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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수의 스케치-5]이삼장군 고택(백일헌)
임의수 (펜화가, 역사문화유산해설사)
기사입력  2020/10/22 [23:39]   놀뫼신문

[임의수의 스케치-5]이삼장군 고택(백일헌)

은행잎에 물든 솟을대문의 향촌가옥

 

 

코로나19로 거리두기가 한창인데도 불구하고 나들이를 권장하는 듯한 글을 쓴다는 게, 고민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눈여겨 본다면 우리 주변에는 결코 스치며 지나갈 수 없는 곳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 땅 모두가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와 채취가 숨 쉬는 곳이기에 말입니다.

  

자부심 뿌듯한 주곡리 사람들 

 

몇 년 전, 학교를 떠나며 남아 있는 분들께 보답한다는 의미로 그동안 그려온 작품의 인쇄본을 나눠주게 되었습니다. 저와 동갑인 한 분은 이삼장군 고택을 선택하더군요. 인쇄본이 완성되어 액자에 담아 전달하였더니 이튿날 그분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어머니 친정집이 여기 이삼장군 고택이라 이 작품을 선택했지. 액자에 담은 이 작품을 어머니께 갖다 드렸더니, 어머니는 즉시 벽에 붙은 아버지 사진을 내리고 임선생님 작품을 그 자리에 걸어 놓으라는 거야. 어쩔 수 없이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 영정 사진을 내리고 임선생님 작품의 액자를 걸어놓으니 어머니께서는 한동안 액자 속 그림만 바라보시며 아주 좋아하시더라구.” 이처럼 작품을 알아주고 만족하는 분들이 있기에 작가는 덤으로 얻는 기쁨을 다시 누리게 됩니다.

상월면 주곡리 마을은 저에게도 각별한 곳입니다. 20여 년 전 노성중학교에서 근무할 때에는 수시로 찾아와 솟대와 장승을 바라보며 이삼장군 고택을 둘러보곤 하였습니다. 해마다 정월 열나흗날 밤이면 장승제를 지내는 마을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도 생각납니다. 이삼장군 고택인 백일헌은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저에게는 은행잎이 물든 가을에 보는 경치가 가장 맘에 든답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큰길에서 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우리마을의 역사’란 소개글이 눈에 띕니다. 마을민들의 자부심이 넘치는 글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마을의 소개한 곳이 얼마나 될까요? 이것만 보더라도 예사 마을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개글을 뒤로하고 마을로 접어들면 길 양편으로 장승과 솟대가 방문객을 맞습니다. 

  

하느님같은 철새, 솟대 

 

솟대의 연원은 선사시대인 청동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청동시시대 때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 옛날에 달력도 없었던 시대에 날씨가 따스하다고 하여 무작정 씨앗을 뿌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겨울 철새가 날아갈 때면 봄이 온 것을 알고 경작지에 씨앗을 뿌리고 철새가 북쪽에서 날아오면 곡식을 거두었지요. 그러니 철새야말로 우리 인간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하늘처럼 모신 하느님이었습니다. 

이런 철새가 날아와 잠드는 곳 가까이에 철새를 닮은 솟대를 만들어〔소도〕 하느님 같은 철새에게 제사를 지내곤 했지요. 이렇게 철새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다스리던 분이 부족장이었습니다. 부족장은 이처럼 제사와 정치를 홀로 담당했기에 제정(祭政) 일치 사회라고 한답니다. 이런 부족장이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나면 소도 가까운 곳에 무덤을 만들었지요. 저세상에 가서도 지역민들의 안녕을 빌어달라고, 먼 곳에서 바윗돌을 옮겨와 무덤의 덮개로 삼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인돌이 되겠습니다. 그러니 여기 주곡리 마을은 솟대를 세우는 전통이 아직도 이어지는 것을 보니 아마도 청동기시대부터 우리의 먼 조상들이 자리를 잡고 살아오지 않았나 합니다. 

 

주곡리 장승제와 소지 

 

해마다 정월 보름 전날 저녁 무렵에는, 마을의 풍물패가 사물을 치면서 동네의 집들을 돌면서 액운을 막아주는 행사가 시작됩니다. 이윽고 달이 중천에 떠오르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경견한 마음으로 장승 앞에서 제를 올립니다. 마을민들의 안녕을 비는 행사로 장승제의 시작입니다. 막바지에 이르면 한지를 손에든 주민들이 차례로 나와 장승 앞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한지를 태웁니다〔소지〕. 한지를 태우면서 각자의 소망을 소리 내어 정성으로 읊는 것이지요. 고향을 떠나 먼 곳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내년 한 해에도 무탈하게 잘 지내도록 소원하며 말입니다.

장승과 솟대를 지나 마을 안쪽을 바라보면 왼쪽의 높다란 언덕 위로 낮은 담장을 두른 기와집이 나옵니다. 한눈에 보아도 예사 집이 아닌 듯 보입니다. 특히 마을의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지어서인지 무인의 정기가 배어 있는 듯한 사대부 집입니다. 고택 앞에 다다르니 시원스레 펼쳐져 주차장을 겸하는 넓은 공터와 정갈하게 다듬어진 작은 정원 뒤로 솟을대문과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반깁니다. 여름이면 배롱나무가 붉게 물들어 수줍음을 머금은 듯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겠지만, 우람한 은행나무가 노란 잎을 떨구며 손짓합니다. 

 

늘 열려 있는 솟을대문

 

지역마다 고택을 방문할 때면 의례 대문이 잠겨 있기에 담장 밖에서 까치발만 구르며 발길을 돌려야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곳 장군의 고택은 솟을대문이 항상 열려 있으니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렇듯 열린 문으로 들어서며 사랑채와 사당을 둘러봅니다. 낮게 쌓은 담장 밖으로는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넓은 들판이 보는 이의 눈을 시원스럽게 만듭니다. 또한 고택은 마당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어 각각 누마루나 툇마루에서도 독립적으로 주위 풍경이 집안으로 불러들이는 느낌입니다. 담장에 갇혀 고립된 양반의 위엄이 아니라, 누구와도 소탈하게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지향하는 고택입니다. 한 발 한 발 고택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대문을 나올 때면, 고택을 둘러싼 낮은 담장의 곡선이 고택을 자연스럽게 바쳐주니 고택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한 번 더 눈길을 주게 하는 것이지요. 

 

※ 이삼장군 고택은 백일헌(白日軒)으로 불린다. 장군이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 데 큰 공적을 세워 영조가 내린 하사금으로 1700년대 초에 지은 건물이다. 국가 민속문화재 제273호로 지정되었고, 장군과 관련된 다양한 유물은 부적면에 있는 백제군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임의수 (펜화가, 역사문화유산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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