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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노트] 채운면 우기리 김일중 님 "자서전에 담아보는 고생, 아내, 필사, 장기기증..."
기사입력  2020/05/29 [11:02]   놀뫼신문

[인생노트] 채운면 우기리 김일중(79) 어르신

자서전에 담아보는 고생, 아내, 필사, 장기기증...

 

집 주인의 성품인 듯 반듯한 서체의 천자문이 벽에 걸려 있다. ‘장손에게 줄 선물’이라고 하셨다. 한자를 배우지 않는 지금 아이들은 읽을 수도 없고 뜻도 모르겠지만, 서체에 담긴 할아버지 마음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30년 내공이 깃든 묵향이 벽에 걸린 글씨에서 배어나오는 듯했다.

 김일중 어르신(79세)이 자서전 출판하려고 시간이 날 때마다 쓰고 있는 파란 공책 속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어릴 때 고생은 사서 한다지만

 

영등포구 소사에서 태어나 수박, 참외 등 과일 농사를 하시는 부모 밑에서 부족함이 없이 자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6·25 전쟁이 터졌다. 어려운 일은 한꺼번에 손잡고 왔다. 아버지가 병이나서, 온 식구는 석탄기차를 타고 아버지의 고향인 채운으로 내려왔다. 종조할아버지 댁도 방이 두 칸인 초가집이었다. 윗방에서 네 식구가 피난 살림을 시작하였다. 

배고픔이 일상이 되고, 추위가 뼛속까지 고스란히 파고드는 겨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전쟁 통이라 병원 한 번 갈 수 없었다. 아버지 주검을 옆에 두고 세 식구가 초상을 치렀다. 동네 사람들도 대부분  피난을 가고 없어 들것으로 모시는데도 힘든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봄이 와도 먹고 사는 일은 까마득했다. 뚝새풀을 바가지로 훑어 씨를 자루에 담아오면 어머니는 볶아 가루로 만들어 수제비처럼 끓이셨다. 그것이 세 식구 주식이었다. 방세 없이 얹혀살고 있어 한 집에 오래 살 수가 없었다. 집주인 눈치가 보이면 이삿짐을 싸 방을 옮겨야 했다. 몇 달에 한 번씩 이사를 했다. 

왕골자리를 만드는 일에 온 식구가 매달려 하다 보니 학교에 갈 여유가 생겼다. 3학년으로 편입해 세 살이나 어린 동급생들과 공부를 했다. 늘 우등상을 받았지만 집에 오면  산에 가 땔 나무를 하고 밤이면 자리 엮는 일을 해야 했다. 6학년이 되자 중학교 진학반을 뽑아 따로 공부를 시켰는데, 형편상 진학할 수가 없어 공부를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받은 상처가 평생 한이 되었다.

 

▲ 약혼은 둘이서 몰래 사진 찍는 것으로 대신했다. 예물은 올케언니에게 빌린 손목시계     ©

 

 

 

내 인생에 복덩이 아내를 만나고

 

국민 학교를 졸업하고 연무대에 있는 군납 빵공장에 들어갔다. 먹고 자는 일자리였다. 물지게로 물을 지러 나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새벽부터 하는 힘든 일이었지만 부지런히 하다 보니 얼마 되지 않아 기술자 대접을 받았다. 누나도 미용 기술을 배워 동네에서 불파마(숯을 넣어 하는 파마)를 하면서 함께 돈을 모아 집을 살 수 있었다. 울도 담도 없는 오두막집이었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우리 집이었다.

반복되는 공장일이 힘이 들었지만, 퇴근 후 혼자 한자를 썼다. 그때 친척 동생의 소개로 아내를 만났다. 남들처럼 극장이나 찻집에 가지는 못했지만, 성실한 나를 믿고 응원해주는 만남을 7년 동안 가졌다. 

제대 후 그 공장에 다시 들어갔다. 모았던 쌀 10가마를 사장님께 맡겨 돈을 굴렸다. 몇 년 후 돈을 돌려받아 논 6마지기 사면서 결혼을 했다. 장모님의 반대로 약혼은 둘이서 몰래 사진 찍는 것으로 대신했다. 사진 속 예물은 올케언니에게 빌린 손목시계였다. 그 시절에 드문 연애결혼이었다.

