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 주말여행기]
23년 주말아빠에 주말형·누나 대가족
6월 6일 현충일, 탑정호에 일군의 아이들이 모였다. 대부분 초등학생들이지만 혹간 중학생도 보인다. 오늘은 탑정호 발원지 찾아가는 날. 그 전에 탑정호 데크길부터 걸으면서 바람을 느끼고 찰랑이는 탑정호 설명을 들으며 뛰노는 물고기도 관찰한다.
‘늘푸른나무’가 주말마다 떠나는 자연여행이다. 이 여행에는 주말아빠 뿡뿡이 아저씨가 늘 앞장선다. 요즘 코로나로 비상인 시국이라 이번 주말여행은 출발 때부터 달랐다. 차량소독은 기본이고, 체온 재고, 소독제 바르고, 그리고 나서 평상시 진행하던 쓰리고(3고=잘놀고, 잘먹고, 잘자고)로 이어졌다. 떠나는 아이들은 대부분 주말에도 혼자 지내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대부분 아침을 안 먹고 나온다. 11시 30분쯤 이른 점심 시간이다. 오늘 메뉴는 한우불고기 버섯전골, 한창 자라는 아이들은 신났다. 그런데 아뿔사, 어떤 놈은 갑자기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난리가 아니다. 허겁지겁 너무 먹어서다.
한창 진정한 다음 버스에 오른다. 목적지는 탑정호 발원지 중 한 곳인 금산군 남이면 휴양림이다. 숲체험, 놀이활동, 수질관찰활동 등 다양한 이름을 내세우지만 아이들에게는 그저 신나게 뛰어 “놀고”뿐이다. 살판나게 논 다음 저녁때 다 되어 30여 분 귀가길 오르면 다들 골아떨어진다. 간간 코를 골면서 자는 친구도 있다.
매주 떠나는 주말 여행은 대부분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돌봄이다. 그러나 두어 달에 한번씩은 1박2일로 떠나기도 한다. 그냥 노는 거 같지만 DMZ, 우포늪, 순천만, 5대강발원지 등 ‘환경(環境)’이라는 테마가 앞장선다. 여기, 이들 앞에 늘 깃발 들고 앞장서는 사람이 있다. 공익단체 ‘늘푸른나무’ 권선학 대표이다. 늘 만면에 웃음 지천여서 뿡뿡이아저씨로 불리는 그에게 대화를 청하였다.
‘주말아빠’는 어떤 분인가요?
주말마다 아이들의 아빠가 돼주는 사람입니다. 우린 대가족이니 주말 형, 주말 언니도 있어요^ 돌봄교실과 지역아동센터 등을 통해 돌봄의 영역을 넓어졌다고는 하지만, 주말은 쉬잖아요. 이렇게 틈새 소외가 발생해요. 토요일 오전이나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나홀로 아이들이 적잖아요. 심지어는 식사를 거르면서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주말아빠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요?
네, 절제력과 판단력, 상황별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방치되는 경우,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야기될 수 있겠다 느껴졌어요. 우선 범죄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지고요.... 미디어나 도박에 중독되기도 십상이죠. 영양부족과 무기력, 우울증에 빠지거나 은둔형 외톨이로 진행될 소지도 있지 않겠어요?
우리 ‘늘푸른나무’에서는 보호자가 있어도 적정한 돌봄과 여가활동이 어려운 지역 아동들을 대상으로 주말돌봄 프로그램을 기획·실시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정서적 안정과 감수성을 살려주는 인성교육쪽으로요.....
그 첫 시작이 궁금합니다.
며칠 전 우연하게 그간의 활동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1987년 4월부터 시작했더라고요. 23년째라 생각하니, 가슴 벅차오르네요. 처음에는 근로청소년들 돕는 야간학교 교사로 시작했습니다. 사회 그늘진 곳을 찾다보니 장애인과 독거노인, 사각지대의 아이들이 보이더군요. 요즘은 독거노인 간식지원과 생활민원처리, 그리고 지역아동돌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특히 지역아동 주말돌봄은 거의 매주 해요. 1박 2일로는 일년에 5~6회 다녀오고요. 대개 10명에서 많으면 20명이 참가하는데, 그때는 저 말고도 4~5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수고를 해줍니다.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성격을 규정해 보니 맞춤형, 생활밀착형, 틈새복지형이더군요. 나 말고 이런 프로그램을 누가 진행하는지 한번 찾아봤어요. 동지(同志) 찾아내기가 쉽지 않더군요ㅎ 저 같은 경우는 농협에 다니는 직장인입니다. 주말 휴식을 가족과 보내지 않고 주말마다 집 떠나 이런 활동을 줄기차게 한다는 게 쉽지 않아서겠죠, 아마도요?^
주로 누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요?
