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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돌자 동네한바퀴| 연무읍 고내6리 정래구 이장 / 신현창 노인회장
사진 한장, 기록 한줄, 노인 한사람
기사입력  2021/02/24 [12:52]   놀뫼신문

|다같이돌자 동네한바퀴| 연무읍 고내6리 정래구 이장 / 신현창 노인회장

사진 한장, 기록 한줄, 노인 한사람

 

기자가 고내리를 찾은 건 순전히 사진 한 장 때문이다. 고내6리 항공사진을 입수했고, 그 덕에 동네를 한 눈에 조감(鳥瞰) 가능해져서였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접경지, 그곳이 연무읍 고내리다. 천안에서 갈라진 하행선 천안논산고속도로가 다시 호남선과 만나는 곳, 그 일대가 고내리이다. 고내곡 마을은 높은 지대에 있다고 하여 ‘고내골’ 또는 高內谷으로 불렸다. 


▲ 논산시 연무읍 고내6리 전경     ©

 

높지만 낮아진 땅 고내6리 신근이

 

전라도에 속했던 땅이다. 조선시대 전라북도 여산부 합선면, 일제합병기 1914년에는 익산군 황화면 소속이었다. 그러다가 1962년 논산군 연무읍에 편입되어 고내동이 되었다. 그래서 동네에서는 이장님과 동장님 호칭이 통용된다. 

고내리는 1~6리까지 드넓다. 1리는 고내산 414m의 성태봉 밑의 산촌이다. 6리는 두 고속도로 포물선 안쪽으로 들어온 평야지대이다. 같은 고내리이기에 공통분모도 많지만 고내6리는 외떨어진 섬처럼 유별난 구석이 많아 보인다. 신근이로 불리는 이 동네는 거대한 옹기공장이었다. 100여 년 전부터 옹기그릇을 만들던 가마가 있었는데, 이삼십 년 전 문을 닫았다. 수천 평에 달하는 가마불터는 물론 공장 건물 일부가 그대로 남아 있다. 공장이 돌아가던 당시는 120여 호가 있었으며, 집집마다 방들을 내놓았다. 100여 명에 달하는 공장인부들 숙소로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고내6리가 이제는 70호에 12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여느 시골마을처럼 사람이 떠나가는 이 동네에 최근 두 가지 빅 뉴스가 생겼다. 하나는 마을앨범제작, 하나는 모정건립이다. 

 

▲ 마을앨범 '응답하라2020' 중 한컷     ©

 

▲ 마을앨범 '응답하라 2020' 중 한컷     ©

 

▲ 마을앨범 '응답하라 2020' 중 한컷     ©

 

▲ 정래구 이장     ©

 

▲ 정래구 이장(오른쪽)과 신현창 노인회장(가운데)     ©

 

동네앨범: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

 

『응답하라 2020(고내6리 우리마을 역사만들기)』연무읍주민자치회가 최근 펴낸 책이다. 한 마을을 소재로 한 동네책도 흔치 않거니와, 동네사람 전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앨범책은 더더욱 희귀한 사례일 성싶다. 

만들어놓고 나니까 지금은 호반응 일색이지만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코로나 등으로 무슨 일을 벌일 분위기가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OK가 되었지만 막상 “사진을 제출해달라, 없는 분은 직접 가서 찍겠다” 68호 가가호호 방문 중 삼고초려도 상당수였다. 한 집에 1페이지씩, 예전 사진이 있는 분은 빛바랜 사진으로, 없는 집은 새로 찍은 칼라로 해서 가족앨범이 동네앨범으로 집대성되었다.  

앨범사업은 연무읍 주민자치회(회장 윤석용) 주민참여예산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자치회 김태식 총무가 ‘역사마을만들기 사업’을 제안하였다. 대상 마을 물색은 김선경 주민자치회 총무가 나섰다. 고내6리가 신근이 영화제도 이뤄지고 마을 결속력이 좋다고 해서 줄기차게 찾아갔다. 삼고초려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코로나 시국도 그랬지만 제가 연무 발령 받자마자 어리둥절할 때 급하게 이뤄졌습니다. 이제 보니 아쉬운 점도 있지만, 올해 사업하는 데에는 큰 자양분이 되네요. 제가 연무읍 60개 마을 찾아갈 일이 많은데, 호별 방문 경험으로 이제는 용감하게, 편안히 찾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내6리에는 마을영화제가 열린다. 오윤석 전임 이장의 공식명칭은 마을영화감독이다. 현직 정래구 이장은 얼리 어댑터이다. 정이장은 사우디에서 기술자로 4년간 일하였다. 귀국하면서 가전제품은 물론 캠코더를 사왔다. 80년대 당시 고내6리는 황화면일대 문화의 중심가였다. 음악콩쿨 등 각종 문화행사가 열릴 때마다 부지런히 찍어두었다. 

