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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새로읽기] 저문 날의 풍경
최병현 미래인재역량개발연구소 대표
기사입력  2018/09/22 [13:34]   놀뫼신문

최병현 미래인재역량개발연구소 대표

 

“다음 달 모임에는 반드시 참석 할게” 전화기 넘어 목소리에 아쉬움과 정이 한껏 묻어났다. 그리고 얼마 후, 정작 우리 모임에는 아니 오시고 저승 모임으로 홀연히 떠나셨다. 유난히 푹푹 삶아대던 삼복더위, 거리에서 넘쳐나는 배꼽티, 민소매입은 사람들에게 눈을 두기가 민망스러웠다. 그런데도 그는 염천(炎天)의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티셔츠위에 겉옷을 껴서 입었다. 왜 덧옷을 입느냐는 핀잔에 “아무 가진 것도 없어서 가슴이 너무 시리고 추워!!” 그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마음이 찡하여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말았었다. 그는 사십년 가까이 후학들을 양성한 명망 있는 교육자였다. 오늘은 전화번호부에서 그의 이름을 애써 지워내야 한다.

불교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를 ‘찰나(刹那)’, 손가락으로 한번 K겨 내는 시간을 ‘탄지(彈指)’, 숨 한번 쉬는 시간을 ‘순간(瞬間)’이라고 한다. 또 힌두교에서의 ‘겁(劫)’이란 천지가 한번개벽하고 다음 개벽 할 때까지의 43억 2천만년의 시간을 말한다. 500겁이 지나야 옷깃을 스칠 수 있고 2천겁의 세월이 지나야 하루 동안 동행할 기회가 생긴다고 하니 저승으로 가버린 그 친구와의 인연이 그러하다. 은퇴 후, 환갑청년이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던 그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년에는 꿈이 없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리고 모든 성장이 멈추고 조용한 시간의 연속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체의 성장이 멈추었다고 분별심이나 지혜와 같은 새로운 특성이나 성격발달까지 멈춘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통념상 그렇게 믿는 것은 ‘나이’라는 ‘숫자’의 폭력성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나이 들기 위해서는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세대차이와 사회변화를 이해하여야 하며 취미와 여가를 즐기는 방법도 새롭게 배워가야 한다. 주위의 친한 벗들과 이별이나 배우자의 사망 후, 빈 둥지 적응하기, 또 갑자기 멈추어 버린 사회활동 때문에 발생하는 소외감과 허무감 극복하는 문제도 수월치 않다. 특히 연륜에 걸맞게 어른 구실하는 비아(非我)의 실천, 품위 있게 늙어가기, 동년배의 노인들과 친교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노년의 발달과업 중 하나다.

나무는 고요히 있고 싶으나 바람은 그 가지를 그냥 두지 않는다. 누구나 평안히 있고 싶으나 세상에 뿌리박고 사는 한, 크고 작은 일들이 쉴 사이 없이 흔들어 댄다. 이것이 삶이다. 그래도 깊게 뿌리박은 자기수양으로 흔들림도 가라앉히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으면 천만 다행이다. 그러나 부침하다 보면 자칫 삶에 대한 열정과 기대가 노탐(老貪)이나 노욕(老慾)이 되고 말기도 한다.

평정(平靜)은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의 상태다. 이는 굽어보고 우러러 살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는(부앙불괴:俯仰不愧) 마음의 바탕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분수에 맞게 만족하며 사는 지족상락(知足常樂)의 토양에서 성장한다.

사람들은 “껄껄껄” 하며 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좀 더 참을껄, 좀 더 잘해줄껄,  좀 더 즐길껄”, 특히 “좀 더 참을걸!” 이라는 말 에서는 참지 못하는 조급증으로 모진 말을 뱉어버리고 후회한 일들이 생각난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다스린다. 누르려 하지 말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덕(德)이다. 반발하는 탄성지수는 누르려 하는 힘과 비례한다.  

노년이 되면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과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합하는 사람으로 구분된다. 어찌됐든 자기 자신의 인생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지난날의 갈등과 죄책감을 해결하는 것이 노년의 지혜다(Erikson).

자신의 삶을 뒤돌아본다. 내세울 것 하나도 없이 세월을 견뎌왔지만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며 살아 왔으니 보잘 것 없는 것을 가지고도 좋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고,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으련다.”

아이들에 대한 걱정도 덜어내야 한다. 그들의 인생은 부모의 것이 아니다. 그들의 것일 뿐이다. 입이 마르고 가슴이 답답할 때는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아이들에게 큰 짐이 되지 않도록, 건강하고 팔팔하게 살다가 3일 앓고 4일 만에 웃으면서 훌쩍 떠났으면 ‘998834’좋겠다.

지혜롭게 늙어가는 사람은 마음의 평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따스하고 부드러워 기분 좋은 잠자리와 차 한 잔 에서 기쁨을 찾는다. 귀가 어두워지면 조금만 듣고, 눈이 침침하고 말이 어둔하면 조금만 보고 덜 말하고, 애써 모든 것을 다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이 뭐 큰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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