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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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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단했던 삶의 조각들 맞추기
건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정경일
기사입력  2015/06/23 [18:14]   편집부

   
 
논산문화원과 함께 논산 지역의 언어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언어조사는 흔히 방언조사라고 해 왔던 일입니다. 지역어 즉 방언은 그 지역에 사시는 분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소통의 가교 역할을 해 온 것이므로 한 곳의 지역어에는 지역 사회의 역사와 문화, 풍습 등의 특성이 고스란히 배어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정서적 통일을 이루는데 방언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여러분 누구나 다 알고 계실 겁니다. 외국 여행을 다녀 본 분이라면 낯선 외국 땅에서 우연히 들려오는 한국어가 얼마나 반가왔는지 잘 아실테고 만일 그것이 정겨운 우리 고장 사투리라면 반가움은 더 말할 것이 없을 겁니다. 또 지역어는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말의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우리말의 역사를 살펴보는데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학문적 자료가 됩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는 오래전부터 지역어를 조사하여 보관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진행해 왔고 이런 배경 아래 논산의 지역어를 살피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지역어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 해당 지역의 말을 오랫동안 써 오신 분들을 찾아서 그분들의 말을 녹음하는 일입니다. 이런 분을 찾는 조건은 의외로 까다롭습니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해당 지역에서 낳고, 자라고,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살아오셔야 하고 연세는 최소 70은 넘으셔야 하고, 가능한 타지에 나가셔서 생활하시거나, 학교를 다녀서도 안 되고, 건강하고 기억력이 우수한 분이어야 한다는 등이 조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점차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교육의 기회가 확대되면서 이런 조건에 정확히 맞는 분들을 찾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지역의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두분의 어르신을 찾아서, 지나온 삶의 시간들을 되돌아 보며 삶의 조각들을 맞추어 가는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언어조사가 아닌 삶의 조사

제가 만난 분은 성동에 사시는 할머니(74세) 한분과 벌곡에 거주하시는 할아버님(80)이셨는데 일주일 간격으로 한분씩을 모시고 각각 4시간 남짓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조사한 것은 논산의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언어조사를 위해 그분들이 풀어놓으시는 고단하고 어려웠던 삶의 여정들은 그대로 한편의 인간극장이었고, 드라마였으며, 우리 사회의 현대사였습니다.

6남매의 장녀로 태어나셔서 10살 때 10리길을 걸어서 지금 사시는 마을로 이사 오신 할머니는 13살 어린 나이에 강경에 있던 직조 공장에서 일을 시작하셨고, 결혼 후 잠시 서울과 대전에서 생활하신 시기를 빼면 오로지 성동면에서 온갖 궂은 일을 하시면서 3남매를 키우시고 가난한 살림을 벗어나고자 거친 땅을 일구면서 70평생을 살아오신 이야기는 언어조사가 아니라 인생의 굴곡을 들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서울에 거주하던 당시 공사장 인부들의 해진 옷을 꿰매주면서 생계를 이었던, 당시에는 꽤 귀한 물건이었던, 드레스미싱을 아직도 간직하고 계신 할머니의 뭉특한 손끝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벌곡에 거주하시다가 최근에는 대전에 사는 아들네 집과 벌곡을 왕래하시면서 여전히 농사를 짓고 계시는 할아버지는 부인을 여의신 뒤, 홀로 6남매를 훌륭히 키워내신 대단한 의지의 어르신이셨습니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원장님’이라는 별명을 들어가면서도 오직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농사로, 장사로 한평생을 살아오신 할아버지의 삶의 역정은 언어조사라는 형식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감동의 삶이셨습니다.

더 많은 인생조사가 필요하다.

두분을 만나면서 저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다녔습니다. 아이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면서 한결같이 자기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 올렸고 미처 알지못했던 그분들의 삶의 모습을 조사과정에서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번 기회가 그 학생들에게는 가족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리라 봅니다.

학생들 뿐 아닐겁니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 살아가시는 많은 어른들이 계십니다. 언어조사가 아니라 좀 더 이 일을 넓혀서 우리 어른들의 삶의 이야기를 모아 두는 사업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어르신들도 이런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삶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실 것이고 우리는 이런 얘기들을 통해 풍부한 삶의 지혜를 얻어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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