그 중 아직까지 보관이 된 것들을 오윤석 영화감독이 USB에 옮겨담고 편집하여서 명실상부 ‘추억의 동네영화제’가 탄생한 것이다. 이제부터 그 영상들을 따라 추억여행을 떠나보자. 

 

▲ 마을앨범 '응답하라 2020' 중 한페이지     ©

 

▲ 마을앨범 '응답하라 2020' 중 한컷     ©

 

▲ 마을앨범 '응답하라 2020' 중 한 컷     ©

 

추석엔 온동네 콩쿨, 겨울엔 이레 윷놀이

 

1979년부터 시작한 이장직을 27년간 장기집권했던 김승주 씨가 당시 이야기를 풀어놓은다. 80년대 추석 전후해서 “동네위안의 밤” 잔치를 벌였다. 낮에는 잔디밭 널럴한 공터에 모여 축구와 줄다리기를 했다. 잔디밭 주인이 밟아달라고도 하였다. 밤에는 노래자랑을 하였다. 소규모 콩쿨대회지만 기타와 여러 악기, 악사들이 거들었다. 상품은 당시 흔치 않았던 전자제품, 양은그릇 등 생필품이었다. 옹기공장 토굴이 있던 시절 100여 호가 넘는 그 동네에 동네사람들만 모인 게 아니다. 인근 이 동네 저 동네에서 신근이로 몰려들었다. 고내리 6개리는 물론 황화정리(1~3리) 사람들도 동참하는 권역잔치였다. 2400명이 다니던 황화국민 학교가 봉동분교 생기면서 1800명으로 줄던 시절의 이야기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농한기때 윷놀이 대항이 벌어졌다. 인근 동네에서도 참여자가 속출하여 1주일여 지속되었다. 우승자는 소를 타갈 만큼 대규모 행사였다. 윷놀이가 시들어지면서 그 뒤를 이은 게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다. 이때 읽어내리는 축문이, 이 동네는 길고도 길다. 동네사람들 이름 하나하나씩 다 거명하면서 축원을 하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소원을 품은 소지가 꽂히고, 그 달집을 하늘 높이 태우고 나면 풍물패가 흥을 돋우는 가운데 부녀회가 장만한 음식을 나눈다. 막걸리도 한 순배씩 돈다. 연등도 날리는데 2017년 사진을 보니 “박근혜를 구속하라”가 적힌 연등도 찍혔다. 

달집태우기는 코로나가 시작된 작년 겨울까지도 속행되었다. 그러나 올해는... 내년에는 꼭 재개되기를 기다리며, 건너뛸 예정이란다. 어쨌거나 이러저런 마을 행사들이 기록되어 왔다. 영상으로,  사진으로, 구전으로..... 그러나 글 기록은 미흡한 편이다. 고내1리 이야기는 문화원에서 근간한 『논산마을이야기-1; 정답고 아름답게 하는 사람들』에 기록되어 있다. 

기록은 언제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 차별화, 비교에서 출발점을 삼을 수도 한다. 이 동네의 자랑이자 특색은 여러 가지다. 그 중 하나, 부촌이다. 그 큰 옹기공장이 문 닫은 이유 중 하나는, 인부들 구하기 힘들어서였다고 신현창 노인회장(80세)은 증언한다. 예전에도 구인난은 심각했던 모양이다. 공장은 문을 닫고 떠날 사람들은 다 떠났지만, 동네 토박이들은 부지런했다. 

