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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듣는다] 전학온 대건에서 만난 예봉 김영배·김홍신
기사입력  2020/08/12 [16:27]   놀뫼신문

[작가에게 듣는다] 소설가 김홍신을 키운 사람들

전학온 대건에서 만난 예봉 김영배·김홍신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동시에 쪼아야 한다. 이를 의미하는 줄탁동시(啐啄同時)는 불교용어로, 선종의 공안(公案) 가운데 하나이다. 

작가 탄생도 줄탁동시인 거 같다. 대한민국 스타작가 김홍신의 탄생은 유치원에서부터 부화기를 맞는다. 1947년 논산에서 거주하던 어머니가 시댁인 공주에 가서 출산하고 달포 만에 논산 본가로 데려온다. 어린 김홍신은 유치원을 다녔다. 부창동 성당에 있는 쌘뽈유치원은, 당시 대건유치원이었고 김홍신은 2회 졸업생이다. 

성 베드로(Peter) 신부님은 프랑스 파리 출신이었다. 유럽에서 유행하던 만화책 『땡땡』을 가져오셔서 말풍선 안에 번역해 놓으실 정도로 아이들을 좋아하신 분이었다. 한글을 뗀 홍신 어린이는 신이 났다. 만화가 재미나서 읽고 또 읽다, 신부님 방까지도 들락날락하며 만화에 심취했다. 당시에는 만화책을 보면 공부 안 하고 딴 짓하는 걸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국민학교에 다니며 만화에 몰두하는 김홍신의 만화책을 어머니는 뺏어 불쏘시개를 하고 아들은 몰래 감추는 전쟁을 오래 했다.

김홍신의 독서벽은 국민학교로 이어졌고 4학년 때 큰 변화가 생겼다. 부창국민학교 학생수가 많아지자 반월학교로 강제 전학을 당한 것이다. 반월, 화지, 대교동에 살던 친구들이 집단 전학 대상이었다. 반월로 학교를 옮긴 김홍신은 책벌레가 되어 활자중독증으로 빠져든다. 6학년때 도서반장은 그의 당연직이었다. 책을 관리하면서 점점 책 속으로 묻혀 갔다. 도서관 책도 모자라 선배나 선생님에게 빌려 읽었다. 간혹 국한문혼용 책도 만났지만, 그게 뭐 대수랴, 모르는 한자는 건너뛰면 그만이고...

 

논산 재소환, 미술도 생각했으나

 

1959년 중학교 시절은 공부에 매진했다. 당시 명문 대전고가 목표였기 때문이다. 대전고 다음 서열은 공주사대부고(2개반), 공주고(5개반)였는데, 그에게 문을 열어준 곳은 공주고였다. 1962년 고1 가을,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다시 논산으로 돌아와야 했다. 대건고에서의 생활은 1학년 말부터 시작되었다. 

국어 작문시간에 주어진 제목은 ‘계절에 관한 수필’이었고 열심히 써내려갔다. 그런데 뒤에서 내려다보는 눈길이 하나 있었다. 김영배 국어 선생님이다. 글을 제출하자 선생님의 목소리가 커진다. “김홍신, 나와서 자기가 쓴 거 읽어봐!”  “우~” 하는 친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선생님의 김홍신 편애는 거침없는 하이킥이었다. “김홍신은 글 쓰는 재주가 뛰어나다. 그래서 특별히 낭독시킨 거다.”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다소 무뚝뚝한 분이었지만 김홍신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963년, 대건고 최초로 백일장이 열렸다. 거기서 김홍신은 덜컥 장원을 먹는다. 「대건학보」가 최초로 발간되던 시절, 꼬마작가로 발돋움하는 등용문 앞에서 김홍신은 주저한다. 선택지가 또 하나 주어져선데, 미술 선생님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림에 재주가 돋보이는 제자 김홍신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선생님은 대조적이었다. 미술선생님은 미대 출신의 실력파였다. 재능이 출중하여 참고서까지 집필하였다. 바로 그게 사달이 났다. 교과서 사기도 어려웠던 시절, 본인이 저술한 참고서를 학생들에게 판매하였다. 그게 문제가 되어 대건고를 떠나야 했다. 참 멋지고 젠틀한 선생님이라 학생들에게 잘 해주시는 호감형 훈남이었는데, 그래서 장래 진로로 화가도 생각 중이었는데… 미술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전학 와서 만나게 된 김영배 선생님

 

반면 김영배 선생님는 호리호리한 체구에 날카롭고 강직한 스타일이었다. 대하기가 좀 어려웠던 분이다. 교내 백일장을 개최하면서 단독 처리해도 되련만 심사위원을 4명으로 구성하고 교감선생님을 위원장으로 추대했다. 

