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회탐방| 서정우 대한노인회 취암동분회장
지역사회, 이웃과 한데 어울어지는 취암동분회
취암동분회는 해월로179번길 4에 있다. 행정동으로 반월1통이다. 예전 지명이 반월동이다 보니 ‘취암동분회’라는 이름이 다소 어색해 보인다. 논산에서 제일 높아 보이는 곳, 제일감리교회다. 『논산』이라는 지명 유래를, 감리교회가 서 있는 언덕(#산)과 그 밑에 널린 #논에서 찾기도 한다.
논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 그 교회 등성이에 대한노인회 논산읍분회가 있었다. 1996년 3월 논산시로 승격하면서 논산읍은 취암동과 부창동으로 분동(分洞)한다. 그 즈음 논산읍분회는 교회와 협의하여 교회 아래쪽 현재의 부지로 이전한다. 1978년 세워진 자리에 건물을 신축하고 이를 낙영정(洛英亭)이라 이름 붙였다. 전면에는 상가건물, 약간 들어간 후면으로는 노인회관으로 해서.
▲ (시계 반대방향으로) 서정우 취암동분회장, 배영환/이문자 부회장, 조영구 사무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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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딛고 반월동에 우뚝선 취암동분회
당시 이전을 고민할 때, 번화한 시내 중심가를 벗어나 취암동 외곽으로 빠져서 대지를 널럴하게 확보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취암동 분회’라는 이름에서 그렇고 향후 도심의 변화와 지가상승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면 분회는 면소재지에 위치해 있어서 회원들 안부 묻고 정보 나누는 거점 경로당으로서의 의미를 갖지만, 시내 취암동분회의 경우 주차 등 교통의 편의성도 예측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다.
취암동분회는 1996년 분동 후 4반세기 25년이 지나는 동안 몇 번의 갈등을 치렀다. 회장은 4번 바뀌었다. 초대회장의 사진은 없지만 앞마당에 기념비로 서 있다. 2008년 7월 직무대행으로 시작한 윤석구 회장은 2017년 2월까지 직무대행 기간을 포함하여 9년간 연임하였다. 그 바통을 이은 최** 회장은 2018년 9월 당선무효확정을 받는다. 다음달인 10월 논산시지회로부터 직무대행을 지명받은 서정우 당시 감사는 해결사로 나서서 취암동 분회를 수습하고, 다음해인 2019년 1월 30일 공식 취임한다.
취임 후 관내 42개 경로당회장들과 유기적으로 소통하며 화합의 전도사로 인정을 받았다. 작년도 11월 10일 제24회 노인의 날 행사에서 서정우 분회장은 전대규 충청남도연합회장 표창을 받기에 이르른다. “집안도 그렇고 어느 조직이나 모임은 갈등이 있게 마련인데, 그런 때 어찌 하시는지요?” 기자의 질문에 서정우 분회장은 잠시 난감해하는 표정이다. “나를 내려놔요. 상대방이 승질을 내도 일단 참고, 존중을 해주려고 해요.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봐요.” 절반은 달관, 절반은 약간 지친 어조 같다.
비상대책위원장에서 출발한 그에게, 취암동분회에 복잡한 문제들이 간단없이 이어졌는데, 그 중 하나는 분란의 당사자가 타지로 이사가 지금은 한결 안도하게 된 상황이란다. “코로나 이후 우리가 펼칠 사업 계획도 중요하지만, 난 회원간의 일치단결, 화기애애 분위기가 우선한다고 봐요. 일보다 사람이죠.”
기자가 회관을 찾은 날 함께 모인 부회장들은, 서분회장이 “온화하여 모두를 포용하는 성품, 주변 사람들에게 밥도 잘 사주는 이타주의”를 면전 적시한다. 어쨌거나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2003년 12월 총 21개였던 취암동 분회 경로당이 현재는 42개로 배가된 상황이다.
