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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 다리와 옛 나루터 이야기
[2018지역언론지원사업: 충남의 강과 천] 금강이야기(2)
기사입력  2018/11/13 [14:51]   놀뫼신문

[2018지역언론지원사업: 충남의 강과 천]  금강이야기(2)

백마강 다리와 옛 나루터 이야기

 

지난 호에는 금강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번호는 좀더 구체적으로, 공주보에서부터 이어지는 백마강의 다리들을 상류~하류 순으로 하나씩 구경해 본다. 그 다리 밑에는, 다리와 다리 사이에는 금강을 끼고 사는 사람들의 애환이 켜켜 쌓여 있는 나루터, 포구 들이 도강을 기다리는 발길로 인하여 시끌벅적했다. 금강 백마강 이야기들을, 지난호에 이어 부여토박이 윤기순 시인의 기억으로 건져내본다.


 

가끔 친정 창고에 주인을 기다리다 지친 자전거 한 대를 꺼내 페달을 밟아 부여읍 군수리 동네의 둑방을 내려가 둑방과 백마강의 경계를 그린 자전거 도로를 달린다. 벤치에 앉아 강물의 흐름을 보노라면, 부여가 천혜의 조건을 참 잘 갖춘 곳이기에 백제는 사비로 천도하였구나 하는 사실을 절감한다. 백제의 역사는 금강의 흐름과 함께 했고 사비성과 웅진성의 함락 또한 이 금강 하구의 포구를 통해 당의 침입으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백제의 부흥을 위해 노력한 무수한 백제 후손들이 있었기에 그 저력으로 지금의 부여(扶餘)가 존재하는 것이다.

 

동자개 매운탕집 왕지나루와 왕진교

 

공주의 곰나루에서 금강을 따라 부여로 진입하는 고개를 지나며 40번국도인 큰 도로를 오르기 전 좌측으로 보리사라는 절이 나온다. 거기를 지나쳐 우측 동네를 가다 보면, 부여 상류 저석3리에 ‘왕지나루’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왕지나루 옆 산 밑으로 조그마한 서원인 ‘청강서원’이 있으며 둑 너머에 왕지 나루가 있다. 내가 중학교 시절에만 해도 ‘왕진나루’라고 불리던 곳이다. 아버지께서 들려주던 말씀으로는, 1940년대까지만 해도 장이 컸던 지금의 청남면과 부여를 이어주는 나루가 왕지나루였으며, 강경포구에서 오르내리던 뱃길이기도 하였다.

1990년대까지도 백마강에서 잡은 장어나 동자개(일명 쏘가리, 빠가사리), 메기 등으로 매운탕을 끓여주던 유명한 민물매운탕집이 몇 곳 있었다. 이 ‘왕지나루’라는 곳은 저석리 강 너머 청남면의 ‘왕진’이라는 지명에서 ‘왕지’로 변천한 것이라 들었다. 백제시대인 약 1300여 년 전 왕이 다녀간 곳이라 해서 지명이 ‘왕진’이라 불려진 곳이기도 하다. 왕지 나루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작은 고기 배들이 있었던 곳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 1997년 3월에 부여 왕진교가 착공되면서 1998년 6월 10일 기공식을 하였다. 2003년 9월에 길이 790m, 너비 12m의 부여읍 저석리와 청양군 청남면 동강리를 연결하는 왕진교가 준공되었다. 왕진나루는 2011년 국토해양부가 ‘금강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왕진나루를 복원하고 곰나루, 구드래, 강경포구 등과 함께 과거 물류의 집산지로서의 역할을 한 시대의 유물로 보전하게 되었다.

 

 

 

백제보와 백마강교

 

그 길을 따라 저석리와 신성리를 지나 부여로 진입하는 정동리 길 우측으로 2009년에 백제보가 착공되어 2012년 6월에 준공을 하였다. ‘금강살리기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된 백제보는 처음 ‘부여보’라는 명칭이었지만, 청양군의 청남면 인양리와 부여군 부여읍 자왕리에 걸쳐 있어 특정지역 명칭만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청양군이 문제제기하였다. 협의 끝에 ‘백제보’라고 명칭이 결정되었다. 금강의 하구둑에서 약 55km 상류에 위치하고 있는 보의 유역면적은 7976㎢로 금강 총 유역면적의 약 80%에 해당한다.

