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사람들| 시장다방 ‘옛살비’와 ‘대일상회’
부녀 손에 새겨진 상흔(傷痕), 상혼(商魂)
옛살비, 참 예쁜 이름이다. 3~4년 전 시작된 화지중앙시장 야시장 이름이다. 그 후 주말밤 야시장 ‘옛살비 프로젝트’는 활성화되지 못했지만 그때 개설되었던 카페 ‘옛살비’는 여전하다. 옛살비는 ‘고향’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옛살비에는 우리 고장의 향기와 추억이 담겨져 있어요. 초창기 운영주체가 시청이었는데 제가 3년여 운영하다가 작년 가을, 정식 인수했어요.” 김서인 카페 마담의 설명이다.
계란동동쌍화차와 생딸기치즈라떼
시장카페에 옛 다방 분위기가 안 날손가! 메뉴 중에는 쌍화차 계란동동도 포함되어 있다. 고향분위기는 구석구석이다. 카페 자체는 모던한 분위기지만 입구 진열장에서부터 고향시장 분위기다. 고구마, 밤, 딸기 등 농산물이 과객들을 호객한다. 안으로 들어서도 ‘추억의 군고구마’ 포스터는 물론 꿀, 딸기쨈 등 시골틱한 분위기는 연장선상이다. 고구마라테는 겨울특선인데, 고구마와 아메리카노가 찰떡 궁합임은 예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 향취다.
요즘은 딸기군단이 밀려와 고구마를 밀어내려는 공세가 한창이다. 생딸기 주스, 라떼를 밀치고 여왕자리로 등극한 주인공은 ‘생딸기치즈라떼’다. 500mL에 6천냥이니 다른 곳에서 제대로 받으면 절반가, 착한가격이다. 딸기 중에서도 철따라 설향과 킹스베리 등 베리시리즈가 딸기여제 찬탈전을 벌인다. 이 집 딸기매니아 중 하나는 전주에서 신랑과 함께 들르는 임산부이다. 요즘 ‘생딸기치즈라떼’에 푹 빠져서다. 카페주인 사이에서도 소문이 났는지, 인근 계룡이나 대전, 세종에서 손님인 척 방문, 이것만 사먹으며 이것저것 탐문한다. 특허까지 받아두면 딸기논산으로서는 참 멋진 아이템인데, 10구역 청년창업 돕겠다는 논산시에서는 무엇 하는지 몰라...
시장에서 딸기제품은 세 꼭지점을 이룬다. ‘딸기빵집’과 딸기모찌 ‘오모찌’가 논산딸기의 정점들이다. 오모찌는 백화점에서 로얄티 유명세지만, 화지시장에서의 명물은 대영모찌이다. 요즘은 모찌를 오전에만 팔고, 점심 후에도 팔던 논산명물 꽈배기는 개점휴업 상태다. 초창기 옛살비는 대영모찌 덕을 많이 봤다. 6구역에 모찌 사러 왔다가 지척지간인 카페에도 들렀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알바도 쓰고 밥 챙겨먹을 시간도 모자랄 정도로 활황이었다. 딸기빵도 딸기음료와 먹으면 환상궁합이어서 딸기빵집에 들르면 10% 딸기음료할인권을 교부중이다.
이래저래 딸기카페라고도 할 만하지만, 카페는 역시 커피다. 2천냥 시장커피라고 해서 싼 비지떡 연상하면, 코피 터지는 내상 입기 십상이다. 입구에는 푸릇한 커피콩(bean) 다발들이 수북하다. 신선한 빈 4개 각자 로스팅~배합~숙성 3일정도를 거친 후 손님 앞으로 사뿐 걸어나오는 커피는 국내 어디서도 맛보기 힘든 화지시장 ‘김서인표’ 가베다. 커피매니아인 그녀는 이 일을 하기 전에도 커피에 대하여 꾸준히 공부하였다. 그녀 아버지는 대일상회 김덕중 사장님이다. “딸이 시장에서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고민하다가 카페를 낙점했단다. 아빠는 매장에 나와서 인테리어도 돕고, 매출에 도움이 될 거 같은 농산물도 날라다 주었다.
