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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 돌자 동네한바퀴] ‘저산너머’ 촬영지 벌곡면 검천리
새 보금자리 늘어나고 젊어지는 산촌 검·천·리
기사입력  2020/05/13 [14:01]   놀뫼신문

 

[다같이 돌자 동네한바퀴] ‘저산너머’ 촬영지 벌곡면 검천리 

새 보금자리 늘어나고 젊어지는 산촌 검·천·리

 

검천리는 외부에 잘 노출이 되지 않는, 숨겨진 동네였다. 그러다가 이번에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담은 영화 『저 산 너머』의 주 촬영지가 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논산시사회에서 이구동성 쏟아진 반응, “논산에 저토록 아름다운 데가 있단 말이야?” “근데 검천리가 대체 어디지?”

기자도 내심 그런 궁금증과 기대로 내비에 #검천리마을회관을 입력하였다. 도착 메시지가 떴지만 마을회관이 쉬 눈에 띄지 않는다. 마침 갯가의 모정(茅亭)에서 동네 아줌마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대원 이장(77세), 본토박이 임용규 옹(81세)과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검천리는 마을회관이 1반 안쪽으로, 마을 집들과 함께 묻혀 있었다. 검천리는 3반까지 있는데, 마을건물은 경로당 겸하는 마을회관과 모정 3개가 전부였다. 

 

▲ “저 산 너머” 촬영지인 벌곡면 검천리 갈대밭. 강 중간에 다리가 있고 그 뒤 외따로 서 있는 나무가 ”옹기목(김추기경 아버지 직업이 옹기장수여서 붙인 이름)     ©

 

‘저 산 너머’ 촬영지, 검천리 갑천

 

검천리는, 길 따라서는 대전권이다. 현재 대전 서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수락계곡 대둔산까지 온다. 이 버스 노선 연장은 벌곡면의 10년 숙원사업였고, 작년에서야 비로소 그 꿈이 이루어졌다. 수락계곡에서 발원하는 대전발 갑천(甲川)은, 도산리에서 덕곡리 통과한 다음 검천리 앞을 지나간다. 곧어어 대덕리, 사정리를 거쳐 벌곡면사무소쪽으로 구비쳐 나간다. 

이 갑천뚝방길 주변에서 ‘저산너머’ 영화 상당부분이 촬영되었다. 걸핏하면 나무에 올라가는 김수환, 갈대밭과 ‘저 산 너머’인 배경 뒷산, 신부님이 자전거 타고 건너가는 다리, 지게로 이고가는 아버지의 장례 행렬, 그리고 행상 나가는 엄마가 걷는 뚝방길.... 영화가 주는 몽환적 이미지는 현실 세계와는 다소 달랐다. 요즘 흙길신작로 찾기가 힘들다. 시멘트로 포장돼 있던 뚝방길에는 다시 흙이 덮어지고, 촬영은 그 새길에서 시작됐다. 나무 위로 올라가는 통나무 사다리는 그대로 보전되어 있어서, 기자도 직접 올라가 보았다. 느낌이 실감으로 바뀐다. 사다리는 남아 있지만 그 외의 소품들, 심지어 자연풍경도 사라져 가려 한다. 

 

▲ 일평생 검천리에서만 살아온 임용규 옹(81세) 부부     ©

 

▲ 검천리 서대원 이장     ©

 

1반 거미손 거먹바위 

 

검천리 갑천에서 길 건너편인 마을회관쪽 산을 보노라면 병풍 같은 암벽들이다. 그 중 동네 앞에 한 산이 불쑥 솟아나와서 그 장면을 멀찌감치에서 본다면, 마치 바위벽에 시꺼먼 거미가 붙어 있는 모양새란다. 그래서 거미손, 스파이더맨이다. 거미손은 거먹바위가든과 맞닥뜨린다. “거미손, 거먹바위가 한자명인 검천리로 변형되어서 확정되었다” 서이장이 들려주는  지명유래다. 