지역사회 활용에 능한 부회장과 42개 경로당
경로당이 이렇게 많다 보니 일이 많다. 서분회장은 일보다 사람을 강조했지만, 그래도 일은 일! 취암동 분회의 일은 연속성이 돋보인다. 조영구 사무장이 2008년부터 13년째 근속중이어서다. 2008년은 윤석구 회장 시절이다. 당시 취암동 분회는 대지 135평에 2층 건물로 출발했다. 40평에 두 개 층이니 총 80평이다. 그 사이에 아래층 마당 자리에다가 식당을 확충하였다. 화요일 행복경로당 무료급식날은 물론, 경로당회장과 총무가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나눌 때 충분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매주 화요일 열리는 노래교실(강사 금진주)은 주로 여성회원이 많고 자연스레 식사도 여성회원이 많다. 월, 목요일에 취암동분회가 진행하는 특별 프로그램이 있다. “국악교실” 한지붕 두가족인 앞 상가건물 2층에 국악교습소 선경국악원이 있어서다. 박점자 원장과 얘기가 돼서, 장구 같은 국악기는 물론 판소리 창까지 진도를 나간다. 수강자는 10여 명에 불과하지만 노인회 컨셉과 어울어지는 찰떡궁합이다.
지역사회, 이웃사촌과의 연대는 이문자 부회장도 탁월하다. 이 부회장은 화지1통경로당 회장이다. 그 동네에 목민교회와 희망마을 교실이 있다. 그 공간을 활용하여 미용, 요가, 노래 교실을 함께 한다. 화지1통 경로당은 32명의 회원이고 코로나 이전 8명이 회관에서 동고동락(숙식)하던 곳이다. 42년생 올해 80세인 이문자 회장은 ‘낭랑 18세’ 여전히 현역이다. 논산문화원 강좌가 곧 시작되는데 거기 미용강사로도 뛴다.
그녀의 경력은 화려하다. 그녀는 논산에서 5개의 미용실을 동시 경영하였다. 오거리, 논산, 황산 예식장 등에서 미용실 겸한 신부화장전문가였는데, 지금은 바른한의원 2층에서 낭낭 미용학원, 3층 미용실을 운영중이다.
논산미용사회 초대지부장, 대한미용사회 충남부지회장 등의 경력은 현재까지 빛 발해 김미가포럼봉사단장(현재 더불어봉사단 32명), 화지희망마을 미용강사 등으로 맹활약중이다. 코로나로 인하여 요양원 봉사는 못 가지만 같은 노인회원이나 장애인을 찾아가는 미용봉사는 계속 중이다.
이러한 공로로 지난 해 24회 노인의 날 기념 표창을 받았다. 시장상을 수상한 그녀의 공적조서를 엿보자. <위 사람은 우리 지역에서 미용업을 운영하면서 1970년경부터 우리 지역 최초로 낭랑미용학원을 개설하고 후학들에게 미용기술을 가르쳐오는 등 미용실 창업을 통한 일자리 확장에 노력해 온 사람..... 전임 경로당(화지1통) 회장이던 부군이 사망하자 회원들의 권유에 따라 2015년 8월부터 현재까지 경로당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해마다 취암동 관내 경로당을 순회 방문하며 영세 노인들에게 이발과 미용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및 전염병 예방을 위하여 ‘더불어봉사단장’을 맡아 논산역, 버스터미널 등에 소독을 실시함으로써 건강 사회 조성에 기여....>
▲ 취암동분회 2층회관의 내부, 1층에는 국악기들이 즐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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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암동민체육대회에서 찬조공연하는 노래교실 회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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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봉사단의 '찾아가는 이미용' 이문자 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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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용사들, 오늘 다시 뭉치다
찾아가는 미용봉사 혜택을 받은 곳 중 하나가 취암8통이다. 배영환 취암동분회 부회장이 회장으로 있는 경로당이다. 취암8통은 32명의 회원에, 동고동락 식구는 5명이었다. 시에서 5명 공동생활 운영비를 필요 충분하게 제공하지 않았지만 공동체 살림살이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들려준다. 부족분은 앞에 있는 교회와 농협 등 지역사회에서 신경 써주기도 해서라고. 프로그램은 노래교실, 한글공부 등 여타 경로당과 대동소이한데 배부회장은 한자강사이다.
