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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뫼단상] ‘말모이’와 민족정신
기사입력  2019/01/23 [16:42]   놀뫼신문

정경일 건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3,000여개의 언어 가운데 고유의 문자를 가진 언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가운데에서 우리말을 표기하는 한글은 만든 이와 만든 시기가 정확히 알려진 세계 유일의 문자입니다.

그런데 한글을 적는 방법은 세종이 처음 만들었던 때와 지금이 매우 다릅니다. 세월이 오래 흐르면서 한글을 적는 법에 대한 구체적인 원칙이 세워지지 않았고 또 조선시대에는 그에 대한 관심도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마다 한글을 적는 방법이 중구난방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이에 따라 같은 문자를 쓰면서도 서로 다른 내용으로 이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민족의 언어는 민족의 정신

 

구한말 우리 민족의 운명이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입김 아래 풍전등화와 같던 시절,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족의 정신을 올바로 세워야 하고 그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우리의 언어를 되찾아야 하겠다는 선각자들이 함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백성은 나라의 몸이고 말은 나라의 얼”이라고 강조해 온 주시경 선생과 그의 제자들이 중심이 된 이분들은, 우리말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계몽하는 우리말 사랑운동을 통해 민족의 자주와 독립의 기운을 일으키고자 하였습니다. 이분들의 마음은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라는 이름으로 함께 모이기 시작했고, 이곳은 현재에도 한글학회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말과 글을 적으면서 하나의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옛날 원칙이 없이 서로 생각나던 대로 적던 맞춤법을 하나로 통일시킨 곳이 바로 조선어학회입니다. 

이 학회에서는 1926년 11월에 처음으로 세종이 한글을 만든 것을 기념하여 ‘가갸날’을 정하였습니다. 이 가갸날은 후에 한글날로 이름이 바뀌게 됩니다. 

또한 이곳에서는『한글』이라는 이름의 잡지를 발간하여 우리말의 연구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학회에서는 맞춤법통일안을 만들고, 표준말을 정리하였고, 외래어표기법 통일안을 제정하는 등 우리말과 글의 원칙을 정하는 데 앞장서서 노력해 왔습니다. 

일제의 탄압이 극심했던 1930년대에 이분들 노력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 한글의 모습이 어떻게 되어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이분들의 노력에 다시 한번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말모이는 가장 큰 열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지 20여 년이 흐른 1929년, 조선어학회에서는 우리말 모은 사전을 편찬하기로 하고 이듬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1942년, 10여년의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우리말 사전인 「말모이」의 원고가 완성되고 조판 작업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일제는 한글을 연구하는 이 모임의 활동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때 함경도의 여학생이 기차 안에서 태극기를 그리고 우리나라 국기(國旗)라고 말하다가 일제의 경찰에 발각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일제는 이 여학생의 선생이 조선어학회의 회원인 것을 빌미삼아 학회원을 검거하여 재판에 넘기게 됩니다.

이 사건이 유명한 ‘조선어학회사건’인데 이 일로 말모이의 편찬 작업은 중단되고 그 원고마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맙니다. 

그 후 이 원고는 광복이 된 후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되어 1947년 드디어 『조선말큰사전』이라는 이름의 사전이 완성됩니다. 특히 이 사전은, 당시에는 개념조차 정리되어 있지 않던 표준어와 방언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만들어진 최초의 사전이라는 점에서도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 “말모이”라고 하는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영화는 말모이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회원들의 모습을 시종일관 감동과 웃음, 분노와 재미를 섞어가면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도대체 왜 이분들은 이렇게 목숨을 내어 놓고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는가? 일제는 왜 순수한 학문적인 활동마저 저지하려고 했는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왜 우리말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가? 조선어학회를 만들고 지켜 온 분들이 21세기 한국의 언어 현실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 등등 많은 질문들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우리말과 우리 문화에 관심이 많으신 독자 여러분께 꼭 한번 관람하시기를 권해 드리며, 자칫 진부하고 딱딱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영화적인 재해석을 통해 재미와 감동을 전해 준 영화인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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