 

부지런 부자, 신씨 6형제 우애부자

 

사우디에 간 사람도 많았고, 돌아와서는 벼농사보다는 딸기농사 등 특수작물에 집중했다. 땅 한 뙈기 없던 청년 신현창의 경우도 사우디 1년 정도 다녀온 후 벼농사를 지으면서도 인삼밭을 했다. 40년 경력, 인삼박사이다. 짬짬 소도 길러서 내다 팔고 하면서 땅을 조금씩 사들여 현재는 30마지기 정도 땅주인이 되었다. 정이장도, 딸기농사는 바쁘고 힘들다고 토로하는데, 고생스러운 만치 돈이 되니까 감수한다고 한다.  이 동네에서 농사일을 돕는 외국인 노동자 숫자는 40여명! 주민수 120명에 비추어 외인구단격인 외국인 1/3이 추가되고.... 이들이 없으면 이제 농사도 접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동네 희한한 현상 중 하나는, 아직까지는 외국인며느리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농촌총각에게 시집 오는 처녀가 별로 없는 세태에서 국제결혼이 불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어쩜 경제력이다. 또다른 이유도 있다. 김명임 부녀회장은 원래부터 도회지가 체질에 맞지 않았고, 그래서 농촌으로 시집을 온 케이스다. 그런데 그 시집이, 이 동네 신씨 6인방 막내 며느리다. 

동네전화번호부책을 보니 신씨들이 쪼로로니 나온다. 신현창 노인회장 집안은 9남매인데 그 중 여섯 가족이 이 동네와 인근에 사는 것이다. 집안끼리 모여 살면 좋은 점도 많겠지만, 불편한 점도 따르련만 노인회장 부인 전대연 님은 신씨집안 우애가 보통이 아니란다. 여섯 며느리가 순차적으로 찍은 사진을 과시한다. 집안을 넘어서 동네전체 갈등구조를 기자가 유도심문이라도 하듯 탐색해보니, 노인회장도 이장도 쌍수로 손사래를 친다.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 했는데 경제적 여유가 있어선지, 서로 양보하는 마음들이 몸에 밴 모양이다. 논에서 남집 모다motor 돌려도 뭐라 하지 않는 분위기다. 

 

▲ 신현장, 전대연 노인회장 부부     ©

 

▲ 비닐하우스와 고속도로 건너편 마을 고내6리     ©

 

▲ 신현창 노인회장의 동네한바퀴     ©

 

타지사람이 땅 희사하게끔 정성

 

동네밖 인심조차 후하다. 이 동네는 회관이 둘이다. 고내3리도 회관이 둘이지만 우리나라 농어촌 회관 대부분은 마을회관과 경로당을 겸하고 있는 편인데 고내6리는 따로따로다. 이 일대 땅은 공주사람 임근탁 씨의 소유가 많다. 마을회관 자리 60평과 200m쯤 떨어진 노인회관 60평은 그의 소유였는데, 이 마을을 위해 희사하였다. 

 

“요즘 세상에 외지 사람 누가 땅을 내놓겠어요? 마을에 회관 자리 지을 데가 필요하다고 청했더니만, 선선 내주더라구요. 내가 그 집 묘들 관리업무도 했는데, 그 동안 나름 정성에 정성을 기울여 왔지요. 마을회관 앞도 그 집안 왕묘였는데 3년 전쯤 파묘해서 이제는 공터가 되었지만...” 

 

타지인에 의해서 기부채납된 그 땅에 마을회관은 15년쯤 전, 노인회관은 10년쯤 전 세워졌다. 모범마을로 소문이 난지라 마을회관 내부는 빔프로젝트도 세팅되어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지붕도 새고 손볼 곳이 생겨나고 있다. “단합이 잘 되는 동네이니 이런 곳 마을회관은 수리 공사를 시에서 해주면 좋겠다”는 게 정래구 이장의 현안 숙제다. 노인회관 남자화장실도 손보기에 엄두가 안 나서 문을 잠가두었는데, 동네 살림에 신경쓸 거리는 그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볼 때 부족한 게 별로 없는 마을이지만, 그 동안 여름날에 그늘막 되어주는 모정(원두막)이 없었다. 동네땅도 없지만 쾌척하는 사람도 나서지 않아서였다. 얼마 전 노인회관 마당 한 켠에다가 세우는 걸로 결론이 났고, 금세 뚝딱뚝딱 세워진 것이다. 기부가 쉽지 않다는 반증 사례다. 

코로나 이전 25평 규모의 노인회관은 “호텔”이었다. 동고동락하던 이 동네 독거노인의 표현대로라면 말이다. 한글대학은 십수 명 모였다. 수지침도 배웠고 노래교실도 열렸다. 노래강사는 일주일에 한번 왔지만 저녁마다 열댓 명이 모여서 노래를 불렀다. 예전 흥겨웠던 콩쿨 동네의 흥겨운 혈통이 어디 갔겠는가! 저녁때는 노인들만 모이는 게 아니라 부녀회원도 합류한다. 시어머니 따로, 며느리 따로가 아니다. 