딸은 더 열성적이었다. 머리로만 궁구, 연구하는 게 아니라 실험정신 신경줄을 온몸으로 내려보낸다. 고구마 굽고 커피 믹싱하고 견과류 용감히 깨기 등등 닥치는 대로 하니 섬섬옥수가 지난 날이다. 삐거나 다치거나 시큰해지기 일쑤다. 곧 여름철이지만 팥빙수는 아직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녀의 손길을 부르는 곳이 도처여서다. 여름은 과일 스무디류가 인기다. 키위, 블루베리, 망고, 자몽 골고루지만 여전한 강세는 딸기스무디다. 이 모든 걸 내 손으로 커버해야 한다. 사람을 두어서는 남는 게 없어서다.
장돌뱅이 55년, 잡화상 45년
와중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아빠다. 8구역 의류골목에서 대일상회를 운영하는 김덕중 사장은 화지시장 45년차이다.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장마다 돌아다니는 아버지 따라다녔다. 그 장돌뱅이 경력까지 합치면 55년이 넘는다. 교회 종소리에 맞추어 일어나 5일장까지 걸어가 지고 다니던 물건은 잡화, 생필품이었다. 지금도 취급하는 품목은 여전히 생활용품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재고 상당수는 콘테이너 창고 속에서 잠자고 있다. 이제는 팔리지 않는 품목을 물어보니, “어리빗, 참빗, 라이타돌, 쥐약, 이약, 가위, 이불실, 마대 꼬매는 바늘....”
김사장의 아버지는 88세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장터를 누볐으니 우리나라 보부상의 역사를 먼데서 찾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 중학생시절 김덕중 아들은, 아버지보다 더 많이 팔았다. 목청도, 힘도 아빠보다 더 좋아서다.
스무살쯤 되어 공설시장 오성양복점 자리를 인수하여 한양잡화점을 열었다. 지금 ‘모란모자’ 있는 코너 자리다. 거기서 20년을 있었고, 도중에 시장이 화재로 전소되는 일이 생겼다. 재기를 노리며 옮겨온 현재 자리가 25년, 그러니까 둘다 합치면 45년이다. 예닐곱평 되는 가게에는 천장까지 모자와 가방이 빼곡하다. 이제 생필품은 다이소 같은 업체가 장악하였다. 그래도 입구에는 고무줄이 한 소쿠리다. 이제는 무용지물인 예전 살림살이 잡화 중에서 그나마 살아남은 게 고무줄인 모양이다.
모자와 가방 일색인 이 가게가 가을부터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김대표 명함 상호 옆 괄호 속에 들어 있는 “내고향알밤” 직접 경작하는 밤도 있지만 공주 부여 밤을 사입하여 판매한다. 그 수입이, 모자가방 판매수입을 육박한단다. 가게 안쪽으로 저온창고, 앞쪽에는 알밤까는 기계가 숨어 있다. 가을에는 대추, 곶감도 함께 얼굴을 내민다.
넋 놓고 세월 따라 가버린 아이템들만 바라볼 수 없는 노릇이다. 삼남매 키우고 나름 살기 위해 김대표가 해온 일들은 손가락으로 꼽아야 한다. 목수는 어언 30년차인데, 이제는 그 일을 아들이 바통을 받아서 시시때때 함께 일해가는 중이다. 그런데 아뿔싸, 얼마전 건축일 나갔다가 손가락 세 개가 절단되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병원에 빨리 이송돼 봉합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는 회복 단계지만 그 댓가는 치료비와 몸·맘 고생이다.
건축일 없을 때는 농산물 경매장에도 나간다. 이러저런 일이 딸 운영 카페의 원가절감에도 도움을 주리라. 상인회 이사로는 7년째 연임중이다. 한시도 쉴 틈 없이 동분서주하는 그가 말한다. “요즘은 한 가지만 갖고서는 먹고 살기 힘들어요. 시간이 날 땐 뭐든 해야죠.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 남자들도 밖에 일만 생기면 나가서 돈 벌어와요.” 고장난명(孤掌難鳴) 소리까지 들린다. 보이지 않는 부녀지간 사랑줄에 기립박수를 보탠다.
- 이진영 기자
옛살비카페 = 딸 김서인 010-7603-3060
대 일 상 회 = 아빠 김덕중 041-733-3166
비 버 건 축 = 아들 김선기 010-6327-3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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