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로고
광고
논산시계룡시백제권 뉴스사회종합교육·문화농업·단체오피니언·사람들기획·특집정치종교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전체기사보기
편집  2019.05.24 [11:07]
> 정경일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놀뫼단상] 미륵사탑과 미내다리
정경일 건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기사입력  2019/04/16 [18:21]   놀뫼신문

 

최근 익산에 있는 미륵사지 서탑의 복원공사가 마무리되었다. 화려한 백제역사를 증명해 주듯 웅장한 미륵사지탑은 오랜 역사를 견디면서 동쪽에 있던 탑은 무너져 내렸고 서쪽에 남아 있던 탑도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일제강점기 시절 탑의 일부를 콘크리트로 발라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이번에 18년 동안의 길고 긴 공사를 통해 콘크리트를 제거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본래 모습을 찾지 못한 아쉬움

 

하지만 아쉬움은 많이 남는다. 복원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백제시대의 그 화려하고 기백이 넘쳤을 모습을 찾아낸 것이 아니고 다만 콘크리트로 발라져 견뎌온 부분까지만 해체하고 다시 쌓았기 때문이다. 절반의 복원인 셈이다. 물론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짐작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이미 우리는 동쪽에 있는 동탑의 복원과정에서 일었던 여러 시비들을 기억하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동탑은 기단부분만 발견되었을 뿐 그 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주는 자료가 없다. 즉 복원을 위해서는 철저한 고증이 따라야 하는데 이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되자 당시 복원을 강행한 정부는 서탑의 모습을 참고하여 그와 같은 모습으로 복원을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동쪽과 서탑이 동일한 모양이었는지에 대한 논란과 아울러 이탑들이 몇층이었는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시는 것처럼 본디 사찰의 탑은 홀수로 만들어진다. 그러면 현재 서탑이 6층만 남아있으므로 본디의 모습은 7층이거나 9층 또는 11층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만한 자료가 분명하지 않았기에 처음에는 7층으로 추정하고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다행히 기단부의 규모로 미루어 9층일 것이라는 검토결과가 나와 현재와 같이 세워진 것이다. 

이외에도 동탑은 2년여 만에 복원을 마치느라 돌을 기계로 깎아 세우다 보니 지나치게 매끄럽고 깔끔하여 옛 멋을 살린 복원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다행히 25여년이 지난 지금은 드문드문 이끼도 끼고 하여 조금 나아지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곱게 단장한 새색시 같아 쉽사리 정이 가지는 않는다. 

서탑은 동탑의 복원과정에서 드러난 이런 아쉬움을 없애기 위하여 최대한 옛것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몇 층짜리 탑이었는가에 대한 숙제도 그대로 남겨 두고 가능한 돌들을 일일이 정으로 쪼아 만들어 옛스러운 향기를 머금게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이 복원공사가 마무리되자 작은 논란이 있었다. 감사원에서 복원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감사원의 지적은 공사가 일관성 없이 진행돼 탑의 내부가 원형과 달라지는 부실복원이었다고 지적하였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복원은 충분히 체계적으로 진행되었으며 20여년에 걸친 공사를 어떻게 일관된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이런 논란을 보면서 문화재의 복원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다시 실감하게 된다.  

 

강물과 나란히 서 있는 미내다리

 

미륵사탑의 복원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논란에서 보듯 오래된 문화재의 복원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것이 있던 본래의 모습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하고 또 당시에 비해 주변의 여러 여건들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논산을 대표하는 해체·복원 문화재로는 미내다리가 으뜸이다. 논산에 살다가 죽어 염라대왕에게 올라가면 이곳을 보고 왔는가를 묻는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로 논산을 대표하는 다리이다. 충청도에서 호남으로 넘어가는 길에 반드시 건너야하는 다리였으니 아마 춘향을 만나러 가던 이도령도 건넜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허물어져 가던 다리를 다시 고쳐 세운 미내다리를 찾아가 보면 어딘가 어색하다. 본래 다리는 강을 가로질러 놓여 있어야 한다. 그때 강과 다리는 한 몸이 되어 각각 자신의 존재이유를 세상에 드러내게 된다. 그런데 미내다리는 강을 가로지르지 못하고 강과 평행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 다리는 그저 강을 구경하고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모양은 다리이나 이제 다리가 아닌 셈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되어버린 이유를 전 논산문화원장인 류제협선생은 원래 강경천의 물줄기가 여러가닥으로 흘러 다리밑으로도 물이 흘렀을 것이지만 그 후 강경천을 직강화하면서 지금과 같은 모양으로 변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 전후 사정이 짐작은 된다. 그러나 탑은 사찰에 있어야 하고 다리는 물을 건너야 한다. 그렇지 않은 문화재는 그 의미가 대폭 사라진다. 그렇더라도 이제 와서 미내다리를 지금의 하천을 가로지르는 방향으로 옮길 수는 없다. 그것은 원래부터 지금의 자리에서 수백년을 지켜 온 다리를 오히려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이라도 물줄기 하나를 떼어 내어 미내다리의 밑으로 흐르게 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하여 다리의 숨결을 되살려주는 것이 참된 문화재의 복원이 아닐까 하는 소박한 생각을 해 본다. 

 

정경일 건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 놀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미술이야기:화가와 친구들]2.
광고
광고
광고
가장 많이 읽은 기사
계룡 노성간 645지방도, 터널로 확 뚫는다 / 놀뫼신문
5천석 규모 실내체육관, 체육센터 건너편 건립추진 / 놀뫼신문
김종민, 황명선 가상 양자 대결 시 자유한국당 이인제, 박우석 모두에게 앞서 / 놀뫼신문
광석 광물전시관 靑藜館 최병남 관장 "청려장으로 사랑을 전하다 " / 놀뫼신문
논산시 꿈드림 청소년, 2019년 제1회 검정고시 37명 합격 / 놀뫼신문
연산면 환난상휼Day 12호 기부자 송진걸 쌀 500㎏ 기탁 / 놀뫼신문
[놀뫼알릴레오7] 은진미륵은 왜 대례관(大禮冠)을 쓰고 있을까? / 놀뫼신문
[인생노트] 마전3리 여성노인회장 윤석을님 "내 인생의 황혼 - 인고(忍苦) 뒤에 피어나는 고목" / 놀뫼신문
논산시 취암동, 희망의 우체통 설치 / 놀뫼신문
논산열린도서관 5월 24일 개관 / 놀뫼신문
로고
개인보호정책회사소개광고/제휴 안내청소년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충남 논산시 시민로 402 (취암동)| Tel - 041) 733-4800~1 | Fax - 041) 734-5567
상호: 놀뫼신문 | 등록번호: 충남다01238 | 등록연월: 2006.06.30 | 발행인: 전영주 | 편집인: 전영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전영주
Copyright ⓒ 2007 놀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m480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