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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봉칼럼] 고마움
문희봉 시인·전 대전문인협회장
기사입력  2016/08/10 [15:02]   놀뫼신문

  

온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뒤뚱거리며 걸음마를 시도하는 육순의 중풍환자를 보고서야 건강의 고마움을 실감한다. 여자는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면서도 세 번 변한다는데 진주혼식을 훌쩍 넘기면서도 허튼 마음 한 번 먹어보지 아니하고 오직 남편과 자식을 위해 멸사봉공하는 전국의 아내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사랑스런 자식들에게 정성을 다해 편지를 쓰고, 손수 쓴 겉봉에 우표를 붙이며, 보람을 느끼는 부모를 보면 존경과 함께 고마움을 느낀다. 어버이 가슴에 카네이션 꽂아주며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녀, 부모가 느끼는 고마운 마음, 눈시울이 젖는다.

 

직장일로 받은 스트레스를 그대로 가슴에 간직하고 돌아온 가장에게 두세 살 아이의 맑은 눈, 천진스런 표정이 이마의 내 천(川)자를 지우게 해준다. 이때 느끼는 감정, 내 자식이 하느님이고 부처님이다. 자식은 울타리란 말을 새삼 실감하며 자식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느낀다.

 

나막신을 신고 외벽을 탈 테냐, 아니면 홀시아버지를 모실 테냐고 양자택일을 강요받을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전자를 택한다는데 후자를 택했다는 내 이웃의 젊은 며느리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나무는 꽃의 어여쁜 손을 놓아야 비로소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 교육을 위해 온실이 아닌 노지(露地)를 택하는, 삼천지교(三遷之敎)를 몸소 실천하는 신세대 같지 않은 이웃집 젊은 엄마를 보니 어머니의 고매한 사랑에 고개가 숙여진다. 참사랑으로 자녀를 안내하고 그 속에서 엄격함을 잃지 않아 자녀가 바르고 떳떳하고 사람답게 자라도록 가르침을 베푸는 매우 어려운 환경의 이웃집 아이의 부모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출장길 이삼일 집을 떠나 생활하면서 ‘집 떠나면 고생이지.’하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떠오르는 순간 내 집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느낀다. 피곤한 몸을 눕힐 만한 곳이 없는지 역 대합실에서 신문지를 이불 삼아 새우잠 자는 사람을 보고서야 내 집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넝마주이가 쓰레기들 속에서 쓸 만한 물건을 골라내듯 무한한 어휘의 밭을 뒤져 영롱한 빛을 발하는 보석들을 골라내 저술한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접하고 나서야 작가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성공한 횟수보다 실패한 횟수가 많은데도 큰 뜻 저버리지 않고 연구와 탐구에 열중하는 과학도를 보면서 고마움을 느낀다. 거북이걸음으로도 십수년을 걷다 보면 제법 멀리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벌써 여러 번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급한 마음 멀리하고 목표를 향해 열심히 전진하는 수험생을 보면서 그의 남다른 인내심에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두 발로 걸어 찾아갈 기력이 없을 때에 내 집을 방문하여 도움을 준 의사와 간호사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엄동설한 모진 눈바람에도 끄떡 않던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 앞에 꺾이는 묘리(妙理)를 보여주는 산을 보면서 자연의 위대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계곡 암반에 뿌리를 내리고 주인임을 자랑하는 수목들과 어려운 환경이지만 나름의 좋은 자리 가려 둥지를 마련하고 가족 늘리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조수들을 보고서야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학교 앞에서 노랗게 알밴 칡뿌리를 팔던 할아버지는 일주일 후 거친 손으로 진달래 몇 묶음 꺾어다가 소녀 고객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계셨다. 할아버지의 고매한 인품과 아름다운 행동에 대하여 고마움을 느낀다.

 

몇 알의 붉은 감을 그대로 달아두어 세찬 바람과 함께 눈까지 내리는 날 까막까치들이 지친 여정으로 잠시 쉬어가다 요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베풂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활짝 열어놓은 정문을 통해 운동장에 들어가 속옷에 땀이 흥건하게 고일 정도의 아침 운동을 하고 나서 널브러져 굴러다니는 휴지를 줍는 아름다운 손을 보고서야 봉사자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유리창을 깨뜨렸을 때 조용히 다가와 ‘어디 다친 데는 없고.’하면서 다정히 속삭여 주는 말을 듣고 교사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바른 길을 걷지 못하고 삐뚤어진 사고를 통해 암적 존재로 성장해 가다 교사의 지극 정성스런 지도를 받고 제 자리를 찾은 학생을 보면서 스승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싸움을 계속하다 짐을 챙겨 떠난 뒤에야 상대방 존재의 소중함을 느끼는 사람을 보면 가엾게 느껴진다.

 

정차 중 뒤차에 받혀 범퍼에 약간의 손상이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니, 괜찮습니다. 다치신 데는 없으신가요.’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자리를 뜨는 사람을 보고서야 이웃의 참 인정에 대하여 고마움을 느낀다.

 

돈 몇 푼 때문에 시내버스도 탈 수 없는 창피를 당하는 사람을 보고서야 진정한 검약 생활의 고마움을 안다. 많지 않은 돈 쪼개 장애인 시설을 도우면서도 이름 밝히기를 꺼려하는 가슴이 따스한 사람의 선행 소식을 듣고서야 이웃의 고마움을 안다.

 

비전을 갖고 있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질을 갖고 있으며, 구성원의 경조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지원, 사생활에 대한 상담, 개인의 조직 내 성장을 위한 관심, 구성원을 존중해주는 분위기 조성 등으로 구성원의 마음을 사로잡는 리더를 보면 존경의 마음과 함께 고마움을 느낀다.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려 하고, 듣고 싶지 않은 것도 들으려 하는 훈련된 지도자, 오랫동안 준비과정을 거친 지도자를 보면 신뢰를 넘어 고마움을 느낀다. 명석한 두뇌, 예리한 사고를 바탕으로 어색한 자리를 특유의 익살과 유머로 분위기를 반전시켜 주변을 매료시키는 통솔력이 뛰어난 사회자를 보면서 고마움을 느낀다.

 

비중 있는 국제 경기에서 질질 끌려 다니다 집요하게 상대 투수를 괴롭히면서 역전 만루 홈런을 쳐 경기를 뒤집어준 선수의 투지에 고마움을 느낀다.

 

어디에 살든 열흘만 있으면 다 똑같다고 사르트르는 자신의 소설 ‘구토’에서 말하고 있지만 외국여행을 한두 군데밖에 하진 못했으나 크게 깨달은 점 하나는 우리나라도 참 근사한 나라라는 사실이다. 여인의 명주 목도리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매일 접할 수 있게 해주는 조국에 고마움을 느낀다.

 

이른 아침 외국의 도시 한인들이 모여 사는 조그만 마을, 어느 단독주택 대문 앞에 내걸린 빛바랜 국기가 나라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고마움을 고마움으로 여기지 못하고, 행복을 행복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불행한 것은 없다. 고마움을 통해 인생은 부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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