검천리는 세 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1반 검천은 25명 정도, 2반 오작실에는 50여 명이 산다. 3반 배티는 동네다리건너인데 25명 정도 산다. 76가구 백여 명이 모여 사는 이 동네 역시 독거노인이 많으며, 남녀 비율 3 대 7 정도이다. 동네가 보수적이어서 아직도 남녀7세부동석 분위기가 잔존하는 풍속도이다. 1반에는 삼대가 함께 사는 집도 있다. 올해 91세 김봉규 어르신은 참전용사로서 몸이 불편하신데, 아들인 김영석 씨(50세) 자부가 시아버지를 편하게 봉양하는 효자집안이다. 

다리 건너기 전 동네공터에 쌍둥이 거목이 병립했는데, 작년 태풍으로 왼쪽 나무가 갈갈 찢겨져 나갔다. 미관상 밑둥가리까지 몽땅 베어 버리지만 검촌리는 굵직한 밑둥 몇 미터까지는 그대로 살려두었다. 마을개발위원회가 변해서 된 마을자치회는 작년도 마을사업으로 다리 도색을 하였다. 검어보이던 다리 난간이 말쑥해졌다. 이장 겸직인 마을자치회장은 박필남 마을총무와 11명의 위원이 머리를 맞대면서 일해가고 있다. 성경남 노인회장, 전영인 부녀회장도 묵묵히 일해가는 중이다. 

1반은 평범한 시골집들이다. 개울 건너에 검은바위가든이 있는데, 갯가 주변은 유원지 분위기다. 상류로는 캠핑장도 있고 ‘으름터널’도 있는 덕곡리이다. 캠핑장은 아래로 내려가서 대덕리쪽에도 두엇 있다. 영화는 대부분 검천리 1반 개울가에서 찍었다. 촬영 당시 동네에서 협조를 많이 했다. 지역 안내는 기본이고, 새벽에 전기 쓸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배우들이 옷 갈아입고 쉴 수 있게끔 마을회관을 열어주었다. 물론 이런 편의 제공은 마을자치회를 거쳐서 결정한 사항이다. 제작사에서도 그 고마움을 최근 한 묶음의 영화초대권으로 갈음했다. 

 

▲ 어린 김수환이 즐겨 올라가서 생각했던 생각나무     ©

 

 

외지인들 속속 들어오는 2반 오작실 

 

이 다리를 건너면 산 속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이다. 예전에는 새마을 부역을 나와 닦았던 신작로였지만 이제는 검게 포장된 검천길! 길 따라 강따라 들어가면 ‘태화농원’이다. 온갖 과수가 심겨져 있고 그 밑에서는 닭들이 돌아다니면서 풀을 뜯어먹는다. 주인은 대전 사람이란다. 길다란 농장 끝나갈 즈음, 다리가 하나 또 나온다. 2반과 3반의 분기점이다. 그대로 직진하면 오작실이다. 

이 산촌 입구에 안내글자가 의외로 많다. 호산나노인복지센터, 소나무요양원, 궁천기도도량, 호암사.... 골짜기에 웬 50명이나 살으랴 싶었는데 집들이 뜨문뜨문 줄을 잇는다. 그런데 여기 집들 대부분이 새집이거나 번듯하다. 보통 시골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대전 같은 도회지에서 이사온 사람들이 많단다. 

대부분의 시골은 사람이 떠나고 빈집이 늘어나면서 스산해지는 추세인데, 오작실은 그 반대 같다. 동승해준 임용규 옹에 의하면, 예전에는 이곳에 밤나무가 많아서 밤나무재라 하였고, 언제부터인지 오작실로 불린다고 한다. 오작실 골짜기로 더 올라가면 임도(林道)이고, 그 임도는 3반인 배티마을 끝자락과도 만난다고 한다. 그 임도를 뒤로 한 채 태화농원까지 되짚어나온 다음, 그 자리에서 다리를 건너면 3반 배티마을이다. 