복지관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그는 최근 새로운 일자리를 추가했다. 논산시 지회의 노력으로 15개 분회에 일자리 두 개씩이 신설되었는데, 분회장과 한사람이 관내 노인일자리 순회하면서 지도 격려하는 사업이다. 이 일을 서분회장과 배부회장이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작년도 노인의날 기념표창에서 대한노인회 논산지회장상은 배영환 부회장에게 돌아갔다. <위의 사람은.... ‘마을 발전의 초석은 주민화합에서 이루어진다’는 신념으로 노인들의 화합에 힘써 오고 있으며 취암8통개발위원장을 맡아 매년 어버이날 마을효행자 발굴 표창을 정례화함으로써 청소년들을 포함한 지역주민들에게 효경문화를 널리 선양하고 있습니다.....특히 6·25참전유공자회 논산시지회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국가 안보의 중요함을 적극 홍보하고 조국수호의 정신을 굳건히 다지는 등....>
6·25참전유공자회 이야기가 나오니까, 과묵한 서정우 분회장의 입이 열린다. 서분회장은 지난해 6·25참전유공자논산시지회장을 맡았다. 정식 군인은 아니었지만, 소년병으로 참가했던 시절 이야기가 서분회장과 배부회장을 흥분시킨다. 대둔산 빨치산들의 활약 무대는 벌곡, 양촌, 가야곡 일대에 걸쳐 있었다. 당시 서회장은 가야곡에서 18세, 배부회장은 양촌에서 15세 소년이었다. 11명 식구가 잘 살던 서회장집이 어느날 화재로 순식간에 전소되었다. 경찰들에게 밥을 해주었는데, 낮에 그 장면을 본 빨치산들이 밤에 저지른 보복이었다.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된 식구들은 외갓집 등으로 분산되었지만 소년 서정우는 토벌대를 찾아갔다. 3년간 심부름 같은 걸 해주며 숙식을 해결했는데 3년간 지하 땅굴을 들락날락했다. 식구들은 낮에는 동네에 있다가 저녁 4시쯤 읍내로 가고 새벽이면 다시 들어오는 출퇴근 생활의 반복이었다. 밤에 닥칠 빨치산이 무서워서였다. 어느 날은 대창으로 80여 명 찔러죽인 사건도 발생하였다. 인민군은 이미 떠난 상황에서, 남조선인민들끼리의 동족상잔 비극은 휴전 후에도 이어졌다.
언론·정치경력, 노인회에 상당한 활력소
대둔산 빨치산에 대하여 기자는 5회에 걸쳐 심층 취재를 한 바 있다. 기자는 놀뫼신문 2017-03-13일자 [양촌리다방이야기-4] “전쟁의 뒤안길에 서 있는 사람, 아이와 여인들” 등을 써내려갔다. 당시 연속기획기사는 길고도 길었는데, 그때 그시절 비하인드 스토리는 질기디 질겨서 그 끝이 어딘지 모르겠다는 현기증이 인다.
