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에서 첨단 과학 전시회가 열린다는 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며 빅뉴스감이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행사나 전시회가 많은 반면, 실속있고 알찬 테마는 적었기 때문이다. 논산에 도단위나 전국단위의 행사가 그래도 자주 열리는 편이다. 원근각지 찾아오는 이들에게 논산을 알리기도 하고 개최지인 논산시민이 수혜자가 되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런데 가끔 보면, 시 차원에서는 홍보나 관객 동원에 신경을 덜 쓰는 분위기다. 아이들 손을 억지로라도 끌고나와서 보여주고 싶은 때가 있다.
지난 9월 3~15일 두 주 동안 논산 공설운동장에서 유별난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 제목이 생경하다 못해 무섭기도 하다. 『공존의 혁신, 생체모방』이라...... ‘공존의 혁신’까진 이해가 된다. ‘생체모방’이란 말이 걸린다. 생체의 무엇을 모방한단 말인가? 공설 운동장 한쪽에 조립식 건물 몇 개가 들어섰다. 창문 하나 없는 검은 색 조립건물 안이 두려움과 함께 궁금증이 더해진다.
조립식 건물 한 편에 씌여진 글귀가 막연한 두려움을 호기심으로 바꾼다. ‘인간은 자연에 대한 직감적인 신뢰를 갖는다’. 당연한 말이다.
출입구 입구에 안내판이 있고, 안내원이 있다. 이 전시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주관하고 대전시민천문대에서 운영하는 ‘찾아가는 과학관’이었다. 지역별로 열리는 전시회인데 충남에서는 논산 공설운동장에서, 9월 3일부터 15일까지 전시된 것이다. 6개의 주제 전시구성 및 작동내용을 순서대로 살펴보았다.
1. 프롤로그
‘인간은 자연에 대한 직감적인 신뢰를 갖는다’다. 이 글이, 무엇이 그러한지 흥미를 유발시킨다.
2. ‘우월한 재료들’
이 부분에서는 다른 생물을 살리는, 형질을 오랫동안 유지하게 해주는 그리고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주제로 그 예들을 보여준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천만 종의 생물이 산다고 한다. 이들은 무수한 시행착오와 자연선택 가운데 살아남은 최적의 개체이며 생존을 위한 무수한 비법을 간직한 존재다. 인류는 그들의 비밀스런운 생존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몰포나비의 구조색’이다. 중남미 밀림에 사는 몰포나비는 색소가 없지만 날개가 파란색이다. 날개 비늘의 표면 구조가 파란색 빛만 반사하기 때문이다. 독특한 구조 때문에 나타나는 색깔을 ‘구조색’이라고 한다. 비단벌레도 구조색을 갖고 있다. 염료로 염색한 색깔은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해진다. 그러나 구조색은 빛을 반사하는 표면구조가 변형되지 않는 한 색깔이 바래지 않는다. 1600여년이 지났지만, 비단벌레 껍질로 장식한 신라 시대 말안장의 영롱한 색은 그대로다.
‘상어비늘’에서 상어의 작은 돌기는 와류를 피부에서 밀어내 마찰을 줄여 수영 속도를 높인다. 이를 ‘리브렛(Riblet)구조라고 한다. 이를 이용해 벨크로 테잎을 만들었다.
‘연잎모방 페인트’는 연잎 표면이 물에 젖지 않는 것을 모방한 페인트가 개발되었다. 이는 연잎 표면의 작은 돌기(나노돌기)가 물이 퍼지지 않고 방울로 뭉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수소성’이라고 한다.
‘거미줄 모방’한 유리도 있다. 거미줄에는 자외선을 반사하는 섬유 가닥이 섞여 있다. 새들은 자외선도 볼 수 있어 거미줄을 피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10억 마리 이상의 새들이 유리창에 부딪쳐서 죽는다고 한다.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자외선 무늬를 그려 넣은 유리창이 개발되었다.
3. ‘탁월한 기능들’
- 모방인가 수렴진화인가
수렴진화란 오징어의 눈, 포유류의 눈,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진화되었으나 그 구조는 모두 같다. 자연계에서는 물리적인 법칙과 제약이 있으며, 이 법칙을 따르다 보면 결국 동일한 해결점에 도달<수렴>하기도 한다.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식량불균형, 질병 등 인류는 새로운 문제에 지속적으로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 중 어떤 것들은 생물이 오랜 진화과정을 거치며 해결해 낸 것들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기구의 모양이나 기능이 생물과 비슷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자연에서 착안한 생체모방 제품도 있지만, 탐구와 시행착오를 통해 최적의 기능을 찾다보니 생물이 오랜 시간 진화해 얻은 답과 비슷한 해답인 경우를 보여준다.