보는 말을 타고 백마강을 바라보는 계백장군을 형상화하여 건설하였는데, 계백의 갑옷과 말안장을 형상화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1998년 4월 21일 백마강교가 부여읍 용정리와 규암면 호암리를 연결하는 개통식을 갖게 되면서 백제역사재현단지와 연결이 되었고 관광객들의 원활한 교통로가 되었다.

 

구드래 나루와 백강나루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 자전거 도로와 강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부소산과 백마강으로 이어진 강의 좌측은 부여군 부여읍으로 부소산과 당나라 소정방의 전설이 있는 조룡대, 구드래 나루터로 이어진다. 지금도 많은 관광객을 실어 나르며 부소산과 수북정을 오가기도 하고, 많은 배들이 정박을 하여 나루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곳이다.

1985년도에 조성된 구드래 공원에는 지역 출신 유명한 조각가의 작품 30점과 1999년도 국제현대조각 심포지움에 참가한 국내·외 유명 조각가의 작품 29점 등 총 60점 가량 조각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공원을 중심으로 하천을 정비한 백마강의 수변 공간은 부여군의 각종 행사와 부여군민의 휴식처이자 전국민의 관광단지로 공원에는 '백마강 달밤’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구드래는 백제시대 왕을 부를 때 어라하(於羅瑕)라고 칭하였는데 , '구ㄷ으래' 의 '구(大)'가 왕을 칭하던 어라하에 접두하고 두말사이에 지격촉음 'ㄷ'이 들어가 '구ㄷ어라하' 가 되고 다시 줄어 '구ㄷ으래(구드래)'로 변천하였다. 또한 '구드래'는 '大王'의 의미로 720년 편찬한 일본서기에 백제를 '구다라'로 부른 대목도 大王國이란 뜻으로 높여 불렀다.

강의 우측으로 백마강교 북쪽으로 호암리라는 작은 마을이 위치해 있으며, 다리 아래 남쪽 우측으로 규암면 신리와 진변리로 백강나루가 있었으며, 이어 백제대교로 이어진다. 진변리에는 청주에서 떠내려 왔다는 전설이 있는 부산釜山이라는 산이 있다. 또, 1719년에 부여지역 유림들의 공론에 의해 왕으로부터 사액하여 창건된 부산서원浮山書院이 있다.

 

규암다리 백제교의 역사

 

이어 부여군의 백마강을 가로지르는 백제교는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와 규암면을 잇는 다리로 1920년에 최초의 기공식을 갖고 터를 다지고 측량을 해서 1921년 7월 백제교가 첫 번째로 가설되었다. 그러나 1923년 기상청 기록에 의하면, 대홍수에 의해 떠내려갔다고 한다. 선친의 말씀은 한강다리를 연상시킨다. 아버지께서 태어나기도 전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지며 공주에 철교를 놓고 그 해체된 공주산성 앞의 금강목교가 부여로 옮겨져 다리가 되었다고 한다. 6·25 전쟁을 겪은 후 1947년 미군의 상륙작전용으로 쓰인 철선교가 20여년 철배다리로서의 역할을 했다며, 북한군이 다리를 건너지 못하게 하기 위해 다리에 총을 쏘아 가라앉혀  일시적으로 다리를 끊었다가 6·25 사변이 끝나고 3년 정도 뒤 복원을 시켰다고 들려주신다.

1948년 4월에는 백마호라는 유람선이 건조되었으며, 구드래 선착장은 1960년대 수학여행단의 이동수단으로도 사용이 되었다. 1965년 4월에 백제교가 착공되며, 꿈의 다리라고 불릴 정도로 당시 군민들이 기다리던 길이 812.72m 너비, 12.5m의 백제대교가 1968년 10월에 완공되어 11월 5일에 준공식을 하였다.

1994년 12월 백제대교는 4차선으로 착공이 되어 1997년 9월 12일 준공되었다. 이는 기존의 2차선 백제대교 옆에 830m의 다리가 새롭게 놓여 지금까지도 교통의 중심을 지키며 부여군의 동과 서를 잇고 있다.

[맞바위와 나루터] 백마강을 따라 장암면 정암리 부근에는 맞바위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으며 어릴 적 지금의 성말로를 지나 당시 군수2리(신기리) 길로 내려가 백마강가에 닿으면 장암면 맞바위라는, 장암면 정암리 길과 연결되는 나루가 있어 배를 타고 정암리 친척 집에 갔다. 정암리 마을 뒤 산속에는 호랑이가 살았다는 바위도 있었다. 산자락 올라 산 능선에서 아그배 따먹고 놀다 배 타고 부여읍 군수리로 돌아오곤 했었다.