논산은 기록되어야 한다. 그 기록의 선봉에 지역신문이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정우 분회장이 『놀뫼신문』 초대 발행인이라고 한다. 본인 입보다는 조영구 사무장이 대신 들려주는 귀띔에 귀 기울였다. <채운면 용화리에서 11년간 이장을 하다가 논산시내로 나와 중심지 사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시대양복점”을 10여 년간 운영하면서 당시 다방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이래저래 지역민들과 소통하며 지내다 보니 주변의 권유로 제2기 통일주체대의원 선거에 나가게 되어 당선되었다. 이후 공사다망한 생활을 했는데 논산의 현인 김인규 놀뫼새마을금고 이사장의 요청으로 놀뫼신문의 대표이사로 취임하여 수년간 신문사 운영에 관여했다.....>
이력서에 써 있는 서정우 분회장의 경력은 좀 길다. 학교쪽으로는 가야곡국 13회 동창회장, 논산대건교우회장 등이다. 사회 경제활동으로는 논산시 명예시장...... 한국야쿠르트 생산 우진산업 대표, 논산읍번영회 부회장, 놀뫼신문 대표이사 등이다. 정치쪽 활동이 두드러진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었으나 제1대 도의원선거에서는 낙선한다. 새천년민주당 논산금산지구당 부위원장도 역임하였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세울 게 없다며 노인회 경력만 내세운다. 반월2통경로당회장, 논산시지회부회장, 현재의 취암동분회장이 올해 87세인 그의 마지막 봉사기회라는 인식이다.
이렇게 대변인처럼 자세히 설명하는 사무장에게 “사무장님은 분회장님에 대하여 어찌 그리 잘 아는지요?” 물어보니, 지난날 통대의원과 선거인단을 지낸 경력 등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란다. 지방선거에서의 낙선도 그렇고, 정계에 문을 두드린 시기가 10·26을 전후한 때이기도 하단다.
▲ (좌)서정우 취암동분회장과 조영구 사무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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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회 사무장의 빛과 그림자
조영구, 그의 정치 역정과 역경은 논산의 전설처럼도 들린다. 그가 그토록 정치에 몰두하였던 것은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망에서였다. 1968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낮에는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한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배움의 시기를 놓친 청소년들을 모아 ‘재건국민운동위원회’가 운영하던 ‘논산재건학교’를 알게 되었고, 1980년도까지 학생들과 같이 ‘주경야독’하며 10여년을 보냈다.
당시 지방자치제도가 중단되어 사회적 참여가 어려웠던 즈음 1981년 2월에 실시된 소위 ‘대통령선거인단’선거에 30세 나이로 논산읍에서 무소속 출마, 당선되어 1~4기까지 10년 동안 평통자문위원을 지낸다.... 이어지는 역경의 길은 건너뛴다..... 그는 이제서야 자신의 일을 찾아낸 듯싶다. “어르신들로부터 노년의 인생을 배우고 동료들과 앞으로 가입하게 될 후배 노인들에게 길을 닦아놓는 일이 내가 할 일”이라고 말한다. “지금과 같이 노인회에서 심부름하는 일이 보람되고 즐겁다”고, 지난 13년 세월 사무장 역할에 만족을 표한다. 조영구 사무장은 2018년 종무식 때 양승조 충청남도지사 표창을 받았다.
취암동분회는 분동된 부창동분회와 같은 듯 다른 듯이다. 취암동인구수는 34,766명으로 부창동 16,408명보다 두 배 이상이다. 이중 65세 아상 노인인구는 4,638명(인구대비13.3%)으로 부창동의 3007(19%)명에 비하여 노령인구가 적은 편이다. 이 중 경로당에 가입된 노인회원수는 1,636명(36%)으로 부창동 31%(927명)과 엇비슷한 비율이다.
경로당수는 42개소로 부창동 24에 비해 두 배 가량 많다. 취암동의 행정통은 44개이며 경로당은 41개이므로 경로당이 없는 통이 좀 된다. 산술적으로 3개소만 없는 게 아니다. 취암5통과 8통, 지산2통은 두 개소씩이므로 총 6개소가 없는 실정이다. 지산2통의 경우는 거리가 있어서 여자경로당이 따로 있다. 경로당 회장 중 여성은 10명이므로 넷 중 한 곳이 여성회장인 꼴이다. 사무장은 여타 분회와는 달리 직원형태를 취하고 있다.
상월분회도 그렇지만, 노인회 실무 상당수는 사무장이 도맡아서 하고 있다. 사무장에 대한 예우가 다각도로 필요한 시점이다. 주어진 일에만 급급하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 기관 모임과의 연대, 이웃사촌들과 연계도 촘촘 구축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 이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