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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의 자존심[17] 정이품송正二品松 - 연산면 송정리 정두영 옹
기사입력  2017/08/15 [16:35]   놀뫼신문
▲정두용 옹     © 놀뫼신문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시구가 있었다. 거리마다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왜 사람이 없다고 사람을 찾는다는 것인가. 사람은 많지만 정말 사람다운 사람, 사람답게 사는 사람은 드물다. 어린 자녀에게 “너는 이 사람처럼 살아라.”라고 말할 만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

 

연산면 송정리 정두영(87) 옹의 댁을 찾은 날은 봄볕이 따사로운 오후였다. 집 앞 개울가에 꽤나 굵은 산수유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만발한 꽃이 골짜기 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무릉도원이라더니, 분명 인간이 사는 세상이 아닌 듯하다. 필자를 맞이하기 위하여 나와 계신 정 옹은 소년 같았다. 필자는 우리 고장 출신인 박용래 시인의 <먹감>의 한 구절 ‘오십 먹은 소년’을 떠올렸다. 정 옹은 ‘팔십 먹은 소년’이었다. 언제나 그러시듯 예를 다하여 필자를 맞이하신다.


방에 들어서자 아랫목을 권하신다. 아랫목 자리를 사양하는 필자와 한참을 권커니 사양커니 하다가 필자가 정 옹의 뜻을 꺾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정 옹께서는 선친 삼강 정우용(杉岡 鄭禹鎔) 선생에 대한 말씀을 꺼내신다.


“우리 선친께서는 잠종(蠶種) 제조를 하셔서 사업에 크게 성공하시었고, 동유림(洞有林) 33정(町)을 조성하시어 동네에 기증하셨는데……”

 

▲ 송덕비     © 놀뫼신문


필자는 정 옹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하여 방문한 것이지만 정 옹의 말씀을 가로막을 수가 없다. 그 어른이 선각자이시며 선구자이셨다는 말씀 끝에 1996년에 송덕비를 마을에 세웠다는 말씀이다.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윗방으로 가자마자 작은 책자 하나를 가져오셨다. 책의 제호는 『조선청년성공록(朝鮮靑年成功錄)』이다. 그 책에는 정 옹의 선친이신 삼강 선생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판권을 보니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소화(昭和) 2년(1927년)에 발행한 것이다. 선친에 대한 찬사가 계속 이어졌다.

 

조상이 업적을 이루어내기도 어렵지만, 후손이 그 조상을 추앙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잠종(蠶種, 누에씨)을 생산하는 공장을 경영하시던 삼강 선생은 논산군내에서 가장 먼저 자전거를 구입할 정도로 성공한 사업가셨다. 잠종(蠶種) 공장에서 일하던 인부가 오십 명이었다 하니 상당한 규모의 기업이었다. 지금 정 옹이 살고 계신 집이 원래 연산면 소재지에 있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 집을 해체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그 비용이 집을 짓는 것의 세 배나 들었다 한다. 삼강 선생은 왜 그런 말씀을 아들인 정 옹에게 하셨을까? 어린 아들을 상대로 재력을 과시하자는 의도는 아니었을 터이고……. 돈 있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리라. 삼강 선생은 아드님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때에는 ‘그냥 동정을 베풀어 그들이 주눅들게 하지 말고, 일을 시키고 품삯을 주어 정당한 대가를 받게 하라.’는 뜻을 전하고 싶었으리라.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라는 생각, 나도 모르게 흐트러진 몸을 바로 하였다.


정 옹의 선친에 대한 찬사를 들으면서, 조상이 업적을 이루어내기도 어렵지만, 후손이 그 조상을 추앙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의미 있는 일을 하지 못한 사람이나 의(義)를 저버리고 살지 않았다 ”


정 옹은 선친처럼 두각을 나타내는 사업도 해 보지 못했고, 가정을 위해서도 잘한 일이 없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아쉬운 일은 선친을 잘 모시지 못하여 불효를 씻을 길이 없어 죄송할 따름이라고 하신다. 정 옹께서는 여러 차례 선친에 대하여 ‘불효하여 후회된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되풀이하셨다. 내 60평생에 이처럼 돌아가신 선친을 못 잊어하시는 효자를 본 적이 없다.

 

“나는 세상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다만 의(義)를 저버리지 않고 살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도 정직하게 살라고 하지요. 세상 살기가 어려울 때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씀을 생각하지요.”

 

정 옹은 삐뚤어진 일을 하지 않았고, 불의를 용납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으로 의지하고 지내는 심우(心友)가 적다고 했다.


세상에서 의로운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논어의 <군자는 의에 민첩하고, 소인은 이에 민첩하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라는 말씀을 떠올렸다. 자신의 이익을 저버리며 의를 지킬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한가. 이런 생각을 하면 쓸쓸하기가 그지없다. 세상은 참 황량한 벌판, 이따금 폭풍우가 몰아치기도 한다. 그리고 저 멀리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승냥이떼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정 옹은 억만금보다 얼굴 하나를 중요시하다 보니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고 했다. 양반의 후예다운 말씀이다. 얼굴이라, 얼굴은 사람에게만 있다. 새나 짐승에게는 얼굴이 존재하지 않는다. 얼굴을 생각한다는 것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며,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한다는 뜻이다. 그러자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가. 이를 견디지 못하여 사람들은 흙탕물 속으로 몸을 숨기고 만다. 굴원의 <어부사(漁父詞)>의 일절이 떠올랐다.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혼자만 깨끗하고(擧世皆濁我獨淸)
모든 사람이 취해 있는데 나 혼자만 깨어 있으니(衆人皆醉我獨醒)
이런 까닭에 쫓겨나게 되었소.(是以見放)    

