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겸 사회복지법인 두드림 이사장
십여 년 전 대전에서 발달 장애 아이를 둔 아빠들을 대상으로 한 모임이 만들어졌다.
송강복지관에서 근무하던 윤향미선생님이 산파역할을 했다. 현재는 대전 밀알복지관에서 장애인분야 국장으로 근무한다는 말을 들었다. 여러 번의 토론 끝에 사랑의 숲지기라는 모임 명칭과 뜻하지 않게 본인이 초대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개인 사정으로 회장직을 내놓을 때까지 거의 만3년 정도를 했는데 그 임기 동안 모임의 여러 회원들과 함께 눈에 뛸 만큼 많은 일들을 했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대전장애인교육권 연대단체들의 협조 부탁으로 농성을 주도하게 되어 둔산동 대전시교육청 앞마당에서 23일간 철야농성을 했던 일도 있었다.
지난번 대전시 교육감으로 나와 아깝게 낙선한 성광진 전대전전교조지부장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고 그 분과 함께 대전 장애 아이들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힘겹게 싸웠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장애아동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개선을 위해서 아빠들이 발 벗고 나선 일이다. 여러 날을 머리를 맞대고 기획하고 실행한 것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리플릿을 만드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장애 아이를 낳고 키우는 아빠들의 애환과 힘들게 살아온 삶에 대한 격려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한권의 책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여러 아빠들이 자신의 경험을 글로서 표현하여 아빠들의 선물이라는 책 제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자녀를 키우다보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경험에 의한 것들을 공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어렵고 힘든 일이기도 하고 장애 부모로서 이것만큼 큰 좌절과 절망감을 안겨준 것이 없을 만치 많이 혼란스러웠던 일이라서 그렇다.
이런 어려움에서 조금이나마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데 도움을 덜어 주기 위한 심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책을 만들고 보니 생각한 만큼 파급효과도 있었고 전국의 장애를 둔 부모들의 기대감이 많이 상승하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그 한권의 책을 마지막으로 끝나게 되어 많이 안타까웠지만 한정 수량이 500권이라서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분들에게만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는 대략 다섯 권정도의 책은 혹시나 해서 집 서책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어느 때부턴가 그 책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작년 중반쯤 인가보다. 우리 시설에 공공근로 하러 오신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책장을 정리하다 그 책을 보고는 궁금해서 읽어 보았다고 한다. 그 책 내용 중에 내가 쓴 글을 읽다가 마음이 울컥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또한 장애인 일자리로 근무하던 형권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내가 쓴 글을 보고 눈물이 날 뻔 했다고 한다.
나는 단순히 제일 첫 장에 쓰였던 미사여구를 좀 석어 가며 제법 폼 나게 썼다고 생각한 글에서 감동을 느꼈나 보다하며 단순히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느 모임에서 사례발표를 하려고 썼다가 책의 분량을 맞추기 위한 요청으로 억지로 끼워 넣었던 마지막 장에 있던 글에서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말을 듣고 심적으로 많이 놀란 적이 있다. 그 내용은 우리 아들을 키우면서 겪었던 부모심정을 어떤 손질 없이 그냥 편안하게 말하는 것처럼 글을 쓴 것이었다. 감동을 받을 글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마음이 울컥할 정도로 그런 글에서 감동을 받았다니 머리에서 약간 혼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책을 찾아서 다시 한 번 내가 쓴 글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있었다. 글이라는 것이 글을 읽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차원에서 문법이나 어법에 따라 쓰는 것이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글속에 꾸밈없는 진솔함이 묻어 있어야 그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설령 글자가 틀리고 문법이 어색해도 그 글에 진정성만 있다면 그 글은 읽는 이의 감동을 주는데 아무 영향이 없다. 맞춤법을 많이 틀린다고 비난을 들었던 사람이다. 그런 일에 주눅이 들었다면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하고 뛰어난 우리말 한글이 있다. 설령 맞춤법이 틀려도 전달 사항에 아무 영향이 없고 어떤 사물이나 어떤 소리를 표현할 때도 전혀 제약을 받지 않을 만큼 우리의 언어체계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 이런 훌륭한 한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할 수 있다.
맞춤법이 틀려도 그리고 어법이 어색해도 우리의 뜻을 전달하는데 전혀 이상이 없다는 사실이다. 단지 그 글에 진솔함이 묻어 있다면 그 표현에 전혀 지장이 없음을 알기에 글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글은 시인이나 소설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봄이 되면 봄의 느낌을 글로써 표현할 수 있고 가을이 되면 그 운치에 빠져 한 줄의 글로써 마음을 담을 수가 있다. 이 모두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몫이다. 우리의 몫을 많은 사람들이 챙기며 살았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