 

▲ 배티마을에서 작은음악회가 열리는 하얀 집     ©

 

 

산골음악회 3반 배티와 구곡장절 임도

 

동네한바퀴를 동행해준 임용규 옹은 배티의 두 봉우리를 가리키며 “저게 배 모양이라서 배티”라면서, “두 봉우리의 앞산에다가 닻을 꽂아서 배가 완성되는 것이다”고 들었다 한다. 이 산들은 동네 개울을 기준으로 왼편 지세이고, 개울 건너 오른쪽으로는 산 밑에 엄청난 돌이 하나 떨어져 있다. 그 면적이 50평 정도로 어마무시인데, 언젠가 새우젓 장사가 그 밑에 있다가 압사당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이 동네에 전해져온다. 

서대원 이장 사는 곳이 바로 이 배티마을이다. 여기도 신기하다. 이런 산골집은 상당수가 오두막 분위기일 거 같은데, 아니다. 별장처럼 보인다. 3반 한가운데쯤 멋진 농막들이 한데 몰려 있는데, 이런 세컨드하우스가 대여섯 가구이다. 좀더 올라가니 감각있는 하얀벽집이 시선을 잡아끈다. 김홍철 씨 집이다. 목공예를 하면서 1년에 한 번씩 작은음악회를 연다. 같은 동네 사는 색소폰연주자도 출연하고 다른 지역 예술가들도 초청하여 3반 위주의 음악회를 개최하는 것이다. 이 산골작은음악회가 어느새 3년차이다. 

이 골짜기 맨 끝은 비닐하우스(집)이다. 전준호 전 계룡부시장의 소유라는 귀띔이다. 그 부근에 사방댐이 하나 있다. 임도가 시작되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좌측으로 가면 2반 오작교와 만나고, 결국 영주사쪽으로 빠져나가는 임도라고 한다. 영화에 나오는 ‘저 산 너머’가 바로 그쪽이다. 그러나 기자는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어둑해지는 시간, 임도를 서행하며 내려오는데 하산길만 해도 한두 시간 족히 걸린 거 같다. 심심유곡에는 규모 있는 사방댐 공사처도 하나 나오고, 구비치는 구곡장정길 연속이다. 어찌어찌 해서 다 빠져나와 확인해 보니 ‘사정리’다. 검천리에서 지방도로인 수락로 버스노선으로 해서 나왔다면 대덕리 거쳐 사정리인데, 이렇게 엉뚱한 데로 돌출하여서 나와 본선으로 접선한 상황이다. 5~10분 거리인 길을 돌고꺾고돌아서 결국 동네한바퀴이다. 저 산 “넘어” 오는 숲속 한바퀴이다. 

 

 

 

 

 

 

벌곡 두메산골 이야기와 둘레길

 

벌곡은 24개 마을이다. 임용규 옹은 기자에게 음료와 과일을 내놓으면서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해전 가야 무주구천동이나 서천 대천 가는 시외버스 한두 대 오갔던 오지였다. 그 버스도 그가 제대한 후 생겼다고 술회한다.  논산이나 금산은 똑같이 50리길인데, 그리로 나가려면 걷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지게를 지고갈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검천리 인구는 3백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서울이나 대전 같은 대처로 빠져 나가면서 시골 인구가 급감하였다. 와중에도 요즘 검천리에는 타지 사람들이 들어와서 산다. 역설적으로 벌곡 검천리가 오지였기에 자연이 잘 보전되었고, 그래서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이 곳 검천리를 찾아오는 것이라고 서이장은 진단한다. 

서대원 이장도 귀촌한 케이스다. 외국인 회사를 다니다가 정년 퇴직후 선택한 곳이 검천리이다. 산을 워낙 좋아해서 이곳 산촌에 정착했는데, “마당의 풀을 뽑을 때 힐링이 참 많이 된다”고 한다. 수락계곡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산책로 따라 걸을 때도 쇄락한 기분을 만끽하게 된다고. 요즘 그에게 하나의 구상이 있다. 검천리가 영화촬영지로 뜨게 되면 오작교와 배티쪽 임도를 둘레길로 조성해보려는 계획이다. 그 말을 들었기에 기자는 어둑해지려는 시간, 숙조투림(宿鳥投林) 시작할 즈음, 초행길 임도를 나홀로 뚫고 들어가 본 것이다. 길은 외줄기인 거 같지만 결국은 또다른 길을 만난다, 저 산 너머에서. 

 

- 이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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