 

다시 태어나도 또다시 이 길을 걷는다


이렇게 소신을 지키며 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정 옹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또다시 이 길을 걷는다고 했다. 이 세상을 추호의 부끄러움도 없이 살았음에 만족하고, 그대로 다시 살겠다는 것이다. 포은(圃隱, 정몽주)의 후손으로서 선조에 누가 되지 않는 사람으로서 생을 마쳐야 하고, 자손들 역시 그렇게 살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벽에는 포은 선생 초상과 선대의 인물 사진이 걸려 있다. 조상을 늘 생각하시는 분이시니, 언제 어디선들 한 치의 흐트러짐이 있으시겠는가.


3남 2녀를 두었는데, 늘 정직하고 정의를 져버리지 말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재물은 강조하지 않는데, 탐욕이 건강까지 해치기 때문이다. 탐욕은 정신을 병들게 하고, 육체를 망가지게 한다. 큰아들은 도로공사에 다니는데 효심이 지극하여 주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오고, 며느리도 자주 찾아와서 밭일을 돕는다 한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1952년 12월 훈련소에 입대했을 때의 중대장님이 하도 고맙게 하여 잊을 수가 없었다 한다. 훈련소 시절 그 분이랑 함께 찍은 사진을 계속 지갑에 넣고 다녔다. 그러다가 지난 2005년에 육군본부에 가서 그 분을 찾았고, 53년만에 마침내 상봉했다. 서운한 감정은 오래 간직하지만 은혜는 쉽게 잊는 세상이다. 이렇게 오래 은혜를 잊지 못한 아름다운 마음은 우리의 가슴을 따뜻이 덥혀 준다.

 

종교나 교육은 실천이 중요하다. 정두영 옹은 철저한 신념을 가지고 사시는 분일뿐만 아니라, 그 이념을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실천하시는 분이기에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정 옹은 근래에 내가 만난 분들 중 가장 예의가 바르고 겸손한 분이시다. 그리고 자손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셔서 감동을 받았다. 친손과 외손을 가리지 않고 학교에 다니는 손자손녀들의 담임선생님께 해마다 연하장을 보내셨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하찮은 일처럼 보일지 모르나 이런 성의를 보이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연산상고 운영위원장을 하실 때에는 학교에 나가셔서 학생들의 고민도 들어 주고,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도 하셨다고 한다.


선행을 말로는 이야기하기 쉽고, 봉사도 말로만 하기는 쉬운 일이다. 남의 선행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쉬우나, 나는 그런 선행도 실천하지 못한다. 종교나 교육은 실천이 중요하다. 옛 어른들도 실천궁행(實踐躬行)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정두영 옹은 철저한 신념을 가지고 사시는 분일뿐만 아니라, 그 이념을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실천하시는 분이기에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나는 요즘 세상에 이런 분이 계시다는 것이 매우 다행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며, 값어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하나 전범(典範)이라고 생각한다.

 

마루에 햇볕이 가득 들었다가 마당으로 내려서곤 했다. 마당에서는 오리와 오골계 몇 마리가 저희들끼리 어울려 논다. 산수유꽃이 더욱 노랗게 보인다. 산수유 열매를 딸 수가 없다고 한다. 다 익기 전에 새들이 먼저 먹어 버린단다. 자연과 동화된 삶, 이것이 아마도 신선의 삶이 아닌가. 잡다한 인생사에 얽매여 의(義)를 저버리고 사는 가엾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의 답안을 제시하는 분이다.


필자와 이야기를 마치고 동행하여 마을회관까지 배웅을 오셔서 회관 앞에 서 있는 선친 삼강 선생의 공적비를 쓰다듬는 손길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하다. 필자는 비문을 꼼꼼히 읽었다. 후손들이 자랑할 만큼, 아름다운 생을 살다가신 분이다. 선조의 공적을 오래 기억하고 선양하고자 하는 그 후손 또한 아름답다.


필자가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정 옹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계셨다. 그 모습이 언젠가 본 속리산의 정이품송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권선옥(시인, 논산문화원 부원장)

 

사람다운 사람의 향기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서는 행복을 얻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또 일을 하기 위해서 사람을 만난다.


처음 사람을 만나면 누구인가가 궁금하다. 소개를 시키는 사람은 그가 누구인가를 설명한다. 누구라는 말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어떤 직위에 올라 있는가를 말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는다. 그가 어떤 태도로 세상을 살며, 얼마나 사람다운 사람인가를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많은 경우, 이런 것을 궁금해 하지 않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왜 어떤 사람인가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보다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사람다운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처음 보기에 사람이 무던해 보이면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안 보았으면 더 좋을 모습들이 드러난다. 아, 실망이다. 상처를 안고 돌아선다. 인연이 그뿐인가 하여 안타깝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는 후회도 한다.


그러다가 가끔, 정말 사람다운 사람을 만나는 행운이 찾아온다. 여러 번을 만나도 싫은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아니, 만날수록 더 자주 만나고 싶어지는 사람, 만날수록 처음에는 맡지 못했던 사람의 향기가 풍기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기쁨과 희망을 준다. 아,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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