동네행사 중 큰 행사가 효관광이다. 예전에는 버스 두 대를 대절했는데 요즘은 한 대로 떠나지만 매년 지속해오는 동네 대사이다. 걷기 불편한 노인들 부축은 물론 온천에서 등 밀어주는 봉사 성격이 짙은 노소동행길이다. 간만에 콧바람 쐬러 나온 길, 식사도 3만원 상당의 최고급으로 즐긴다. 

이런 식으로 부녀회는 1년에 서너번 동네잔치를 벌이는데, 백중날 메뉴는 삼계탕이다. 어버이날에는, 나이순으로 이불 한 벌씩 선물한다. 이불 없는 집은 없다지만 그래도 새 이불 한아름에는 입이 귀에 걸린다. 

 

동고동락 호텔생활

 

이 동네에서 동고동락으로 주무시는 분이 5명 정도다. 7명이면 시에서 15만원이 지급되지만 그 이하 숫자는 돈도 반 토막 난다. 불은 기름 걱정 없이 때니까 방은 따신데, 살림비는 모자란다. 쌀은 농협이나 새마을금고 같은 데서 들어오고 주념부리는 소액씩 갹출 해결하지만, 문제는 양념 반찬이다. 요리에 들어가는 야채류, 양파 등은 대부분 노인회장집이 물주다. 그것도 모자라 노인회에서 직책도 없는 전대연 먹골 전씨는 잠동무차 경로당으로 외박이 잦다. 그 탓에 노인회장은 독수공방일 때가 많았는데, 이구동성 그래도 그 때가 좋았고 그때가 호텔이었다는 말이다. 

신현창 노인회장의 손길은 게서 그치지 않는다. 새마을회나 부녀회가 벌이는 동네일은 많기만 하다. 마을청소, 꽃심기, 풀깎기... 부녀회장은 “오미순 총무와 김일연 재무가 좌우 포진해 있어서 동네일을 과감하게 추진해간다”면서 두 젊은(62세) 동무들을 듬직해한다. 

그러나 부자동네여서인지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딸기농사도 해서 나름 부자가 된 정이장은 연무대에 펜션이 생겨날 초창기에 ‘정가네펜션’을 시작했다. 이름만으로는 민박촌 분위기여서 반기지 않는 분위기도 감지돼 “꽃담펜션”으로 이름 바꾸고 투자도 솔찬히 하여서 틀을 갖추어놓았다. 선샤인랜드가 마주 보이는 마당 넓은 전원주택풍 시골정취라서 매출이 오르는 듯했으나, 빌어먹을 코로나 때문에 아직껏 투자비 건지지 못한 실정이다. 딸기농사로 벌충해야 하다보니 동분서주다. 

젊은 사람치고 안 바쁜 게 없는 동네에서 “시간이 제일 많다”고, 시간부자임을 자처하는 사람이 신현창 노인회장이다. 80고령에도 경운기 뒤에 물 싣고 동네 꽃밭 찾아다니며 물을 준다. 소년기부터 시작한 반장을 80줄에 놓았다. 그래도 그의 눈에는 동네일이 밟힌다. 

 


 

온동네도 굴러가게 하는 ‘한사람’의 힘

 

기자가 “동네한바퀴” 기사를 쓸 때는 한 바퀴 돌아서 감이 올 리가 없다. 그래서 최소 두 세 번씩은 돈다, 물론 혼자서다. 점심 후 시작하려는 이 라운딩에, 점심 밥상을 차려주신 노인회장이 동행까지 해주겠다고 나선다. 몇 십 년 동안 닫힌 옹기공장 문을 뜯어서 세목세목 중계해준다, 그때 그 시절 돌아가던 공장을, 인부들 이야기를. 

“동네 한바퀴 더 돌아야 쓰겠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이번에는 더 큰 외곽길을 동행해 주신다. 양편 고속도로 포물선 안쪽을 벗어나, 저 건너 골프장과 그 밑의 호수 ‘구합선’, 인근 도열한 군부대 사격장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요소 요처 설명해 주신다. 그 얘기만으로도 한국사의 새 장(場)들이 펼쳐지는 듯싶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 동네를 키우는 데 한 사람의 정성만으로도 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동네, 고내리 신근이다. 

 

- 이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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