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인물을 찾아서] 김원태 전 도의원
계룡시 김원태의 도전, 건곤일척(乾坤一擲)
김원태(金元泰) 전 도의원 사무실에 들어서면 벽에 걸린 힘찬 붓글씨 액자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乾坤一擲” 건곤일척, 운명을 걸고 온 힘을 기울여 마지막 한판 승부를 겨룬다는 사자성이다. 차기 계룡시장 선거를 조용히 준비하고 있는 그의 일성이기도 하다. 이제 그는 70줄에 들어섰지만, 어디에서도 그 나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하며 더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다양한 사회경험, 성공한 사업가로서
그의 고향은 논산시 채운면이다. 논산에서 초중고를 다녔다. 독자였던 그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당시 최고의 명문이었던 강경상고로 진학했다. 본래 그의 적성은 공고 쪽이었지만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곳을 졸업한 후 그는 부산으로 내려가 국영기업체인 대한조선공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현장과 교육장을 오가며 기계를 다루고 익혔다. 이때의 경험으로 그는 지금도 웬만한 기계는 한 번 보면 그 원리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2년여를 부산에서 경험을 쌓고 부모님의 노환으로 고향으로 급하게 돌아와서 이번에는 농사에 도전했다. 1970년대 초는 정부에서 통일벼를 장려할 때였는데, 그는 그 벼를 시범재배하며 기존의 2배 수확량을 기록했다. 그는 통일벼 다수확 3관왕을 기록하며 농촌의 보릿고개가 사라지게 하는 데 일등공신을 하였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번에는 기업체에 취업을 했다. ‘비사표 성냥’이라면 당시에는 누구나 다 아는 논산의 남성성냥공장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사무를 보며 회계, 생산관리, 수출업무까지 두루 경험했다. 항상 그렇듯 그는 치열하게 일했다. 회사는 매년 매출이 신장되었고 일취월장 성장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10년을 일했다.
드디어 1980년대 들어서면서 그는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자동차 가스충전소 사업이었다. 철저한 준비와 성실한 실행으로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사업장은 논산, 연무, 청양, 부여 그리고 대전에까지 확대 발전되었다. 이 사업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현재는 최고경영자로 남아 큰 결정만 하고 경영일선에서는 물러난 상황이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 마이더스 손
1994년,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양돈단지를 만든 경험도 있다. 당시 양돈은 대부분 소규모로 이루어지는 낙후 산업이었다. 특히 논산의 양돈은 논산훈련소 인근에 무수하게 흩어져 소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일대에서 나는 돼지의 분뇨 냄새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를 바꿔보자’고 몇몇 축산업 관계자들과 뜻을 함께 하고 외국으로 나가 선진화된 시설들을 견학하였다. 그리고 농수산부를 직접 찾아가 양돈단지의 필요성을 설득하기도 하였다.
그는 광석면에 4~5만 두의 돼지를 키울 수 있는 대규모 단지를 만들고 슬러지 시설을 갖춘 돈사를 건축하였다. 분뇨는 그 시설을 통해 위생적으로 폐수처리가 되게끔 설계되었다. 뿐만 아니라 양돈단지에서는 종자개량을 하는 등 양돈산업의 일대혁신을 가져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양돈단지의 성공은 타 지역 양돈업자들이 벤치마킹하여 지금은 전국에 보급되어 있다.
그는 3~4년 후 양돈단지 경영에서 물러난 다음에 축사를 지어 한우 30여 마리를 키워보기도 하였다. 이렇듯 그가 손을 대는 사업은 모두 성공을 이어 가는데, 이는 그의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만큼 준비하고 노력하고 연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만의 사업 노하우가 있다고 말한다.
“종자돈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큰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작은 눈뭉치를 단단하고 여물게 만들어야 하는 것과 같은 원립니다. 급하면 안 됩니다. 작은 눈뭉치가 단단해야 눈사람이 깨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어도 눈뭉치가 어느 정도 커지면 뒹굴면서 눈이 저절로 달라붙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022년 시장 출마 결심
“우리 계룡시를 모두가 부러워하는 가장 아름다운 최고의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시장 출마를 결심한 그는 역사에 남는 성공한 시장이 되겠다고 말한다. 그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제 10대 충청남도의회의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그는 도의원으로서 많은 일들을 했지만, 특히 계룡시를 위해서 그가 한 일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소방서 유치, 예술의전당부터 파라디아 아파트 구간의 도로 개설 사업 지원, 계룡노인지회 증축비 지원 등 도시 인프라 구축을 위한 일들은 덩치가 큰 것들이다. 모원제, 염선제, 사계고택 등 지역 내 문화재를 보수 유지하기 위한 지원은 문화사업이었다. 교육 분야에서는 충청남도에서 제일 먼저 시행했던 사업으로 관내 어린이집, 유치원 등에 공기청정기 보급사업과 리모델링 지원 그리고 관내 초,중,고등학교 체육관, 화장실 등 보수, 식기세척기 지원, 급식시설 리모델링 등에 신경을 썼다. 체육부분에서는 계룡파크골프장, 계룡풋살구장, 국궁장 조성 및 시설 지원 등에 신경을 썼다.
그는 건설, 교육, 문화, 복지 등 제반 분야에서 지역발전을 위해 전천후로 일했다. 그의 도의원 성적은 우수하다는 평가다. 그때의 정치적 감각과 그리고 누구도 갖지 못한 성공한 사업가로서의 풍부한 경험으로 다음 시장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조용히 시정계획을 구상중이다.
“요새는 차고 넘치는 데이터로 분석하고 기획하는 빅데이터시대, 모든 일은 빈틈없는 매뉴얼에 의해 이루어지는 디지털시대이지요. 하지만 그것으로 안 되는 꼭 사람의 손으로만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융통성을 가지고 조율하고 화합하고 다독이는 일은 로봇이나 기계가 할 수 없지요. 그런 차원에서 시정계획을 마련하고 있답니다.”
그는 ‘길은 하나가 아니고, 질러가는 길이 있으면 돌아가는 길도 있게 마련’이라고 전제하면서, 자신의 오랜 사업 경험을 계룡시의 발전을 위해 써보겠다고 밝힌다.
계룡에서 마지막 봉사기회 마련하고자
그는 2010년 계룡시로 이전하며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정당활동을 시작하였다. 본래는 쉬려고 계룡시로 왔는데, 일을 해야만 하는 천성에 따른 것이다. 새누리당 충남도당 수석부위원장직을 6년 동안 수행했으며 2014년도에 제10대 충청남도의회의원으로 당선이 되었다.
그는 “사업보다 정치가 훨씬 어렵다”고 말한다. 정치는 고려할 사항도 많고 변수가 많아서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다양한 경험과 연륜과 감각이 필요한 게 정치인데, 그간 얻은 사업의 경험과 익혀온 도의원의 정치감각을 가지고 계룡시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탁구를 워낙 좋아하는 그는 현재 계룡시탁구협회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앞으로 탁구전용구장을 만드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평화교회 장로이기도 하다. 거기에 아파트 뒤편에 텃밭을 가꾸는 것이 취미인 그는 식물에 대하여 더 깊이 공부하고 연구해보고 싶어서 지난 2019년도에는 공주대학교 식물자원학과 학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지금은 공주대학교 대학원 식물자원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