그런 엄격함을 통과하여 장원으로 뽑힌 김홍신은 후배도 잘 만났다. 「대건학보」를 만들 때 1년 후배를 지도하며 같이 만들었는데, 한남대 총장을 역임했던 김형태 박사가 그 후배다. 공석에서 김총장은 김홍신 선배 밑에서 함께 보냈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능력이 뛰어난 선배”라고 자랑했다. 

당시 대건고교 3학년 1반은 이과, 2반은 문과였다. 어머니가 가톨릭 의대를 원하셔서 응시했으나, 결과는 낙방ㅠ 재수시절에 하라는 공부보다 소설 쓰는 데만 열중했다. 그 당시 써둔 소설이 전부 7편. 재수시절 언젠가 김영배 선생님을 조우했다. 국문과 권유는 하지 않고 그저 “공부 열심히 하느냐?” 묻기만 한다. 입학원서 쓸 때 부모님 허락 없이 건국대를 응시하였고, 한바탕 소동 끝에 국문과에 입학했다. 

 

대학 신입생 때 만난 임옥인 작가

 

1966년, 입학하자마자 학보사에서는 문학작품 공모를 했다. 신입생 김홍신의 소설이 많은 선배들을 제치고 당당 게재가 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심사를 맡았던 임옥인 작가가 불렀다. “그동안 시간이 거의 없었을 텐데, 대체 언제 어떻게 썼느냐?” 재수할 때 썼던 7편의 소설을 보여주니 “됐다. 나랑 같이 공부하자”는 답이 돌아왔다. 일약 임옥인 교수의 문하생이 된 것이다. 

집안의 부도 사태로 2학년 때 휴학을 해야 했다. 복학 후 1969년 단편소설 「대리인」으로 건대신문문화상 소설부문에 당선이 됐다. 4학년인 1970년 문공부신인상제도가 전국대학문화예술축전으로 변경되었다. 소설부문에서 단편소설 「사설세무서」가 당선되었고, 건대신문사에서 단편소설 「거짓말 특강」을 연재한 후 졸업식 때 총장상을 수상한다. 

김홍신 소설 배경은 대부분 그가 자란 논산이다. 등단작은 두 편이었다. 1975년「현대문학」 10월호에 임옥인 선생의 추천으로 단편소설 『물살』이 초회 추천되었다. 그 다음해인 1976년 2월호에 『본전댁』이 완료추천되어 소설가로 공식 등단한다. 『물살』은 요즘 같은 장마철에 고통스러운 서민의 삶을 그려냈다. 『본전댁』은 논산댁의 다른 이름이었다. 

 

 

김홍신 작품의 배경 거개는 논산 

 

논산의 원초적 휴머니즘을 근간으로 하는 그의 저력은 밀리언셀러라는 신기원을 불러온다. 『인간시장』의 시작은 그가 자란 논산 방죽골(반월동)의 철로변에서 자라는 악동의 얘기부터 펼쳐진다. 총 10권의 대하소설이다. 1981년「주간한국」에 『스물두 살의 자서전』을 연재하고 9월에 제목을 바꿔 장편소설 『인간시장 1』이 출간하자마자 10만부를 돌파했다. 1983년 장녀 예슬이 출생한 해, 『인간시장 5,6』이 이어지면서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 작가가 탄생한다. 인간시장 10권은 1985년에 완간되었다. 지금까지 『인간시장』 판매 공식기록은 560만부. 

인간시장 시리즈로 한국 소설 금자탑을 우뚝 세운 국민작가 김홍신은 김영배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김홍신 학생의 글을 보더니 “넌 작가가 돼라”고 했던 그 은사는 20년 후 대성한 작은 거인을 보면서 만면에 웃음을 머금으셨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넌 참으로 출중했다.” 

 이런 스승을 회고하는 김홍신 작가는 “만일 그분이 학교를 서울에서 나와 중앙 무대에서 활동하셨다면 대한민국 시조와 수필 두 부문의 금자탑을 세우셨을 분”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처음부터 상대방을 알아본 사제(師弟)는 줄탁동시를 넘어 쌍두마차, 청출어람으로 이어진다.

 

- 이진영 기자

 사진제공 논산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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