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1월 15일(2020년 2월 8일)은 우리나라 대표 명절 중 하나인 정월대보름이다. 어릴 적 매년 정월대보름 아침, 더위를 팔기 위해 전화를 걸어 “내 더위, 니 더위”하면서 호탕하게 웃었던 어르신들 목소리가 기억난다. 정월대보름에는 쌀, 조, 수수, 팥, 콩을 넣어 지은 오곡밥과 나물을 먹으면서 단단한 껍질을 가진 호두, 밤, 땅콩 등의 부럼을 깨물어 먹고 귀밝이술을 마시면서 한 해의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였다. 밤에는 뒷동산에 올라가 주민들이 모여 보름달맞이를 하면서 소원을 빌며 쥐불놀이를 하였다. 그날은 공식적으로 불장난이 허락되는 날이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활활 타는 불꽃 앞에서 깡통을 신나게 돌렸었다. 어릴 적 그 기억들은 추억이 되었고, 아이들에게도 남겨 주고 싶은 소중한 우리의 전통행사다.
이렇게 소중한 우리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행사가 기획되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 부터 정월대보름 행사가 취소되는 일이 많아졌고, 참가를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각종 전염성 바이러스 때문이다. 겨울철 웅크리고 있었던 식물, 동물들이 기지개를 펴듯 각종 바이러스들도 봄의 기운을 받아 그 힘이 강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각종 변종 바이러스들 앞에서 우리 인간은 무력하기만 하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더라도 바이러스의 변종 속도를 따라 갈 수 없어 예방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올해는 눈 내리는 것을 볼 수 없었던 겨울로 기억될 것 같다. 벌써부터 2020년 여름이 걱정스러운 것은 기우일까?
1990년대 말 미국 42대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은 E.coli O157를 겪으면서 “미래는 미생물과의 전쟁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미생물들은 변화된 환경에 아주 빠르게 적응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약 100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 급격한 변화로 몸서리를 치고 있다. 이는 지구의 자정 능력을 상회하는 변화로 회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다. 물 부족, 환경오염, 미세먼지 등의 위협이 바로 눈앞에까지 도달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에게 위기임에는 분명하지만, 모두가 그 심각성에는 둔감한 실정이다. 우리는 하루 빨리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행동을 하여야 할 것이다. 밥상에서의 실천 행동으로 제철, 지역농산물을 이용하고, 가능한 가공식품의 소비를 줄이고, 채소 중심의 식사를 하고, 쌀을 중심으로 한 식단을 구성해 보는 노력을 권한다. “정월대보름 다른 성을 가진 세 사람 이상이 함께 밥을 나눠 먹으면 그 해 대운(大運)한다”고 하니 함께 만들어 먹고 서로 복을 주고받으면 좋겠다.
미래세대가 맑은 하늘, 밝은 달을 보며 한 해 건강과 소원을 빌면서 맑고 밝은 한 해를 맞이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본다.
김인원 (밥상살림 식생활센터장)
정월대보름 오곡밥과 보름나물 레시피(4~5인분 기준)
오곡밥
[재료]
한살림 오곡밥모음 1kg(찹쌀백미, 서리태 콩, 붉은팥, 차조, 기장, 수수, 울타리 콩), 소금 1T
[방법]
- 찹쌀, 콩, 팥, 조, 수수는 씻어서 30분 이상 충분히 불린다.
- 팥은 한번 푸르르 삶아 물을 버리고, 새로 물을 넉넉히 받아 팥이 너무 무르지 않게 약 15분 정도 삶는다.(팥물은 버리지 않는다.)
- 냄비에 삼발이와 면포를 올린 다음, 불린 찹쌀과 콩, 팥, 조, 수수 등을 골고루 잘 섞어서 찐다.
- 찌면서 중간 중간 팥 삶은 물(소금 1T 넣어준 것)을 부어준다.
- 찹쌀이 투명색이 될 때까지 밥을 찐다.
보름나물
[재료]
취나물 170g, 호박고지 180g, 가지나물 170g, 고구마줄기 170g, 들깨가루 10T, 다진마늘 2T, 다진대파 5T, 현미유, 들기름, 간장 또는 액젓 15T, 다시마채수
[방법]
- 준비된 나물을 각각 하루 동안 충분히 불린다.
- 취나물, 고사리, 말린 고구마줄기는 냄비에 넣어 20분 정도 충분히 삶는다.
- 호박고지, 가지나물은 불린 상태로 준비한다.
- 각각 불린 나물을 간장 또는 액젓 2T를 넣어 무친다.
- 프라이팬에 현미유와 들기름을 두르고 다진마늘 1t, 다진대파 1T를 넣어 30초 정도 볶아 마늘향과 대파향을 낸다.
- 5에 삶은 나물을 넣고 1분 정도 볶다가 다시마채수와 들깨가루 2T을 넣고 뚜껑을 덮은 다음 약불로 졸인다.
- 육수가 거의 졸아들면 꺼내어 접시에 담는다.
- * 1T (1큰 술, 약 15g 또는 15mL), 1t (1작은 술, 약 5g 또는 5mL)
김은희 식생활 강사 (밥상살림 식생활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