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한 사람에게 ‘오만하다’고 이야기하며,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편견’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영국의 위대한 소설가 제인 오스틴(1775~1817)은 그녀의 「오만과 편견」이라는 소설에서 ‘오만’과 ‘편견’에 대해 그녀만의 천재적인 감각으로 정의했다. 30세의 오스틴은 “타인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들게 하는 것이 오만”이며, “내가 타인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편견”이라고 기술했다.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오만과 편견’ 속에서 살고 있을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따옴표 기사”
사실을 확인하여 기사를 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팩트는 다층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 어려운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시(市)나 기관에서 보내온 보도자료를 그대로 인용 보도하거나,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원문의 오타나 잘못된 내용이 그대로 전달되기도 한다.
보도자료와 큰 차이 없는 뉴스 기사들이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듯 각 언론사의 이름으로 대량 생산된다. 그저 시장이 하는 말에 물개박수를 치면서 ‘아멘’을 외치고 보도자료를 따옴표해 옮겨주면 논산시 언론사가 된다. 언론인이라는 집단속에서 평안을 느끼고, 1년에 몇번의 광고비 외에도 박수와 아멘으로 이어지는 별도의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이것이 논산시 홍보협력실이 구축해 놓은 ‘편견과 오만’의 산물이다.
‘홍보실’의 사전적 의미는 “사업의 계획이나 활동 등의 상황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 조직체에 대한 이해와 신뢰감을 높이는 일을 하는 곳”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논산시 홍보협력실은 논산시의 이해와 신뢰감을 높이는 일을 하고 있을까? 비근한 일례를 보자. 문화공감협동조합에서는 지난 7월 20일~21일 논산시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육군병장> 인지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귀하께서는 논산의 농특산물 공동브랜드 <육군병장>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26.3%”, “들어본 적은 있다 32.9%”, “모른다 40.8%”라는 답변이 나왔다.
<육군병장>에 대한 현재의 인지도를 갖고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홍보협력실의 나이브한 생각이다. 쓸데없는 시키지도 않은 일을 왜 하며, 그런 것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정에 대해 “왜?”라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것이다.
1년에 28억 원 이상의 국민의 혈세를 사용하는 논산시 홍보협력실은 과거에 매몰되어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시민을 시정의 동반자가 아닌 단지 홍보의 대상이라는 오만함 속에서 논산의 미래는 봉쇄되고 있다.
물리적, 생물학적, 디지털적 세계를 빅데이터에 입각해 경제 및 산업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4차산업혁명 속에서 언론의 검증시스템도 다층적이어야 한다. 또한 민주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서로 다른 목소리를 공동체에 전달하는 대화 촉진자의 역할 또한 언론의 매우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이러한 다변화하는 다양한 사회에서의 다층적 검증시스템과 시민‧공동체 간의 대화 촉진자의 역할은 무시해 버리고, 오로지 시장의 그림자만 좇는 무진실(無眞實) 상태의 홍보협력실이 되면서 유모차에 내비게이션을 단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논산을 새롭게 시민을 행복하게”라는 비전으로 ‘시민행복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개혁의 아픔을 두려워하지 않고, 겁먹지 않고,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다시말해 자신을 때리고 껍질을 벗겨 새로이 태어나야 한다. 남을 고치려 하기보다 자신을 고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