 

 

세도의 나루터와 황산대교, 웅포대교

 

장암면 북고리와 남산리, 상황리, 하황리를 지나 세도면에 이르면 1960년대부터 1987년 초까지 세도와 강경을 잇는 세도나루가 있었다. 차마를 도강하는 선박과 황산나루의 사람을 운반하던 인도선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1987년 4월 부여군 세도면 가회리와 강경읍을 연결하는 길이 1050m, 너비 12m의 장대교량인 ‘황산대교’가 가설되면서 ‘세도나루’와 ‘황산나루’는 제 역할을 다하게 되었다.

세도면에서 더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구경정이 있는 세도면 간대리에 이르러 용두리와 세도의 청포리를 잇는 다근이 나루가 있다.  세도면의 젖줄인 사동천이 북쪽에서 흘러와 남쪽으로 흐르는 천변의 넓은 들을 차지하고 있는 금강 변에 자리하여 물가에 바위가 많다고 하여 다근이, 다근도 선장, 다근진이라고 불렀다. 다근이 포구는 강변의 큰 바위를 이용하여 하선장으로 활용하였으며 선착장 주변에 3곳 정도의 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다근이 나루 인근지역은 강변이 아름다운 곳이다. 강변을 따라 임천면 칠산리를 지나 양화면 입포 삼거리 안쪽 동네를 지나면 강가를 따라 가면서도 강변의 아름다운 풍경은 계속 이어지며, 이 길은 양화의 웅포대교까지 이어지게 된다.

1996년 10월 8일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 입포리와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맹산리를 잇는 길이 1226m 2차선의 웅포대교가 개통되면서 부여의 동남쪽 끝자락과 전라도를 잇는 마지막 다리를 볼 수가 있다.

이곳에는 세도와 강경 황산간의 150m 거리를 오갈 수 있던 ‘황산나루’가 있었다. 포구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백제시대 때부터라고 전하며, 양화면 입포(笠浦)는 우리말로 갓개라 불리던 곳이다. 이 고장의 지형이 옛날 우리 조상들이 많이 쓰던 갓 모양을 닮은 데서 삿 갓 입(粒)자를 써 입포, 관포, 갓개라고 불렀다.

 

4대포구 입포, 김제안 포구

 

맞은편 강 너머에 전라북도 익산시 제성나루가 있으며, 익산시 웅포면 제성리에 자리한 나루터로 입포의 상권 영향을 받아 전라북도 상인들이 입포장을 보러갈 때 이용한 나루터였다. 입포의 백제시대 유적으로는 나당연합군에게 패한 입포의 포구 옆에 위치한 유왕산이 있고, 백제의 의자왕과 신하들이 당으로 끌려갈 때 백제의 유민들이 올라 금강을 따라 당나라에 잡혀가던 백제의 군신을 마지막으로 배웅하며 불렀다는 ‘산유화가’의 노랫말이 남아 있다.

일제시대에는 갱갱이 포구(강경)와 세력을 다룰 정도로 물상과 유통이 활발한 포구로서 당시에는 김제안 포구라 하여 안흥, 장항, 웅포와 함께 충청남도 4대 포구로 꼽히게 된다. 당시 입포는 여산 8군이라 불리던 부여, 예산, 청양, 서천, 보령, 논산, 공주의 쌀을 모아 군산으로 운반하던 중간 기착지의 용도로 이용되었다. 이 시절 입포에는 일본 주재소(현 면사무소 터)와 군산 곡물 검사소 입포 분소가 설치되어 쌀 수탈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였다. 입포를 지나 양화면과 서천군의 한산면이 접해 있으며 신성리에는 갈대가 유명하고, 금강 하구를 통해 백마강은 서해로 유입된다.

금강의 별칭인 백마강의 역사는 강을 따라 다리를 만들고, 그 다리를 살피다 보니 시대의 흐름 속에 강은 우리 삶의 근간을 이루는 사이마다 전쟁의 역사가 묻어오지 않을 수 없다.   하지 못한 이야기 아쉽게 느끼며, 향토사학자가 아닌 관계로  미흡한 부분들 많을 것이나 동시대인들과 공유하고 싶은 내 고향 부여의 금강 백마강이야기를 흐르는 강물과 함께 건져올려 보았다. 가을 짙은 백마강변에서 금빛 노을로 물든 억새들이 바람과 노닥이듯 긴 강물의 편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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