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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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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뫼단상] ‘얇다’와 ‘춥다’
기사입력  2019/09/25 [18:09]   놀뫼신문

 

 

▲ 정경일 건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놀뫼신문

 

추석이 지나고 나니 날씨가 꽤 쌀쌀해졌습니다. 아침저녁으로는 겉에 입는 옷이 하나 더 필요하고, 잠을 잘 때에는 창문을 닫아야만 되더군요. 

이런 날씨의 변화를 보면서 많은 분들이 갑자기 추워졌다고 말하시더군요. 방송에서도 그런 표현을 쓰는 분들이 있는 걸 보면 꽤 많은 분들이 그러한 생각을 하시는가 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표현이 영 어색합니다. ‘춥다’라고 말하려면 적어도 영하의 날씨는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요즘 날씨면 그저 선선하다거나 살짝 썰렁하다거나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어는 자연을 받아들이는 중간세계

 

언어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일상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 언어를 통해 사물과 사건, 그리고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언어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다양한 언어적 표현은 한 개인이 느끼는 다양한 외부의 대상에 대한 그 사람의 인식 세계의 치밀함과 깊이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합니다. 

나아가 개인의 언어를 넘어서 한 민족에게 나타나는 언어적 다양성은 그것이 바로 그 사회가 지니는 문화의 특성이 되고 문화의 다양성과 깊이를 보여주는 척도가 됩니다. 사회와 민족의 문화적 양상이 하나 또는 몇몇의 폐쇄적인 모습으로만 드러날 때 그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못하고 숨 막히게 답답하고 획일적인 사회가 되고 마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일제 강점기 시절 강압과 통제의 시기에 잘 느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획일성을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요인의 언어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말은 매우 폭넓은 표현 방법을 가지고 있는 매우 좋은 언어입니다. 특히 형용사와 부사에서 그러한 특성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노란색을 나타내는 단어를 보시면, 노랗다, 누렇다, 노르스름하다, 누리끼리하다, 노릿노릿하다....등 비슷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색상들을 보여줍니다. 붉은색, 파란색, 검정색 등도 한번씩 생각해 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렇게 섬세하게 사물의 특성을 구별해 내는 우리말이 점차 단일화, 통합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 아쉽기만 합니다. 예를 들어 ‘얇다’와 ‘가늘다’, ‘굵다’와 ‘두껍다’가 어느새 하나로 모아져서 이제는 ‘팔뚝이 얇은 사람과 두꺼운 사람’만 남아 있습니다. 나이가 있으신 어른들은 이들의 차이를 어느 정도 구별하실 텐데 젊은이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세월이 가면 나이는 ‘드는’ 것이고 우리는 나이를 ‘먹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느새 ‘나이가 먹으니까’ 기억력이 나빠진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지네요. 나이가 뭘 먹는다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영상 15도의 기온인데 ‘춥다’고 하면 정작 영하 10도쯤 되면 뭐라 할지 걱정도 되고요. 기온의 변화에 따라 ‘서늘하다’와 ‘선선하다’, ‘쌀쌀하다’, ‘춥다’를 섬세하게 구분하던 선인들의 감성을 왜 요즘에는 잊어버렸을까? 이러다가 날씨와 온도에 대한 표현은 ‘덥다’와 ‘춥다’만 남는 것은 아닐지요. 

 

최근 단어의 특성이 점차 사라지는 아쉬움

 

“그까짓 단어 몇 개 없어지는 것이 뭐 그리 큰일이라고 이렇게 호들갑을 떠느냐?”고 할지 모릅니다. 맞습니다. 단어 몇 개 안 쓰인다고 큰일 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표현해야 할 욕구들은 큰 변화가 없는데 정작 그것을 표현할 어휘가 우리말에 없으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요? 그 자리는 무엇으로 메꾸게 될까요? 

홈쇼핑을 보시면 그 답이 나옵니다. “이번 A/W 시즌에는 시크한 더블 그라데이션 미니멀리즘 레이어드룩 러프코트나 모노톤의 배기팬츠를 픽하셔서 a.k.a. 패피다움을 드러내 보세요.” 이런 국적불명의 표현들이 어느새 일상이 되어 버리는 것이 너무 답답하고 가슴 아픕니다. 

일본어의 잔재는 눈에 불을 켜고 없애자고 하면서 왜 이런 표현에 대해서는 관대한지?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또 왜 그리 무심한지? 공연히 심란해지는 한낮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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