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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뫼단상] 경리단길과 사계로
기사입력  2019/02/27 [11:27]   놀뫼신문

 

최근 들어 다소 주춤해지는 현상을 보이곤 있지만 전국적으로 ‘~리단길’이라는 이름의 골목길이 널리 확산되고 있습니다. 본디 이 이름은 서울 용산에 있는 경리단길이라는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태원과 해방촌이 가까이에 있는 이곳에는 현재 국군의 재정업무를 담당하는 국군재정관리단이 있는데 2012년 이전에는 육군 중앙경리단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던 곳입니다. 이런 연유로 그곳은 오랫동안 경리단길이라 불렸는데, 인근에 있던 미군부대의 영향으로 이국적인 취향의 음식점과 술집, 공예상점 등이 늘어서면서 3,4년전부터 새로운 트렌드를 찾는 젊은이들 사이에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비교적 한적한 거리이던 이곳이 첨단 유행과 멋의 상징이 되면서 이 이름을 본딴 거리들이 여기저기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는 망리단길, 송파구에는 송리단길, 전주에는 객사를 중심으로 객리단길, 부산 해운대에는 해리단길, 광주시 동명동에는 동리단길 등등 유사한 이름을 딴 골목들이 전국적으로 20여개가 넘게 등장하였습니다. 

 

길 이름의 전성시대

 

이러한 현상을 접하면서 얼핏 10여년전에 불었던 올레길의 열풍이 생각났습니다. 산과 바다,  초원과 오름, 그리고 그 속에 뛰어노는 조랑말들을 바라보며 숲속과 바닷가를 걷는 제주의 올레길은 길이 만들어지면서부터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제주를 찾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어버렸습니다. 올레길은 때마침 불어닥친 힐링(healing)의 바람과 함께 회색빛 콘크리트로 뒤덮힌 도심을 벗어나 무심한 듯 가벼이 발걸음을 옮기며 세속의 지든 때를 내려놓고 삶의 이유와 여유를 되찾으려는 도시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공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올레길이 대성공을 거두자 이를 본딴 수많은 길들이 전국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 고장 논산만 하더라도 대표적으로 부적면 충곡리와 연산면 임리 일원을 돌아나가는 솔바람길을 만들어 탑정호의 수려한 자연과 계백의 정신 그리고 전통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이웃한 계룡시는 사계 김장생의 고택 인근을 개발하여 사계솔바람길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강릉에는 태백산줄기의 솔숲과 바닷가를 함께 즐기는 솔향길이, 지리산 자락에는 지리산의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 만들어졌고, 울산에는 영남알프스를 휘돌아나가는 하늘억새길이, 부산에는 해양도시의 특성을 드러내듯 갈매길, 해파랑길, 십오굽이달맞이길 등이 만들어졌습니다. 

경리단길과 올레길의 이름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두 가지 현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는 익숙함이고 하나는 새로움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익숙함은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늘 먹던 음식과 입던 옷, 가던 길과 만나는 사람들... 무언가 변화하지 않고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고 그래서 내 삶에 깊이 들어와 있는 것에 살짝 편승하기만 하면 커다란 무리가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 새로운 것을 만들게 되면 그것에 길들여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쉽사리 도전을 하려하지 않지요 

 

길 이름에는 지역 냄새가 나야 

 

경리단길을 본 딴 많은 이름들은 이름을 짓기는 쉽습니다. 그래서 언론이나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쉽사리 따라하고 또 그것이 그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런 이름들에는 정이 가지 않습니다. 지명은 지역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자산을 드러내어 지역민에게는 자부심을 타지인에게는 그곳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장치가 되어야 하는데, 이렇듯 대놓고 다른 곳의 이름을 흉내내는 길 이름에서는 아무런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올레길은 새롭습니다. 이제는 모든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올레라는 말은 큰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작은 골목을 일컫는 제주사투리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지역에서 올레길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스스로 문화적 역량이 전혀 없음을 온 세상에 까발리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각 지역마다 새로운 이름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새로운 이름을 지으면 외지인이 얼른 알아듣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그 뜻을 정하고 서로 소통하게 되면, 그래서 그 이름이 가진 의미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되면 그 효과는 남의 이름을 흉내내고 물에 물탄 듯 지은 이름보다 훨씬 오래 갑니다. 

이런 관점에서 슬쩍 논산의 길 이름 하나를 생각해 봅니다. 어디나 다 있는 ‘~대로’보다 우리 지역의 문화적 자산을 잘 보여주는 사계로, 우암로, 명재로 등의 이름이 논산에 있으면 논산 유교문화를 알리는 차원에서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정경일 건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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