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에어콘 같은 시절이 없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더위를 이겨냈을까? 남정네들은 등목이다. 이 방법 말고도 의식주 전방위적으로 등장하는 피서법, 혹은 극서법. 우리 선조들은 여름 한복판인 음력 6워에 세 복날 말고도 유두절을 따로 세웠다. 음력 6월 보름날인데, 올해는 양력 7월 27일 ‘중복’과 중복된다.
유두절은 깨끗한 물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한 뒤 밀국수 등을 먹어 더위를 이기는 명절이다. 이름마저 잊혀져가는 유두절을 세시풍습 교육의 일환으로 8년째 유두절 행사를 벌이며 직접 생활화하는 교육기관이 있다. 강경에 있는 인동어린이집! 올해는 살인적인 폭염으로 바깥행사 일부가 축소되기는 하지만, 인동의 아이들은 여전히 등목맛을 즐긴다.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유두(流頭)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 준말로 ‘물맞이’라는 뜻이다. 수두(水頭)라고도 하였는데, 수두란 물마리(마리=‘머리’)로서 ‘물맞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물등목하기, 물총놀이 등으로 ‘물맞이’의 주인공이 된다.
2주전부터 준비해온 유두구슬꿰기
먹거리로는 유두국수 삶아먹기, 수단(水團)먹기, 수박·참외 등 햇과일먹기, 만들기로는 유두구슬꿰기 등을 아이들과 함께 직접 한다. 원래 이 날 사당에 유두천신하고 나서 한집안 식구가 단란하게 유두면·수단·건단·상화병(霜花餠) 등 여러 음식을 함께 먹는 풍습이었다. 유두면은 참밀의 누룩으로 만들 경우 유두국(流頭麯)이라고도 하였다. 구슬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오색으로 물들인 뒤 세 개씩 포개어 색실에 꿰어서 몸에 차거나 문에 매달면 재앙을 막는다고 믿었다. 유두구슬꿰기는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유두구슬 누구에게 드릴까?” 2주전부터 계란판을 불려서 종이죽을 만들어 구슬모양으로 말린다. 오방색으로 구슬을 만든 것을 꿰어가는 과정.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고진감래....수단을 만드는 과정도 엇비슷하다. 유두구슬 꿰면서, 지속온난화로 더워지는 지구 생각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아이들이 양파로 손수건을 염색하여 부모님께 효도선물을 준비중이다. “내가 만든 수건은 누구에게 드릴까?”
농촌에서는 밀가루로 떡을 만들고 참외나 기다란 생선 등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논의 물꼬와 밭 가운데 차려놓고, 농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면서 고사를 지냈다. 유두절은 액을 물리치고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날이기도 하므로 잡초뽑기 같은 풀베기시합도 병행한다. 친구들과 함께 풀을 뽑고 유두면 먹고 구슬도 목에 걸고 다니다보면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것도 느껴진다. 신명이 나서 더위를 잊거나 거뜬히 이겨내는 유두절의 극서법이다.
세시풍속 활동은 지속·확대돼야
“우리가 연중 실시하는 세시풍속 활동은 자연의 변화를 가장 실감할 수 있는 학습활동이예요. 자연의 흐름과 우주적인 질서를 절기마다 느껴봄으로써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을 함께 하고 있지요. 세시풍속을 아이, 교사, 부모가 함께 준비하면서 자연스레 몸으로 익히다 보면 우리 삶의 일부로서 자연의 질서를 체득하게 되는 데 이 활동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요” 유향란 어린이집 원장의 설명이다.
세시활동후의 변화에 대해서는 이다혜 교사가 주체별로 구분하여 들려준다. “우선 지역사회에서는 지역 어르신들도 찾아가 기쁨을 선사하게 되니까 물심양면 지원도 늘었어요. 함께 키운다는 인식도 높아졌고요^ 부모와 교사 입장에서는 문화재해석의 기회가 제공됐다고나 할까요? 공동체 의식도 공유하게 되었고요... 제일 좋아라 하는 주체는 역시 아이들이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인식하면서 조상들의 지혜를 체득함은 물론 현재 우리 지역, 친구들과의 나눔을 경험하면서 건강한 먹거리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니 말이예요^”
유두 무렵이면 농가에서는 모내기를 끝내고 김매기를 할 때이다. 가을보리를 비롯한 팥 ·콩·조 등을 파종하며, 오이·호박·감자·참외·수박 등 여름 작물을 수확한다. 비교적 한가한 이 무렵에, 유두라는 속절을 둔 것도 하나의 지혜이다.
음력6월은 삼복(三伏) 더위에 보양탕 같은 동물성으로 몸을 보(補)하기에 노력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더위에 지쳐 발병하기 쉬운 때이다. 이 유월 한복판인 보름날에 재액(災厄)을 면하려는 양퇴귀(禳退鬼)의 방법이 강구되었다. 그러한 것의 대표적인 세시풍속이 곧 유두이다. 이날은 일가 친지들이 맑은 시내나 산간폭포에 가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뒤, 준비해간 음식을 먹으면서 서늘하게 하루를 지낸다. 이를 유두잔치라고 한다. 이렇게 하면 여름에 질병을 물리치고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믿었다.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집을 떠나 벌이는 유두 잔치, 아직도 비현실적으로 들린다면 수박 한통 사들고 인동어린이집에 찾아가 부채 부치며 한바탕 구경이라도 할 일이다.
이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