 곳에 가서 굶어야겠다고 생각한 끝에 시작한 서울생활을 고생 바가지였다.

서울역에서 남산 밑 필동까지 걸어가 ‘자유의집’에서 이틀을 묵으며 일자리를 찾았다. 허사였다. 결국 그는 배고픔에 쓰러졌고 한 식당 주인 아들 도움으로 그 식당에서 잔일을 봐주며 지내게 되었다. 당시 그 식당주인 아들은 대학생이었는데, “사진 기술을 배워보면 어떻겠느냐?” 소개를 해주어 한 사진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사진은 그의 평생 주특기가 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사진기를 다루는 것은 흔치 않은 기술이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하면서 배우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한 2~3년 노력하니까 사진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되더군요.”

그는 23세에 공군 하사관에 응시하여 입대하게 된다. 그때가 1965년도다. 이후 그는 1999년도에 전역을 할 때까지 35년의 군대생활을 사진과 함께 하게 된다.

 

63빌딩보다 높았던 한강 불발탄폭파 장면 촬영

 

그는 김해, 사천, 수원, 광주, 대전, 서울, 계룡 등지의 공군 비행장과 부대에서 근무했다. 그가 상사로 진급한 이후에는 보도 담당 공보관으로 사복 근무를 줄곧 했다. 군인의 신분이지만 오히려 기자에 더 가까웠다. 이처럼 남다른 군생활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남들이 즐거운 시간에 일을 합니다. 시상이나 기념식 같은 행사, 그리고 격려와 사기진작을 위한 회식 등 남들이 즐기는 시간에 저는 그 순간 포착을 위해 긴장하면서 셔터를 누릅니다. 또 사건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가장 먼저 그 현장으로 달려가 촬영해서 기록으로 남깁니다.”

그는 언제 어디든 출동 준비를 위해 비상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사고가 터지면 가장 먼저 그 현장으로 달려가 그 험한 현장을 촬영해야 했다.

그가 겪은 수많은 사건사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이 있다. 한강에서 건진 불발탄 처리 과정을 촬영한 일이었다. 아마 80년대 초쯤일 겁니다. 원효대교와 한강철교 사이에서 공사하던 인부들이 6·25때 불발탄으로 추정되는 포탄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처리하려 처음에는 육군이 출동했는데, 조사 결과 공군의 포탄이니 공군이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출동했지요.”

예나 지금이나 불발탄을 가장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법은 폭파라고 한다. 이 불발탄을 한강 둔치에 모래섬을 쌓아 그 위에 포탄을 올리고 폭파시키기로 했다. 드디어 어마하게 큰 모래섬을 쌓아 그 위에 포탄을 올려놓았다. 카운트다운!

“그것을 촬영하기 위해 모든 방송사와 언론사 기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만약을 대비하여 근처에 있는 아파트들의 창문은 다 열어놓게 하였지요. 혹시 폭발 시 폭풍에 의해 창문이 깨질 염려가 있거든요. 이를 구경하기 위해 안전거리 밖의 구경꾼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답니다.”

공군의 지휘 아래 이루어지는 작전이었기에, 당시 공군의 보도반장으로서 그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오랜 경험으로 어디서 어떻게 촬영해야 폭파 순간을 극적으로 잡을 수 있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강 건너 여의도 63빌딩을 배경으로 폭발 시 일어나는 모래와 물기둥을 촬영하기 위해 바닥에 누워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집중하여 폭파와 함께 수십 장의 고속셔터를 눌러댔다.

그는 63빌딩보다 높게 솟아오른 물기둥과 모래기둥을 리얼하게 포착하였다. 이 사진은 우리나라 모든 언론사들이 가져다 신문과 잡지에 게재한 것은 물론, 세계 각 통신사로도 전송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 계룡산 등산     ©

 

▲ 향적산 등산     ©

 

▲ 휴전선(부대 견학)     ©

 

▲ 태국여행     ©

 

▲ 태국여행     ©

 

 

 

노인회 정상화와 집안일 동시 병행 

 

그는 1970년도에 김해비행장에서 근무할 당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였다. 당시 그는 20대 중반의 멋쟁이 하사였다. 그는 근무가 없는 휴일에 부산 용두산공원에 놀러갔다가 아내를 처음 만났다. 경북 군위에 사는 아내가 마침 언니네 집에 왔다가 용두산공원에 올라왔는데, 그녀를 본 그가 첫눈에 반했다. 그 자리에서 데이트를 신청했고, 2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까지 성공한 것이었다. 자녀는 1남 3녀를 두었다.

“군생활 하며 정말 이사를 많이도 다녔습니다. 또 군인의 박봉에 자녀를 넷씩 두었으니 아내의 고생은 말할 것도 없지요. 그래도 묵묵히 아이들을 잘 키우고 가정을 따뜻한 보금자리로 만들어주어서 고마울 따름이지요.”

재작년 그는 대동아파트의 노인회장이 되었다. 그는 밖에서만 봉사할 것이 아니라 집에서도 봉사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집안일을 많이 돕게 되었다. 설거지도 하고 쓰레기도 분리하여 갖다버리는 등 집안일 하는 그를 보고 딸들이 “아빠가 달라졌어요”하며 놀린단다.

그는 현재 그간의 대동 황토방아파트의 골치 아픈 문제들을 하나하나씩 풀어가며 정상화시켜가는 중이다. 은퇴목사인 정대현(鄭大鉉, 79세) 부회장과 강소자(姜昭子,79세) 부회장의 조력과 모든 노인회 회원들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가능하다며 공을 돌린다. 이처럼 더불어 노력해감으로써 현재 50여 명의 회원들이 노인정을 찾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노력하면 더 많은 회원들이 찾아올 거라고 봐요.” 그런 희망과 목표로 그는 오늘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발걸음을 떼어가고 있다, 멋지게, 힘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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