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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섬돌 앞의 오동잎은
안심정사 법안스님
기사입력  2011/06/29 [17:09]   편집부

   
 
산사에 뻐꾸기 소리가 들릴 지음에는 이미 아카시아 향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무성한 잎사귀가 그 자리를 차지한 뒤이다. 절집에는 도량석이라는 것이 있다. 새벽에 잠든 모든 이들과 자연을 향하여 목탁을 나지막하게 두드리면서 경내를 돌아다니는 것인데, 모두가 잠든 때에 홀로 깨어서 세상이 깨어나기를 축원하는 시간이면서 혼자 아카시아 향기를 누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세상이 하루가 아니라 분초를 다투어 변화를 일으키고, 글로벌이라는 의미와 무한경쟁이라는 의미가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지나치지 아니한 세상이 되었다. 모두들 방향을 상실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깊이 통찰하여 보아야 할 시간일지도 모른다.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가 주변국가들- 그 가운데 특히 인연이 많은 중국이나 일본을 선도하였던 시대가 종종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때가 관촉사 은진미륵불이 세워지던 서기 900년대 중후반인 고려시대 초기였고, 조선시대에도 그런 시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과 일본에 우수한 문화와 문명을 전파하였고,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도움을 주었던 시절이었다.
 
얼마 전까지 자주 중국과 대만을 오가면서 각종 세계적인 불교행사를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중국을 오가면서 하루하루 달라지면서 발전하여 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고, 서기 2000년에 중국 남부지방인 복주의 복건성과 민남성에서 중국불교체험수행이 있었다. 아주 열악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으나, 그 뒤 2006년 호남성 장사를 지나 남악 형산에 갔을 때에는 이미 개혁개방의 엄청난 효과를 실감하면서 지방공항까지 정찰제가 실시되고 있었다. 그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중국 불교계에서 나는 국빈대우를 받으면서 다녔다. 중국의 천수백년 고찰을 복원하는 데에 증명법사로 주로 초빙 받아 다녔으니 나보다도 복이 많은 이가 드물 것이다. 그러면서 내 후손들도 중국에서 이런 대우를 받았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때만 해도 중국은 개발도상국이었고, 우리가 훨씬 앞선 국력과 상품의 품질이 중국인들의 선망을 받으면서 덩달아 나도 선망의 대상이 되어서 환대를 받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벌써 중국은 G2, 지구상의 양대국가로 등극하였다.
 
그 뒤에도 일취월장 변화하는 중국을 바라보면서 몇 가지 단상이 스치고 지나갔다. 얼마 전 젊은 어느 한국 스님을 만나 대화하는 중에, 이미 중국의 불교계도 자신감을 회복하였고, 무지막지한 자존심과 국력을 바탕으로 세계 패권을 걸머쥐는 상황에 왔다고 한다.
 
종교는 국경이 없다. 그러나 종교인에게는 국적이 있다. 물론 궁극적인 국적은 법계가 되고, 자비가 되겠지만 현실적인 국적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언제나 기회와 위기는 동시에 온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물질적인 세계 일류국가의 지위는 기회이면서 동시에 위기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결코 우리의 편도 적도 아니다. 얼마나 최적의 상태로 맞이하느냐에 따를 뿐이다. 

중국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보면, 쇠태기의 국가나 조직을 알아보는 데에는 빈곤과 무지와 한사라고 하였다. 오늘날 우리의 상황을 잘 살펴야 한다. 보릿고개가 있었던 과거에 비하여 많이 먹고 살 빼는 게 일이 된 한국 사회는 빈곤과 거리가 먼 사회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절대적 빈곤보다 더 무서운 것이 상대적 빈곤감이다. 모두가 못 살 때에야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만 상대적 빈곤감은 사회를 급속히 파괴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무지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의 우리들은 남 잘되거나 남이 좋아지는 것이면 무조건 반대하고 방해하고 산다. 그런 맘씀으로는 진정한 정신적 일류국가는 건설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한사(寒士)란 소외된 지식인이거나 반사회적 지식인을 말한다고 한다. 아니면 사리사욕과 연결된 곡학아세하는 지식인들도 포함되지 않을까? 팩트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왜곡하는 지식인들을 말함은 아닐까?
 
우리가 지금 우리 역사상 가장 좋은 기회를 누리고 있다고는 하나 동시에 엄청난 위기를 지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 한 가운데에서는 그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는 것이 슬플 뿐이다. 

“연못가의 봄풀은 꿈에 깨지 않았는데
섬돌 앞의 오동잎은 이미 가을 소리를 내는구나. “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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