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읍 황산4리 이야기]
할머니들 쌈짓돈 전달식 “멋진 동네 만들어줘~”
▲ 평일, 황산4리 보성아파트 단지내 경로당에서 “사랑해요” 하트 © 놀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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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읍 황산4리 마을 역사는 짧다. 27년 전 빈부지에 보성아파트가 건축되어 입주하면서 인구가 늘었다. 그래서 아파트와 그 주변 주택 50가구 정도를 묶어 황산4리로 분동되었다. 그러니 마을의 나이는 27세의 청년이다.
황산4리는 여느 농촌마을과는 다른 지역적 특성이 있다. 읍내이면서 약간은 외곽으로 아파트단지와 주변 상가 그리고 주택으로 구성된 마을이다. 교통은 비교적 좋다. 서해로 통하는 금강이 흐르는 강경 둔치를 배경으로 조망이 좋은 아파트단지다. 아파트 하면 고정적인 이미지는, 시골의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생활이 바쁘고 새로 구성된 마을주민들의 색깔도 각각이니 어찌 보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일반 주택가 주민과 아파트 주민은 공동체 의식에서 차이가 나는 편이다.
그러나 요즘 새로운 바람일 불어왔다. 그것은 주민들이 함께 꽃길조성사업을 한번 해 본 것과 마을자치한마당축제를 한 후의 바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논산시 자치분권과의 마을해설사 교육과정과 논산시농촌마을만들기 협의회의도 힘이 되어 주었다. 그동안 애써온 송승호 이장의 노고와 번뇌가 이제 마을주민들의 마음과 맞닿지 않았나 하는 생각 또한 든다. 때마침 마을교육공동체 동아리를 이끄는 젊은 엄마들도 한몫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 중심에는 항상 송승호 이장의 역할이 있었다. 그 바람은 예정되었던 바람처럼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야 돌아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2020년 1월 1일 송승호 이장의 눈물 바람을 보았다. 그 이야기를 풀어본다.
마을 할머니들의 함성! 10년의 인고가 공동체 불씨 피웠다
이 마을에는 마을회관이 없다. 아파트 단지 내 방 한 칸의 공간이 있을 뿐이다. 그 공간은 여자 어르신들만 활용해 왔다. 남자어르신들 공간이 없어 놀이터 옆에 간이쉼터를 마련했지만, 놀이터 옆이라 아이들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그런 차에 여자 어르신들 공간에도 아이들 바람이 불었다. 엄마들이 마을아이들과 공동체 활동으로 동아리를 꾸리면서 잠깐씩 공간을 내어주는 일이 생겼다.
어르신들이 불편하여 어쩌나? 내심 걱정되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을 겪으면서 새로운 발상을 하였던 모양이다. 쌈짓돈을 털어 십시일반 자금을 모아 100만 원을 마련하였다. 그 자금을 마을기금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노인회장은 “이장이 마을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려 하니 우리가 함께 동참 할 테니 이 자금이 불씨가 되었으면 하네. 그 동안 열심히 한 것 같이 앞으로도 열심히 마을 일을 해 주게나” 하며 그 쌈짓돈을 전달하였다. 마을주민들의 마음 문이 열리고 공동체의식이 싹을 틔우는 순간이었다. 이제 마을의 총무와 재무가 새로 임명되었고, 함께 논의하고 일할 동지가 생겼다며 기뻐했다.
▲ 쌈짓돈을 받은 송승호 이장이 감동 먹고서 쏜 치킨을 먹다가 한 컷 © 놀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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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호 이장은 처음 이장이 당선되면서 시간 날 때마다 황산대교를 걸으며 생각나는 일과 앞으로 할 일을 노트에 메모했다. 그것이 49가지였다. 그 동안 많은 어려운 일들로 좌절도 많이 느꼈고 ‘이장을 그만 맡아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3번의 야유회를 간 것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야유회도 마을자금이 없어서 사비를 털어 대형버스를 대여해야 했다. 그러다가 2018년 5월 시 지원도 있고 하여서 꽃길조성을 하였는데, 이렇게라도 동네 공동체 일이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아직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
10년차 접어들면서 이제야 하나 둘 밑줄이 그어진단다. 그때 당시 메모한 <살기좋은 황산4리를 만들겠다>는 자신의 목표와 공약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의욕이 다시 생겼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르신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쉴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숙원이 되었다며 그 목표를 향해 마을주민들과 한발 한발 묵묵히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10년이란 세월 속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작은 불씨가 이제 새로운 바람을 맞아 활활 타오르기를 기대한다.
- 김은(‘벌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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