기본적으로 자연체험입니다. 숲체험이나 철새탐조활동, 갯벌체험, 표범장지뱀탐사, 겨레의 강 발원지탐사 등이죠. 숲체험인 경우에는 수생생물관찰, 양서류관찰, 명상 등이에요. 자연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종종 서울 예술의 전당 전시회, 서울숲, 안전체험 등도 떠나요.
아이들은, 어쩌다 우리 후원자분들 자녀도 와요. “엄마가 일요일에도 일해서 매일 집에만 있었는데 뿡뿡이 아저씨와 형·누나와 같이 놀 수 있어 너무 좋다. 노는 날이 기다려진다”고 말한 아이도 있어요. ‘주말 아빠가 잔소리하지 않아서 좋다’고 하는 친구도요^^기본적으로는 정부 및 지자체 수급대상자 자녀, 한부모 또는 조손가정 자녀, 다문화가정 자녀 또는 돌봄지원이 필요한 친구들이죠.
20여년 넘게 해오면서 기억에 남는 아이가 많을텐데요....
우리가 환경교육에 중점을 두다보니, 실제로 대학을 환경교육과로 간 친구도 생겨났어요. 이제 스무살 성인이 된 김*형은 선택적함묵증을 갖고 있었어요. 낯선 사람이나 상황에서는 말을 못하는 증세인데, 10년 이상 늘푸른나무 프로그램 참여 결과 완치되어 취업하였으며 현재 주말프로그램에 자원봉사자로도 참여중이에요.
배*호(중3)는 할머니, 부모, 두 동생과 살고 있는 평범한 가정의 학생이었어요. 경제적 어려움으로 엄마가 구속되자 충격을 받아 음주와 흡연 등 일탈 위기에 있었지만 늘푸른나무의 <청소년과 함께걷기> 행사 등에 참여하며 현재 안정적으로 학교생활에 임하고 있어요. 2년 이상 참여한 경우고요..... 20여 년 지나다 보니 예전 돌봄을 받은 아이들이 성장해 이제는 이곳 후배들을 돌보는 ‘선행(善行)의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어요. 공고 졸업 후 취업한 청년과 대학 조교로 있는 청년이 매달 1만원씩 후원하는 식으로요.
그 동안 견지해온 철학, 현장에서 생성된 가치관이 있다면?
철학은 거창해 보이고요(웃음) 기본적으로 3고(쓰리고) 원칙은 있어요. <잘놀고>는 자연 속에서 신나게 놀게 해주는 겁니다. <잘먹고> 그러나 패스트푸드와 탄산음료 등을 멀리하고 최대한 자연 요리 음식을 함께 먹어요. <잘 자고>까지가 3고입니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아이들인 만큼 준비물이나 참가비 등의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합니다. 다만 사회성 향상을 위해 기본품성 및 인성, 에티켓 함양은 늘 신경 씁니다.
경비가 꽤 들텐데요? 조력자도 필요할 게고요...
경비는 기본적으로 후원자들의 후원금입니다. 논산계룡교육지원청 프로그램 지원금으로도 일부 충당하고요, 환경부에 공모사업 신청해서 지원된 보조금으로도 진행합니다. 가끔은 독지가들께 지정 후원 부탁도 하고 있습니다(늘푸른나무 ☏041-736-1223).
조력자는... 동신아파트에서 봉사하시는 가르멜수녀회 수녀님 세 분이 가장 큰 도움을 주셔요. 저학년 아이들이 방과후 돌봄을 받고 있는데, 저는 주말프로그램 담당인 셈이지요 ㅎㅎ “대체 우리 가족은 언제 놀러 가는 거야?” 하면서 푸념하는 아내와 아들은, 말만 그렇지 내심 언제나 든든한 아빠의 열혈팬들이다.
- 이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