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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화테마에세이] 순환順換의 톱니
김선화 수필가,시인,소설가
기사입력  2016/08/10 [14:44]   놀뫼신문

 

▲ 안터의 뒷산 시루봉 정상에서     ©놀뫼신문

                                            

 거기, 겹겹의 산으로 둘러쳐진 병풍 안. 다섯 집은 앞이 트여 바깥세상이 조금 보이고, 나머지 열 댓 집은 옴팍하니 닭둥우리처럼 들어앉아 하늘만 빼꼼한 곳이 내 고향마을 안터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대상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라 외딴 집에서 혼자 놀아도 심심한 줄을 몰랐다. 위로 오빠 언니가 있기는 하나 나이차가 많아 그들 노는 자리에 끼워줄 리 만무해, 땅바닥이나 살피며 개미와 땅강아지를 벗하며 자랐다. 그러다가 동생들이 둘 셋 늘어나 나중엔 일곱이나 되었지만, 내 눈과 귀는 늘 주변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져 동네의 꼬부랑 할머니들까지 기억하고 있다.

 

이는 내가 들추지 않으면 어느 한 사람도 이야깃거리로 삼을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닌 듯해, 이참에 한 번 작정하고 여미어둔 작은 보따리를 펼쳐 보이려 한다.

 

할머니1-병춘네 할머니

 

그 집은 ‘장약방’으로 통했다. 그곳엔 여러 한약재를 담는 나무서랍이 즐비했고, 약 짓는 사람은 나와 동갑내기인 병춘의 아버지였다. 병춘이 할머니는 동그란 얼굴에 눈매가 부드러웠다. 손주들에게 이르는 말씨도 조곤조곤했다.

 

“병춘네 할머니는 왜정 때 일본 놈들이 끌어간다고 해서 부랴부랴 열네 살에 시집오셨단다.”

 

이런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들어온 나는, 그 분이 고약한 자들에게 붙들려가지 않고 우리 동네 할머니가 되어준 것이 고마웠다.

 

할머니2-성희네 할머니

 

그 댁도 역시 장씨 성을 쓰고 있었다. 나보다 한 살 위인 성희(男)의 할머니이시다. 딱 보아도 여장부기골로 인물이 훤하고 키가 훤칠했다. 독실한 동학(東學)교도로서 성미(誠米)를 걷으러 팔 걷어붙이고 다녔는데, 우리 사립문에 그분이 들어서면 어머니는 얼른 양철물통을 열어 아껴둔 쌀을 내와 되질하였다.

 

식구들 생일이나 조상님 기일에나 한 줌씩 꺼내던 쌀을 아주 경건한 의식 치르는 양 내어드리곤 했다. 요즘 식으로 하면 정해진 신도 회비를 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할머니3-평숙이네 할머니

 

이 분은 비손이란 인상이 매우 깊다. 우리 집에 동생들 태어난 지 세이레가 되는 날 아침이면, 꼭 삼신상 지푸라기 앞에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셨다. 아기울음소리와 함께 가지런한 짚 한 줌이 시렁에 얹어지는데, 어머니는 첫국밥도 그 짚을 꺼내 편편히 펴고 그 위에 얹은 채로 드셨다.

 

그런데 삼칠일이 되는 날이면 평숙이네 할머니가 두 손을 모아 부비며 입속말로 무엇인가를 뇌고, 내 어머니는 다소곳이 꿇어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평숙이네 할머니는 뒷산 구릉 한자리를 얻어 훠이훠이 가셨다.

 

그리고 우리들은 가끔, 정해진 길을 두고 산을 누빌 때 가슴 철렁하도록 그분을 만났다.

 

할머니4-선철네 할머니

 

오가며 양계장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저만치 마루기둥 옆에 꼬부라진 백발 할머니가 설핏설핏 비쳤다. 우리들 또래가 그 댁엔 없어, 할머니의 셋째 손자인 선철오빠 이름을 마구 부르며 자랐다.

 

그는 예닐곱 살의 나이차와 무관하게 어린 날 내 동무였다. 꼴망태를 메고 다니며 나를 향해 네 발 달린 짐승걸음걸이 흉내를 내는 등, 까르륵거리는 내 표정을 즐거워했다.

 

그 댁에서는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부터 우리 아버지의 초능력으로 묏자리를 잡아뒀는데, 그 할머니 사후로는 내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명절 때면 의례히 고기와 술이 들어왔다.

 

고인의 다섯 손자가 모두 녹봉을 받게 됐다며 선철의 아버지가 예를 다했는데, 신기하게도 선철네 할머니는 세상 뜬 후로 가난한 우리 집을 보살피셨다.

 

할머니5-재권네 할머니

 

작은 소나무재를 올라 백여 미터 더 산 쪽으로 나아가면 작은 저수지를 앞에 두고 외딴집이 있었다. 나보다 두 살 아래인 재권네 집인데, 재권이를 삼촌이라 부르는 동갑내기 조카 현자도 있었다.

 

그곳엔 마을 최고령 할머니가 계셨다. 원래 다른 할머니들보다 연장자였는지는 어렴풋하나, 장수하신 어른이다. 하여 우리 집에서 참외수박을 수확할 때면 장에 내기 전에 가장 실한 것을 골라 아버지가 져다드렸다.

 

워낙 외딴집이어서 나야 두세 번쯤 얼굴을 뵈었을까. 재권네 할머니를 생각하면 항상 마을의 어른으로 받들어 모시던 아버지의 등짐이 떠오른다.

 

할머니6-광태네 할머니

 

마을의 할머니들이 모두 친할머니라면, 이분은 예외로 외할머니다. 광태는 내 오빠의 아명인데, 할머니는 황해도 해주 분이다. 도를 따라 계룡산에 들어 동학(東學)에 뿌리를 묻으리라 했다는 여인인데, 뒤늦게 인연을 만나 겨우 내 어머니 한 분을 세상에 내놓았다고.

 

길쌈하고 엿을 고아 대전에 내다 파는 수완도 있었다는데, 손주들 기억엔 계룡산을 타며 산나물자루를 여 날라 식량에 보탠 기억이 더 많은 분이다.

 

그래봤자 내가 일곱 살 겨울에 향년 74세로 생을 마치셨는데, 운명하시기 직전에 “손 번성하길 기도하마” 하셨다는 유언이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이렇게 내 유년기엔 여섯 분의 할머니들이 한 마을에 살았다. 내가 처음으로 뵈어온 거기 산마을 안터 할머니들은 그렇게 차차 자연으로 환원되어 갔다. 그 무렵 풋풋했던 우리들의 어머니들 중에는 누구는 할머니가 채 되기도 전에 지병을 얻어 세상을 떴고, 누구는 어느 정도 수를 누렸으며, 또 누구는 길고 긴 병석에서 오는 이 이를 기다리고 가는 이를 배웅한다.

 

그때 철부지였던 안터의 딸들은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해져 이미 할머니가 되었거나 할머니 될 준비를 하며, 한 차례씩 소스라치게 똑같은 고향 할머니들의 모습을 본다. 그러면서 점점 말이 줄어간다.

 

“그려. 그렇지. 다 그런 거지 뭐.” 그러다가도 금세 함박웃음 지으며 “우루룩 까꽁”하고 먼 훗날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어르고 논다. ‘어여쁘다, 어여쁘구나. 참 듬직하구나.’

 

지나온 자국을 물고 돌아가는 이 순환의 톱니는 오래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 행로가 원활할 때 할머니들은 할 일 다 했다며 두 다리를 뻗는다. 세상에서 이 질서보다 명료한 공식이 어디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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