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정확히는 11월 초 밀리터리파크가 개장을 앞두고서 “선샤인랜드”가 등장하였다. 대체 얼마나 유명한 드라마이길래 밀리터리 파크를 제치고서 전격 결정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작사측에 스포일링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예고편을 요청하였다.
미니시리즈 24부작으로 방영 예정인 드라마의 제목은?“미스터 션샤인”이다. 제목을 그렇게 정한 이유를 물었으나, 드라마내용과 연관이 있어 현재로서는 답변이 곤란한 상황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개략적인 드라마의 내용은 들려주었다. 신미양요때 미군함을 타고 미국으로 간 한 소년이 미군장교가 되어 조국인 조선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운명 같은 이야기라는 귀띔이다. 논산세트장에서 2월말경부터 촬영이 가능할 거 같다는 상황 설명과 함께, 드라마는 tvN채널을 통해 올 여름 7월 토요일 일요일에 방영예정이라고 알려주었다.
이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대외비 가상자리에 접근한 결과 몇 가지를 더 알아냈다. 우선 작가 작가 김은숙! SBS 특별기획 드라마 “태양의 남쪽”으로 시작,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시청률 38.6%을 기록한 대한민국 작가 대표급 김은숙이 전면 부각된다. 그 다음, Mr. Sunshine 주인공 유진 초이(Choi). 노비의 아들이자, 미 해병대 장교이다. “모질게 조선을 밟고, 조선을 건너, 내 조국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리라” 하지만 유진은 알지 못했다, 조선에서 기다리는 자신의 운명을..... 이 주인공으로 분하는 배우가 이/병/헌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진용으로 출발하는 선샤인이니, 그 다음 예고편은 군더더기에 불과할 듯하다.
1900년 전후, 역사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기억해야 할 무명의 의병들. 노비로 백정으로 아녀자로 유생으로 천민으로 살아가던 그들이 원한 단 하나는 돈도 이름도 명예도 아닌, 제 나라 조선(朝鮮)의 ‘주권’이었다. <미스터 션샤인>은 이름 없는 영웅들의, 유쾌하고 애달픈, 통쾌하고 묵직한 항일투쟁사다. 가장 뼈아픈 근대사의 고해성사다. 미국의 이권을 위해 조선에 주둔한 검은머리의 미 해군장교 유진 초이(Eugene Choi. 38)와 조선의 정신적 지주인 고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애기씨 애신(25. 김태리 분)의 쓸쓸하고도 장엄한 모던 연애사다.
선샤인 하면 제일 먼저 존 덴버의 “선샤인 온 마이 숄더즈(Sunshine On My Shoulders)가 흥얼거려진다. 1974년 빌보드 핫100에서 1위에 올랐고, 연간차트 18위에 오른 전설의 곡. 존 덴버는 이 곡을 미네소타에서 늦겨울, 이른 봄에 썼다고 한다. 밖에 나가 활동하고 싶으면 햇빛을 기다려야 하는데 햇살 자체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걸 떠올린다고, 그런 마음으로 쓴 곡이라고 한다. 2007년 선샤인이라는 영화도 나왔지만, 지난 9일 미국 CNN방송은 “한국의 선샤인 맨(Sunshine Man) 문재인, 북한 위기를 풀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애칭을 부여하였다. 햇빛정책과도 연관지어지는 네이밍이다.
‘선샤인랜드’로 개명해서인지 대체적으로 잘 되어가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다. 이름짓기(naming)의 신중함과 그 결정 과정이다. 정명, 공자의 주된 메시지는 정명(正名)이었다. 요즘은 명실상부(名實相符)가 더 자주 쓰이지만, 이름과 내용은 최대한 일치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공동체에 혼선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정의사회’를 외쳤던 5공정권이나 ‘위록지마(謂鹿之馬)’가 집권기간 동안 그해의 사자성어로 뽑혔던 박근혜 정부는, 정명을 정면으로 거스리는, 길거리 소가 가다가 웃을, 벌거벗은 임금들이었다.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름의 결정과정이다. 이름짓기를 위한 공론은 위원회는 물론 전국 규모의 공모가 대세이다. 노성에 추진 중인 “충청유교문화원 기관명칭 변경연구”는 분량부터 논문급이다.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이 발행한 50여 쪽에 달하는 이 보고서에서 전국 유관기관의 방대하고도 정확한 비교와 여론조사 등이 집계되어 있다. 결과 선호도가 한국유교문화진흥원 71.26%이 1위, 한국유교문화원 51.87%가 2위를 차지하였다.
논산시청에 선샤인랜드로의 명칭변경 관련 자료를 요청한 결과, 내부에서 구두 논의를 거쳐서 결재하게 된 준공식 준비 서류 몇 줄이 전부였다. 물론 길고 오래 걸려야 능사는 아니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훨 빛날 때도 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과정은 투명해야 더 빛나지 않을까?
작년에 논산을 다녀간 작가 공지영의 대표작이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기자가 편집장의 명을 정면으로 어기고 장기복역수를 인터뷰 대상으로 확정하는 내용이다. 기자가 가장 의식하고 두려워할 존재는 독자이다. 공복인 공무원에게는 시청 내부의 결재라인이 아니라, 직속상관인 시민들이다. 노비출신인 민초 미스터 선샤인이다.
- 이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