아내는 내 인생의 복덩이였다. 새색시가 왕골자리를 논산 장에 파는 일부터 농사일까지 몸을 아끼지 않았다. 농사지은 쌀은 계로 불려 논을 샀다. 논은 10마지기, 20마지기로 불어났다. 지금 사는 집을 쌀 142가마를 주고 사 이사하면서 쌀 빚을 냈지만, 그 빚도 갚고 3남 1녀까지 살뜰하게 키워 아들들은 대학까지 공부시켰다. 고생하신 어머님께는 돌아가실 때까지 효부였다. 지금도 업고 다니고 싶을 만큼 집사람이 고맙다.

 

세상이 무너지는 아픔

  

못 배운 한이 남아 아이들은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했다. 농사 일이 많았지만 삽자루 한 번 쥐게 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잘 따라 열심히 공부했다. 논산대건고등학교에 가 그 학교에서도 성적이 좋았다. 힘들어도 저녁이면 아내가 해준 반찬을 학교 앞 자취집에 갖다 주었다. 시험 기간에는 아이들 옆에서 자고 아침에 집에 와 농사일을 했다. 유별난 아버지였다. 

농사도 자식 농사처럼 했다. 딸기농사를 초창기부터 지었다. 물아카시 나뭇가지를 세워 만든 소형 비닐하우스 재배를 시작으로 대형 하우스, 철재 하우스를 세워 딸기를 키웠다. 해마다 소출이 좋았다. 판로도 걱정이 없었다. 서울 단골 상회에 딸기를 보내면 ‘속박이 없고 농사를 잘 지어 보낸다’고 믿고 거래해줘, 30년 동안 딸기 농사에 큰 어려움이 없었으니 정말 운이 좋았다. 고생은 어렸을 때 다 한 것처럼 딸기 농사 후 꽈리고추, 상추를 재배해도 풍작이었다. 일 년 내내 쉴 새 없이 일을 했지만 힘든 줄 몰랐다. 아이들은 다 직장을 찾아가 자리를 잡고 막내아들은 제대 후 복학해 학교에 다니니 걱정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호사다마련가, 누가 시샘이라도 한 것처럼 공부 잘하고 말썽 한 번 부리지 않던 막내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한 쪽 세상이 무너지는 아픔이었다. 

 

▲ 지금은 성경 필사를 함께 하는 인생의 동반자이다.     ©

 

▲ 장기기증을 해달라는 유언장을 품고 다닌다     ©

 

 

 

품고 사는 유언장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에 친지의 권유로 성당에 갔다.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듯, 다시 신앙생활 속에서 안정을 찾았다. 다른 삶이었다. 딸기농사도 접고 논농사만 남겼다. 쉬는 시간에 쓰던 한자를 이제는 서예학원 다니면서 배우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동호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고, 전시회 출품으로 입상을 해 시상식에도 참여했다. 그 후에는 선생님을 따라 노인복지관으로 갔다. 일주일에 두 번씩 가서 글씨를 꾸준히 쓰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올해는 복지관에 못 가는 대신 자서전을 정리하고 있다. 내년이 80살인데 자서전을 낼 계획이다. 옛날얘기를 하면 요즘 아이들은 ‘꼰대’라고 한다지만, ‘겪은 아픔이나 고생이 소설이 아닌 실제 이야기라는 것을 알리고 싶고 마지막 고생한 세대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고 있다. 유언장도 작성했다. 재산 분배가 아니라 죽은 후 장기 기증을 꼭 해 달라는 유언이다. 어렵게 살다보니 남을 위해 좋은 일 한 번 못했는데, 죽은 후에라도 좋은 일 하고 싶어 장기기증서 서약을 했다. 누군가에게 내줄 몸이라 아끼며 살고 있다. 아직 안경 없이도 성경을 읽고 필사하는 눈은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장기기증서를 지갑에서 꺼내 보여주시며, 몸에 꼭 지니고 다닌다고 하신다. 책상 위에 성경을 필사 중인 원고엔 바른 글씨가 한 칸 한 칸 채워져 있었다. 김일중 어르신의 삶의 자취처럼 어느 한 곳 흐트러짐 없는 글씨였다.

 

[글] 유환숙 시민기자

[사진] 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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