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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이야기] 우리 논산의 지명 어떻게 지어졌나?
류제협 (전) 논산문화원장
기사입력  2020/07/02 [13:29]   놀뫼신문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기 마련이고, 또 그 이름은 누군가가 지었기 마련이다. 그러면 우리 논산의 지명을 언제 누가 어떻게 작명하였는지, 그 숨은 이야기를 풀어보자. 


▲ 1872년 은진현지도(출처 서울대규장각)     ©

 

▲ 1914년 논뫼다리 전경     ©

 

일제의 동(洞)이름 창씨지명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0년 우리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강제 개명한 창씨개명이 있었다. 이는 신사참배, 황국신민서사 암송, 지원병제도 등과 함께 우리 민족에게 강요된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일제는 이보다 훨씬 전인 1914년에 지명통폐합을 단행하면서 우리 동네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창씨지명도 단행하였었다. 그들은 사람의 이름보다 땅의 이름을 먼저 그들 식대로 바꾼 것이었다. 그래서 논산의 경우는 당시 혼마치(本町), 아사히마치(旭町), 사카이마치(榮町) 등의 일본식 이름으로 불렀었다.

1945년 광복이 되었지만 이렇게 창씨개명과 창씨지명으로 일본식으로 바뀐 이름은 우리말로 바꾸지 못하고 있다가 1년이 더 지난 1946년 10월23일 미 군정청 법령 122호 조선성명복구령에 의하여 일본식 이름을 우리말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1년여가 지난 1947년 말에 가서야 마무리가 되어 남한 지역의 일본식 호적을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이 비로소 끝나게 되었다.

이때 일본식 동(洞) 이름을 바꾸는 작업도 함께 진행하였는데, 논산의 경우는 당시 논산군청 내무과 행정계장이었던 김용구씨와 군청 직원이었던 김영한씨가 책상에 마주 앉아 동명을 우리말로 지어나가기 시작했다.

 

 

동(洞)이름 우리말로 바꾸기

 

동(洞) 이름을 우리말로 바꾸기 위한 지명변경위원회를 설치하고 지역의 향토사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동(洞)이름을 바꾸라는 위로부터 공문이 내려왔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논산 같은 농촌 지역에는 지역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사람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에 김영한씨와 김용구 계장은 둘이서 상의해가며 동(洞)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었다. 화지동은 조선시대 은진현 화지산면 지역이었으므로 중심 시가지가 있는 곳을 화지동이라 하고, 반월동은 제일은행 사거리에서 우체국을 지나 논산역 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다리가 나오는데 그 다리 이름이 반월교(半月橋)였고, 또 논산오거리 쯤에서 제일감리교회 쪽으로 바라보면 교회가 있는 작은 동산 밑에 있는 마을이 반달처럼 반원형으로 형성되어 있어 반월동이라 하고, 그리고 대교동은 금강 하류 개수공사를 하여 공주 방면으로 큰다리가 놓였으므로 대교동이라 하고, 부창동은 창말 해창 등의 옛 마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나라의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던 곳이었으므로 창(倉) 자를 살리되 3음절 동명이 부르기 좋으므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부유할 부(富) 자를 앞에 넣어 부창동이라 하는 식으로 이름을 지어나갔다고 한다.

 

또한 김영한씨의 기억에 의하면 강경의 경우는 이운화씨와 김한갑씨가 우리말 동명을 짓는데 관여하였다고 하는데, 강경 지역의 어른들에게 물어도 이분들에 대해 아는 분들을 만나지 못하여 강경의 동명 변경에 대한 일화를 들을 수 없어 안타깝다. 

 

▲ 1914년 논산시내 국가기록원 소장     ©

 

▲ 1914년 은진군 지도(출처 서울대규장각)     ©

 

▲ 1985년 구읍사무소앞     ©

 

1985년 구읍사무소앞

 

 

걸어다니는 충남의 백과사전, 김영한씨

 

김영한씨는 논산 광석면 출신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군청에 임시직으로 3~4개월 정도 세금 체납자들로부터 돈을 받는 일을 하게 되었다. 워낙 실력이 출중하고 성실하게 일한 그는 윗사람들로부터 신임을 얻게 되었고, 정식직원을 뽑으니 지원하라는 독려를 받아 시험을 치르게 되어, 급기야 수십대 일의 경쟁을 뚫고 당당히 합격하여 정식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는 논산군청, 충남도청, 대덕군청 등에서 문화 담당으로 오랫동안 근무했으며 충남도청 사료실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정년퇴임 후에는 충남향토사연구회 회장을 맡아오는 등 지역의 귀중한 향토사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여 발표하기도 하였으며, 그동안 수집한 고문서와 귀한 자료들을 지역의 각 대학에 기증하기도 하였다. 96세의 일기로 돌아가실 때까지 그는 충남의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으로 불릴 정도로 지역의 사료 발굴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부르고 있는 지금의 우리 동네 이름들은 이렇게 김영한씨의 아이디어와 수고로 만들어졌다. 동(洞)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이름을 갖기까지의 연유가 눈으로 보이는 듯 하며 재미있기까지 하다. 모든 이름 하나하나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사연이 깃들여져 있기 마련이다.

 

류제협 (전) 논산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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