‘벼룩도 기어로 움직인다’ . 기어(gear)는 톱니의 맞물리는 형태와 크기를 조절하여 방향과 힘을 조절할 수 있다. 이 톱니의 구조가 2013년 9월 벼룩에서 관찰되었다. 이를 응용한 물건이 전자톱이다.
‘일본도’는 코끼리나 호랑이의 치아와 상아를 모방한 것이다. 경도가 높은 쇠로만 칼을 만들면 탄력이 없어 쉽게 부러진다. 일본에서는 단단하기가 다른 철판 두 개를 합쳐 칼을 만든다. 무른 쇠를 중심에 두고 단단한 쇠로 감싸는 형태다. 동물의 치아 역시 부드러운 상아질을 단단한 법랑질이 감싸고 있다.
‘딱따구리두개골을 모방한 헬맷’도 있다. 딱따구리는 초당 약 20회의 속도로 나무를 쪼아 구멍을 뚫는다. 이때 딱따구리는 머리에 가해지는 충격은 중력가속의 1200배에 이른다. 딱따구리는 부리와 두개골 사이에 스펀지와 같은 미세한 공극으로 이루어빈 뼈와 두개골 전체를 감싸고 있는 혀를 이용해 충격을 흡수한다. 독일의 한 회사가 딱따구리 두개골으 모방한 자전거 헬맷을 개발했다.
‘복어를 모방한 자동차’, 거북복의 독특한 몸구조는 물이 주는 저항을 최소화 시켜 1초에 자신의 몸길이 6배까지 헤엄칠 수 있게 한다. 독일 유수의 자동차 회사는 이를 모방하여 항력계수를 최소화한 자동차를 만들었다. 거북복 디자인 자동차 회사는 유사조간의 자동차보다 약 1.3~1.7배 좋은 연비를 보였다.
‘새알을 모방한 전구’, 초창기의 필라멘트 전구는 원형 또는 원추형이었다. 종잇장처럼 얇은 유리는 소켓에서 끼우거나 뺄 때 쉽게 깨졌다. 사람들은 새가 알을 품기 위해 둥지에 앉아도 깨지지 않는 알의 모양을 모방하여 지금과 같은 형태의 전구를 만들었다. 새알을 모방한 전구 역시 사람이 잡았을 때 곡면을 따라 압력이 골고루 분산된다.
‘물총새 부리 모방 기차’, 일본의 신간센 고속 열차는 시속 430km이상으로 달리는 세계 최고 속도의 열차다. 그렇지만 터널을 지날 때마다 기압차로 매우 시끄러운 소음이 발생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 속에 다이빙할 때 물이 거의 튀지 않는 물총새의 부리를 모방해 열차의 앞면을 수정했다.
이외에도 단풍씨를 닮은 프로펠러, 소라껍데기를 모방한 스크류, 딱정벌레 입을 모방한 체인톱, 바닷가재의 집게와 커터기, 삼엽층을 모방한 청소기, 벌집을 닮은 KTX 앞부분, 모기입을 모방한 주사기, 고래지느러미와 휀, 아르마딜로와 백팩, 날다람쥐와 슈트 등이 있다.
4. ‘로봇 그리고 인공지능’
이 부분에서는 생활을 지원하고 전문 서비스 영역까지 로봇을 이용하는 것을 전시한다. 이외에 바이오 로보틱스, 휴머노이드, 인공지능에 대해 보여 준다. 생활 지원의 예로 사람의 모양을 하지 않아도 AI스피커, 청소로봇, 자동차전자 제어 시스템이 있다. 이것도 모두 로봇으로 이미 우리 일상생활에서 로봇이 활용되고 있다. 바이오 로보틱스에 뇌파로 날리는 드론, 아이언맨 슈트, 곤충모방 로봇, 거미로봇 댄스 등이 있다. 그 밖에 의학적으로 심장 로봇, 의족이나 팔, 손 로봇 등이 활용되고 있다.
5. ‘우주-태양계의 생성, 천체관측의 역사’
이 부분 역시 즐겁다. 우주정거장 VR체험과 운석을 만져볼 수 있는 체험장이다.
6. 에필로그
- ‘혁신의 미래, 생체모방과학’
다른 조립식 건물에는 ‘교육 및 체험’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다. 달 탐사선 모형을 만들 수 있고, 별자리와 관련된 시계나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별자리로 달력을 만들기도 한다.
동물과 사람, 자연과 사람, 우주와 사람, 이 모든 것들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도, 살 수도 없다. 더불어 사는 공생관계다. 어쩌면 사람이 동물이나 자연을 보살피고 도움을 준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전시회를 보면 그 생각이 달라진다. 사람보다 진화에 더 탁월한, 우월한 동물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 그럼에 따라 우리의 생활이 한 단계 더 높아지고 진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공존의 혁신’이다. 프롤로그의 말처럼 인간은 자연에 대한 직감적인 신뢰로 앞으로의 미래를 혁신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생체모방 과학을 통해서다.
- 김선영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