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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한바퀴] '강경'이 '스승의 날' 발원지가 된 이유가 있다
기사입력  2024/05/16 [09:47]   놀뫼신문

[동네한바퀴] 강경의 죽림서원을 찾아서

 

'강경''스승의 날' 발원지가 된 이유가 있다

 

1958년 강경여중고에 근무하던 윤아중(노성면 고아리) 선생이 병으로 눕자 JRC 단장인 노창실(8회 졸업생)의 제안으로 단원들이 병석에 누워 계신 선생님을 방문해 위로하고 퇴직한 은사를 찾아뵙는 등 스승 존경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1963JRC 단원들은 당시 JRC 단장이었던 윤석란이 청소년적십자 이름으로 은사의 날을 제안하고 사은행사를 개최한 것이 스승의 날시초로 알려져 있다.

1964JRC(청소년 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526일을 스승의 날로 지정하였으며, 1965년부터는 세종대왕 탄신일인 515일로 변경하여 각급 학교 및 교직단체가 주관이 되어 행사를 실시해 왔다.

이렇게 강경에서 스승의 날이 발원되게 된 데에는 역사적 실체가 뒷받침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2024 스승의 날을 맞이해 강경을 한바퀴 돌아보며 그 역사적 실체를 조명해 본다.

 

 

■ 김장생이 건립한 죽림서원(황산서원)

 

강경읍 황산리에 위치해 있는 죽림서원(원장 김선의)은 양호 지역(호남과 호서)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1626(인조 4)에 김장생(1548~1631)을 중심으로 양호 지역 양반들이 주축이 되어 이이(1536~1584), 성혼(1535~1598)을 배향할 목적으로 건립되었으며, 사액 받기 전의 이름은 황산서원이었다. 1663(현종 4)죽림(竹林)’이라고 사액 받았다.

죽림서원은 이이, 성혼을 주향으로 하여 조광조, 이황, 김장생, 송시열을 배향하고 있다. 이후 고종 때, 서원 철폐 명령으로 인해 훼철 대상이 되었지만, 이후 지역 유림의 노력으로 1960년대 복원되어 현재까지도 제향 등의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황산서원의 구조는 두세 칸 규모로 제한하지 않고 주자대전석궁의 예를 따라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서원 건축물 중 김장생의 구상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은 연산의 돈암서원이며, 황산서원 역시 돈암서원의 건물 구조와 유사하다.

17세기 이후 조선은 서원 난립 현상을 규제하기 위해 서원 건립 허가제를 시작으로 서원금령을 통해 사설 서원을 규제하여 황산서원 역시 원우가 중복된다는 이유로 사액이 거부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대사헌이었던 송준길이 나서서 스승을 배향한 황산서원 사액을 재차 요청하여, 결국 16635월에 죽림이라는 현판을 받았다.

 

 

 

 

■ 스승 김장생이 강학하던 임리정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7호인 임리정은 김장생이 1626(인조 4)에 하향하여 후진을 교육하던 자리이다.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 임리정은 <논어>여림심연’, ‘여리박빙이라는 문장의 뜻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정자가 자리한 언덕 동쪽 아래에는 김장생이 창건한 죽림서원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김장생은 그 당시 기호학파의 종사로서 학문은 물론 정치와 경제면에 이르기까지 큰 공헌을 하였다.

 

 

 

 

■ 스승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아놓은 팔괘정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76호인 팔괘정은 송시열이 1663(현종 4)에 황산서원(죽림서원) 바로 앞에 지어 김장생의 학맥을 이어갔다. 송시열은 이 정자를 지으면서 창살무늬를 팔괘로 꾸몄고 그로 인해 정자 이름을 팔괘정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송시열은 스승인 김장생의 문하에서 예학을 전수받고, 뒤에 성리학을 배웠으며, 서인을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를 이루어 놓은 인물이다. 이로 인하여 강경유림에서는 임리정과 함께 팔괘정을 유림의 소유로 삼아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이와같이 사계 김장생 선생은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임리정을 건립하고 강학하였다. 그후 김장생 선생의 제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은 임리정에서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팔괘정을 건립해 스승을 존경하고 흠모하는 제자의 애틋한 마음을 담아놓았다.

1963년 강경에서 스승의 날이 발원된 것이 300여 년 전의 임리정팔괘정그리고 죽림서원을 잇는 역사적 실체, 즉 우암 송시열 선생이 스승인 사계 김장생 선생을 존경하고 흠모했던 정신적 본보기가 이어 내려온 존사애제(尊師愛弟)의 결과일 것이다.

 

 

 

 

 

 

이정민 기자

사진제공 논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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