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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유월,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시인, 논산문화원 부원장 권선옥
기사입력  2015/06/02 [18:36]   편집부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 왕성한 생명력으로 쭉쭉 뻗어 자란 나무와 풀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듣고서,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젊은 시절에는 왜 녹음이 그토록 아름다운지를 깊이 생각지 않았다. 이제 나이 들어 젊음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젊음을 헛되이 보내버린 일을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녹음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어느 시인이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했다. 오월은 이십대 초반의 여인같이 청순하고 아름답다. 때 묻지 않고 맑으나, 아직 덜 피어난 미완(未完)의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나는, 누가 나에게 계절의 여왕을 뽑으라 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유월에게 왕관을 씌울 것이다. 유월은 사십을 갓 넘긴 여인처럼 젊고 아름다우면서도 흐드러지는 농염한 멋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유월의 쓰라린 기억
자연은 아름답지만, 나는 유월이 되면 가슴 한 구석이 늘 먹먹하다.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일어난 달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일제 강점기를 지독한 어둠의 시기였다고 말하지만, 한국전쟁은 어둠이 아니라 뇌성벽력의 시기였다. 같은 피붙이끼리 서로 총을 겨누어 목숨을 앗으려 했던 일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게 하기 위하여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여 국방을 튼튼히 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국어 선생으로 수업을 하면서, 해마다 유월이 되면 어김없이 시 한 편을 학생들에게 읽어 주고 그 의미를 깊이 되새겼다. 때로는 학교 방송실에 부탁하여 전체 학생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그 시는 다름 아닌 모윤숙 시인이 쓴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이다. 이 시는 실제로 시인이 산골짜기를 헤매다가 소위 계급장을 단 청년의 주검을 보았다 한다. 그의 집에서는 그야말로 금쪽같이 귀하고 귀한 아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아들이 죽어 있는데도 아무도 돌보는 사람은 없고, 벌레들만이 꼬여 있었다 한다. 얼마나 참혹한 일인가. 나의 동생, 나의 아들이라고 가정한다면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다.

● 그 소위는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죽어서 가시덤불 밑에 누워 있는 소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르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애국심으로 나라를 지키겠다고 달려온 젊은이들. 그러나 나라는 그들을 충분히 훈련시키지도 못하고, 열악한 정투 장비를 주어 전장(戰場)으로 보냈다. 형편이 그렇기는 하지만, 안타깝고 원통한 일이다. 이렇게 죽어간 나이 어린 병사들의 장하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는 백선엽 장군의 자서전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다고.

그리고 이렇게 끝을 맺는다. 정말, 그 국군이 죽어서 하고자 하는 한 마디 말은 무엇일까.

산 옆 외따른 골짜기   

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 이 시를 읽어 보지 않은 독자는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인용한 시에 지금의 맞춤법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으나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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