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당신은 대체 어느 지역 사람입니까?”
- 기더기의 가짜뉴스와 비열한 정치인의 좀비정치 -
77억 세계인류는 2020년 이후 1년 이상의 시공간을 통째로 도둑맞고 있다. 이런 팬데믹 사태에서 ‘코로나19’와 함께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가짜뉴스’이다. 기더기(기자+구더기)가 마구 쏟아내는 오보, 왜곡 보도, 정파적 보도, 비윤리적 보도 등의 ‘가짜뉴스’ 말이다.
설상가상, 점입가경인 게 있다. 가짜뉴스를 편승해가는 정치인들이다. 기더기의 가짜뉴스를 가려내기는커녕 ‘올커니’ 하면서 좀비정치의 도그휘슬로 사용하는 비열한 정치인들이다. 그런 정상모리배들을 우리는 가까운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기더기의 부정성에 편승하는 정치인들
인간은 부정적인 가짜 뉴스에 더 혹한다. 유전이다. 인간의 선조는 사냥과 수렵, 채집을 하면서 맛 좋은 열매를 따는 것보다 독이 든 열매를 골라내는 데 집중했다. 토끼를 사냥하는 것보다 호랑이나 곰을 피하는 데 더 주의를 더 기울였다. 이는 인류가 ‘긍정’보다 ‘부정’에 더 민감하게 진화한 것으로, 그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검은 잉크 한 방울은 생수 한 병을 망칠 수 있지만, 검은 잉크 한 병에 들어간 생수 한 방울은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가 힘들다. 부부가 한 번의 외도로 결혼 생활이 끝날 수 있지만, 역으로 볼 때 어떤 헌신적인 행동도 부부를 영원히 결합시킬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와 같이 부정적인 사건은 긍정적인 사건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지배적이다. 다시 말해서, 좋은 평판보다 나쁜 평판을 받기가 훨씬 쉬웠고, 일단 그 부정 프레임에 걸려들면 그것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지는 게 보편화된 인간심리이다. 이러한 부정성 편향은 미디어 경쟁 속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쉬지 않고 보다 더 자극적인 뉴스를 쏟아낸다. 심지어는 기더기의 가짜뉴스까지 양산되면서, 건전한 담론을 새롭게 지배하는 테러리즘의 악순환으로 그 이빨을 드러낸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현대판 꼰대들
영국의 BBC방송은 2019.09.23일 자사 페이스북에 오늘의 단어로 한국어 ‘꼰대(Kkon dae)’를 소개하였다.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은 늘 잘못됐다고 여기는 사람”이라고 풀이했다.
최근 지방의회에서 ‘스스로를 지역사회에서 모든 분야의 해결사’로 자임하는 꼰대 정치인이 두각을 나타나고 있다. 정작 큰 문제는 ‘본인이 꼰대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꼰대도 둘로 나뉜다. 그 중 하나가 오래 전 판단 기준을 현재에 적용하는 ‘시간꼰대’다. 또하나는 ‘공간꼰대’로서, 한 분야 전문성을 다른 곳에 적용하는 오류를 서슴지 않는 부류들이다. ‘시간꼰대’보다 더 위험한 시한폭탄을 가진 ‘공간꼰대’는 문외한인 분야까지 넘나들며 선무당짓을 서슴치 않고 있다.
점입가경은 또 이어진다. 기더기와 꼰대가 만났을 경우다. 기더기의 부정성 편향에 의한 가짜뉴스가 스스로 모든 분야의 전문가임을 자임하는 꼰대를 만나면, 이제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좀비정치의 도그휘슬이 되고 마는 것이다.
계룡시의 웃음거리 “내가 왕년에 말이야...”
최근 10년 사이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스마트폰과 넷플릭스가 등장했고, 다음카카오 시가 총액이 현대자동차를 넘어섰다. BTS가 세계 팝시장을 석권하고,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석권했다. ‘미나리’가 후속타로 세계 속의 한국을 견인하고 있다. AI,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등 그동안 없었던 문물들이 미래를 규정하고 있다. “내가 일할 때는 말야.....”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꼰대의 자아도취증은 “요즘 세상에 당신은 내세울 게 별로 없는 구닥다리”라는 시선을 마비시킨다.
팬데믹의 출구가 희미하게 보이는 시점에서 “무엇이 시대정신인지?” 묻고 싶다. 오로지 본인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위기를 호출하는 꼰대정치인을 시민들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무책임한 언행과 본질에서 벗어난 공세 대신, 정확한 상황 인식과 대안 제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팩트 체크조차 제대로 안 된 상황에서 쏟아내는 발언들은 속칭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의 전형이다.
지난 3월 26일(금) 현대음악의 5대 거장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가 개막되었다. 2002년부터 아름다운 통영의 봄바다를 무대로 펼쳐지는 통영국제음악제는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국내외 정상 음악가들의 작품과 연주가 하나가 되는 세계적 음악축제이다. 이날 190km 떨어진 계룡시에서는 5년이나 진행되었던 ‘계룡전국음악경연대회’를 도둑 맞았다. 문화적으로 통영은 위대한 도시이고, 계룡산 끝자락 계룡시는 별볼일없는 변방인가? 지역문화를 장려하고 복돋아주어도 모자랄 판국에 계룡시를 비문화적 도시로 제한하고 문화변방을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대체 어느 지역구, 어떤 동네 사람인지요?”
- 전영주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