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영 스피치지도사/심리상담사
소설가 한창훈의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의 한 구절에 ‘사람은 자신이 가장 오랫동안 바라본 것을 닮는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면서 작가는 바다를 닮기 소망한다. 삶의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바다로 나가 소주 한 병에 풍경을 안주 삼아 견뎌내며 위안을 받은 것 같다.
12월의 끝자락에 서서, 필자는 과연 2018년 한 해 동안 무엇을 가장 오랫동안 바라보았는지 생각해보니 필자 또한 자연의 사물인 나무와 숲이었다. 다람쥐의 양식인 도토리나무라 칭하는 상수리나무 근처에는 다람쥐와 청설모가 항상 놀고 있다. 귀촌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광경은 절대 못 봤을 것이다.
자연이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다는 말을 하면서도 실제 사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거나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 역시 귀촌을 하면서의 가장 큰 장점이자 호사이다. 지인이 직접 따서 말려 선물한 국화잎차를 한잔 들고 나무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고요함이라는 선물이 또다시 필자 앞에 와 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행위가 따르는 요가에서의 집중과도 차이가 있다. 무행위로 멍하게 있는 동안 잡다한 것들로 채워져 있던 머릿속은 하나둘 비워진다.
예전엔 비워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스케줄도 빡빡하게 채우고, 만나야 할 사람들을 줄 세우듯 세워놓고 만나곤 했다. 휴일에도 편히 쉰 적이 없었다. 다음날 해야 할 일을 앞당겨 생각하고 일을 만들기 일쑤였다. 사서 고생을 자처한 셈이다.
여유 없이 달리는 일상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평생 깨닫지 못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알게 된다면 정말 안타깝고 서글플 것이다.
멍 때리기를 하다 바싹 마른 상수리나무를 올려다본다. 곧 다가올 혹한을 대비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만 남긴 채 잎도 다 떨구었지만, 찬바람 앞에서도 당당히 서있다. 스스로 덜어내고 비워내야 기나긴 겨울을 잘 보내고 새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수리나무는 필자에게 염려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년에도 변함없이 다람쥐에게 양식을 줄 것이고, 필자에게도 도토리묵 간식을 해 먹을 수 있도록 도토리를 많이 생산할 것이니 다 같이 겨울을 잘 견디자고 말이다.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더없이 행복하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서 ‘자신이 가장 오랫동안 바라본 것을 닮는다’는 작가의 말처럼 조건 없이 베푸는 나무와 숲, 자연을 지속적으로 바라본 필자의 바람은 다가올 해에는 조건 없이 베푸는 삶이 되어 그 속에서 행복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 바라봄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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