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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샤인스튜디오 '미스터 션샤인' 드라마속 역사이야기展
기사입력  2019/08/21 [17:15]   놀뫼신문
▲     © 놀뫼신문

 

선샤인랜드에서 『‘미스터 션샤인’ 드라마 속 역사이야기』기획전이 열린다. 지난 광복절에 문을 열었으며 올해 말 12월 31일까지다. ‘선샤인스튜디오’ 내에 있는 “한성전기”가 그 현장이다. 

선샤인스튜디오는 지난 6월 7일 국내 최고의 역사만화가 박시백 화백을 초청하여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특강을 하였다. 그 특강 장소가 바로 선샤인스튜디오 한성전기였다. 이번 기획전 역시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열리며, 선샤인스튜디오가 주관한 이 전시회는 충청남도교육청, 민족문제연구소가 후원한다. 

‘드라마 속 역사이야기전(展)’은  『미·션』의 주요 장면에 대하여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 역사의 암흑기랄 수도 있었던 개화기의 뼈아픈 역사에 서치라이트를 비춤으로써 당시의 암울함과 희망을 동시에 낚아올리는 문답의 자리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 던져진 질문은 모두 11가지다. 

  1. 검은머리 외국인, ‘유진 초이’는 실존 인물일까?
  2. 무신회의 모델이 된 ‘흑룡회’란?
  3. 글로리호텔의 모델인 ‘손탁호텔’의 주인은?
  4. 당시에 과연 모두가 아무개고, 의병이었을까?
  5. 고종의 예치금 증서는 실제 존재했을까?
  6. 당시 의병들은 어떤 총을 사용했을까?
  7. 충격과도 같았을 최초의 가로등 점등식의 풍경은?
  8. 김희성이 촬영했던 을사오적, 누구였을까?
  9. 여학생을 위해 설립된 최초의 학교는?
  10. 한국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 3·1운동 탄압의 주역?
  11. 마지막 감동, 의병 사진이야기

그 답이 하나하나 다 궁금하지만, 『미·션』의 실질적 주인공인 민병(民兵), 의병(義兵)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답한다. 

 

당시에 과연 모두가 아무개고, 모두가 의병이었을까?

 

▲ 한 세기 전 의병들 모습 / 독립기념관     © 놀뫼신문


처음 의병이 일어난 것은 1894년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략해 무력으로 점령한 갑오변란 때였습니다.

1895년에는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는데, 일본의 무자비한 만행에 격분한 양반 유생들이 중심이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전개된 을사의병,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정미7조약 체결 및 군대해산을 계기로 정미의병까지 의병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정미의병 당시에는 해산당한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하면서 의병들의 전투력과 조직력이 크게 향상되었고,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양반 유생들이 의병장이 되어 농민들을 이끌고 의병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러다 점차 평민과 농민들이 대거 의병전쟁에 참여하면서 농민들 중 일부가 의병전쟁의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의병전쟁이 전국화한 정미의병 이후에는 해산 군인과 평민들이 주도했습니다.

이름 없는 사람들, 즉 평민, 민중이 이끄는 의병전쟁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들은 일본군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일본군에 무참하게 진압되거나 학살당했지만, ‘아무개들’의 의병전쟁은 이후 간도와 연해주 등지에서 항일독립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의병들은 어떤 총을 사용했을까?

 

▲ 의병들이 사용한 무기 / 국가보훈처     © 놀뫼신문

 

데일리 메일의 종군기자였던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는 의병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여섯 사람이 다섯 종류의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것이나 제대로 쓸 만한 총이 없었다. 한 사람은 아주 구식의 낡은 한국 화승총을 들고 있었는데 팔에는 가늘고 긴 줄에다 도화선으로 쓰려고 불을 붙여 들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총이 대부분의 의병이 쓰고 있는 무기였다. 두 번째 사람은 구식 한국군의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구식이었다. 또 한 사람은 아주 작은 스포츠용 총을 가지고 있었다. 그 모든 총은 어느 것이나 녹이 쓸어 있고 부식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보듯이, 당시 의병들의 무기는 아주 볼품없었습니다. 주로 사용한 화승총(천보총)은 유효 사거리가 불과 20m 내외였고 몇 분에 겨우 1발을 쏠 수 있었습니다. 도화선에 불을 붙여 방아쇠를 당기면 화약에 불씨가 붙어 탄환이 발사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비가 오거나 습기가 많은 날에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일본군은 38식 소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소총은 유효 사거리가 360m이고 분당 8~10발씩 사격할 수 있었으니 의병들이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의병들은 유격전과 기습전, 또는 복병전으로 싸워야했습니다.

‘미스터션샤인’에서 고애신이 처음 사용한 총은 ‘윈체스터 M1894’로 가볍고 휴대에 용이하여 주로 사냥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녀가 나중에 사용한 총은 ‘모신나강 PU’[1930년대 생산됨]로 조준경이 달려 있어 저격용으로 사용되던 것입니다.

 

마지막 감동, 의병 사진이야기

 

▲     © 놀뫼신문

 

1907년 의병들이 일본군과 접전을 벌이던 무렵, 데일리 메일의 종군기자였던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가 경기도 양근(현 양평)에서 만난 의병들을 찍은 사진입니다. 그의 저서인 『대한제국의 비극(The Tragedy of Korea)』(1908)에 실려 있습니다. 맥켄지는 의병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5~6명의 의병들이 내 앞에 서서 경례를 했다. 18세부터 26세까지의 청년들이었다. 한 사람은 정규 한국군의 군복을 입고 있었고, 한 사람은 작업복을, 이외 2~3명은 보잘 것 없는 낡은 한복 차림이었다. 허리에는 손으로 짠 광목으로 만든 탄대를 차고 있었으나 실탄은 반 밖에 없었다. 여섯 사람이 다섯 종류의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것이나 제대로 쓸 만한 총이 없었다.”

이 사진 속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죽어야 할지도 모르죠.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소. 자유로운 한 인간으로 죽는 편이 일본의 노예로서 생명을 부지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우리는 안타깝게도 이 사진 속 주인공의 이름조차 알지 못합니다. 이제라도 일제의 총칼 앞에 의연히 산화한 수많은 이름 없는 아무개들, 의병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이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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